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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살생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한채연 2004-12-14 16: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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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글을 싣습니다. 다음은 정인봉님의 글입니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라.... 우리 채식인들이 채식을 전도(?)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는 질문입니다. 그만큼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지요. 식물과 동물을 먹는 차이점... 과연 무엇일까요? 흔히,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육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지요.

"당신들이 생명을 존중해서 동물을 안먹는다면 그럼 채소,과일도 생명인데 왜 그것은 먹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식물을 먹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동물을 먹는 것이니 뭐라고 말하지 마세요."

대충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랄까요.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생명이라는 차원에서는 한치도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몸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이상 최소한의 살생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단 말씀드려야 겠군요.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살생이고, 물을 마시는 것도 살생입니다. 곧, 인간이 살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요건인 호흡과 물.. 이것부터가 살생이지요. 왜냐구요? 공기중에는, 물속에는 무수한 박테리아나 세균등 미생물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공기속에서나 물속에서는 살 수 있지만, 사람의 폐 속으로 흡입되거나 위장 속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살 수 있는 여건이 달라져서 죽는 생물들이 무척 많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위생상 매일 손과 얼굴을 씻고, 하루에 1번씩 대변을 봅니다.. 이들 행위가 없다면 인간은 곧 죽게되지요.

그런데, 손을 씻으면 역시 무수한 병원균이나 미생물들이 물에 씻겨 내려가 죽게 됩니다. 대변을 보면 그 속에 있는 세균들 역시 많이 죽게 됩니다.

또, 우리가 걸어가고, 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작은 개미뿐만 아니라 무수한 생명체가 우리가 살생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지만 죽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까지 안 할 수는 없지요? 그것도 생명이라고 안 죽이겠다면 당장 숨을 멈추고 빨리 이 세상을 떠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 인간이 사는 것 자체가 살생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럼 어차피 살생이니 동물이든 뭐든 되는대로 먹자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서울에서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까요?

어떤 사람은 고속버스나 기차를 통해 비록 시간은 좀 걸리지만 환경오염도 최소화 하고, 교통 체증도 덜 일으키면서, 아울러 버스나 기차 안에서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여유있게 여행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숙소도 유스호스텔 같은 저렴한 곳이나 텐트를 사용하구요.이 사람은 3박 4일동안 여행 경비로 1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혼자 여행가면서 가장 공해가 심한 차인 디젤차를 몰고 갔습니다.

자신의 목적지 이외에도 중간 중간에 술집도 들리고, 과속을 일삼았으며, 심지어는 중간에 다른 사람을 다치거나 남의 차와 부딪친 후 뺑소니까지 쳤습니다. 또한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숙소도 최고급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다니기 때문에 편한 점도 있었겠지만 온 종일 교통체증과 운전으로 인한 피곤함에 절었지요.

더욱이 사람을 다치고, 다른 사람 차도 상하게 하고, 자기 차도 또한 상했어요. 양심의 가책까지 느꼈습니다. 돈도 같은 기간동안 100만원이나 들었습니다. 적절한 비유였는지 모르지만, 채식과 육식의 차이가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요.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먹어야 한다면 가장 살생을 최소화 하는 것을 먹자는 것이지요.

또 비슷한 예를 들자면, 채식은 매일 100원에서 1000원정도의 빚을 식물들에게 지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 정도의 빚은 평생을 지더라도 살아가면서 내면의 소리대로 성심성의껏 생활하고 자신의 앎을, 여유를 부족한 이들에게 베풂으로서 이로써 그 빚을 충분히 갚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식은 동물이 자신을 주기 싫은데, 그 소중한 생명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므로 그 빚이 심히 큽니다. 1만원.. 10만원..100만원...

그 많은 빚을 매일매일 지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빚에 눌려 도저히 그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고, 윤회하여 동물로 태어남으로서 그 빚을 갚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 다 생각할 필요없이, 그저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물어보세요.

방금 전까지 살아서 꼬꼬댁 거리던 닭을 직접 모가지를 비틀어서 죽여 먹는 것,

순진한 눈망울로 어미소를 졸졸 따라다니던 송아지 목을 잘라서 피를 받아 선지국을 끓이고 그들의 온갖 몸을 난도질해서 각종 요리에 넣어먹는 것과,

어떤 면에서는 개보다도 아이큐가 더 높고 영리하다는 돼지를 도끼로 목을 치고, 내장을 꺼내 그 속에 잡채를 넣어 먹는 것...

암수 한 쌍이, 한 가족의 꿩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숲속에서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총으로 쏘아 잡은 새들을 잡아먹고, 자기 집에 박제하여 그 시체가 좋다고 쳐다보는 것,

강태공으로 여가를 즐긴다는 명목으로 순전히 재미와 짜릿한 낚시대의 감촉을 맛보기 위해 또 하나의 생명 지렁이를 미끼삼아 큰 물고기를 잡아 올려놓고 기념촬영하고 매운탕 끓여먹는 행동과,

노루의 목에 드라큐라처럼 빨대를 꽂아 아픔에 고통에 겨워 달아나는 노루 목을 붙잡고 그 피를 빨아먹는 것과,

곰을 로봇 처럼 가슴팍에 문을 달고, 한 수 더해 일부러 곰을 화나게 만들어서 그 쓸개에서 나오는 즙을 마셔대는 것,

생선가게에서 아직 숨이 남아있어 게거품을 입에 물고 애처롭게 목숨을 구걸하는 게의 다리를 절단해서 고추장 잔뜩뿌려 국을 끓여 먹는 것과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며, 먹물 뿜어대며, 온몸을 절단해도 꿈틀거리는 오징어를 입에 쩍쩍 달라붙는 그 맛이 최고라며 먹어대는 것,

푸른 바다 속에서 마음 껏 뛰놀며 용솟음 치던 갈치, 멸치, 조기, 명태들을, 살겠다고 그 생명의 용트림을 쳐대던 고기들을 잡아서, 산채로 내장을 빼내고 두 눈 덩그러니 뜨고 입을 뻐꿈 거리는 물고기회를 잡아 먹는 것,

이런 모든 것들과 ...밭에, 논에 자라는 곡식, 야채,과일을 먹는 것과 과연 어떤 것이 당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더 크던가요?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이 사는 당신의 몸,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이 사는 당신의 몸에 한번 진정으로 물어보십시오.

자기가 직접 잡아 죽이는 것은 아니라구요? 먹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죽이는 사람이 있다는 간단한 이치를 설마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경중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직접 살생과 팔고, 먹고,요리하는 간접살생은 모두 다 살생이라는 점에서 한 걸음도 물러 설 수 없습니다. 게다가 채식을 하는 것이 어찌 이런 이유 뿐입니까?

여러 가지 채식의 유익함..생명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동물에 대한 사랑.. 올바른 건강의 유익과 증진...수질,토양오염 등 각종 환경오염 방지와 21세기 인류의 해결과제인 물부족 현상의 해결...

지구 산소의 보고인 열대우림을 지키고, 식량의 올바른 분배를 통한 기아 해결...명상과 수행,종교상의 이유등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등...이 모든 것이 채식의 이유이고, 채식의 유익이지요.

이렇게 많은 유익함을 주는 것이 채식이지만,채식의 유익을 그대로 반대로 돌려놓고 보면 모두 육식의 해악... 그것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육식이 주는 유익함은 도대체 단 한가지라도 있을까요?

한가지 억지로 있다고 한다면, 거대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 창출, 그리고, 이와 맞물려 있는 각종 크고 작은 이권단체 정도이겠지요.

또 있군요.. 인간의 탐욕스런 입맛을 채우는 것...
하지만 이는 고기 자체의 맛보다 양념의 맛 때문에 맛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데, 영양학적으로 채식만으로는 불충분함이 의심된다구요?

이 또한, 구식 영양학에서는 단백질 중 필수아미노산 섭취를 위해 육식이 불가피함을 역설해왔지만, 오늘날에는 보기좋게 나가 떨어졌지요.

콩과 쌀만 하더라도 이 안에 10가지 필수아미노산을 비롯한 양질의 단백질과 각종 미량 영양분이 두루 갖춰져 있지요.

사람은 채식만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최첨단 의학의 본고장, 미국에서조차 인정을 하고 있지요.더욱이 정부 산하 단체에서 까지도요.

미국에서 숱한 성인병 환자가 증가하고 국민 총생산의 상당수가 비효율적인 의료비용으로 지출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미국 정부에서 수년간에 걸쳐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세계의 유수한 의학박사,과학자들에게 연구하게 한 결과는 단 한가지...

20세기 초의 검소한 식단으로 돌아가라는 것..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조차도 이익집단의 압력 때문에 조그맣게 축소되어 발표되고 말았지요.

더 쉽게 생각해서, 채식만 계속 시킨 사람과 육식만 계속 시킨 사람..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만약, 우리가 채소를 먹는 것도 그들 생명을 먹는 것이므로, 나쁜 일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나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주목해야지요.

이번에는 과학적으로 따져 볼까요? 식물은 그 성분의 90%가 수분입니다.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하고 판이하게 다르지요.

그래서, 당연히 생명이 깃든 식물이지만 동물에 비해 의식이 거의 없고, 더욱이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초능력을 가졌거나 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식물들은 상당수가 인간이나 동물들이 먹어주기를 원한다고 하지요.

특히 과일들을 보세요.
온갖 향긋한 냄새로 동물과 사람들을 유혹하여 자신을 먹어주길 바라지요.그래야만 그 씨가 널리 퍼져 종족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거든요..

만약 과일을 제때 먹지 않으면 썩어서 땅에 떨어져버리고, 그 씨 또한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제대로 성장치 못하고 죽어버리게 되죠.

또, 식물은 잎을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납니다.1년생 풀이라 하더라도, 그 뿌리까지 뽑아 먹더라도 그 씨가 남아 또 자라납니다.

그야말로, 식물들은 동물에게 한없이 자기를 기꺼이 내주는 하느님이요, 부처님이요, 신선이지요.

그래서 식물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음기운으로 가득하고 동물은 움직이는 양기운으로 가득한데..동물이 식물을 먹음으로써 그 기운이 중화되고..

또, 동물은 죽어서 그 몸을 땅에 돌려줌으로서 다시 식물의 영양원이 되어 그 기운을 중화시켜 나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닐까요.

그렇지만, 자연계의 모든 곤충, 동물, 어류를 보세요.
그 어느 한 마리라도 자기가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것이 있나요?

하찮아 보이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사람이 손을 대면, 갑자기 동작이 빨라지면서 달아나기 시작하지요. 멸치잡이 하는 것을 보세요..낚시하는 것을 보세요..

그 친구들이 얼마나 살아나려고 바둥거리는가를...
하물며, 우리가 주로 잡아먹는 소, 돼지, 닭, 오리.. 이런 큰 중생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용봉탕이라고, 자라를 잡아먹는 요리를 만들 때에는 자라를 펄펄 끓는 물속에 넣는데, 그 자라는 죽는 순간에 자신을 끓이려는 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려 노려보면서 죽는다고 합니다...뱀도 그렇구요..

그 원한은 단순히 원한에서 그침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그 인간들에게 보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세상의 모든 전쟁, 교통사고, 살인 등의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간 동물들의 원한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살생이라 할 수 있는 채식을 권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맘씨 좋은 식물 친구들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역시 몸에 안좋지요.
그래서, 채식인들은 채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식(小食)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채식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분들은 거의 하루 1000칼로리-1500칼로리 전후 식사를 하는 분이 많아요(참고로 하루 성인 권장량 2500이지요.)

그리고, 그 채식으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해...
늘 하늘과 땅과 인간들에게 감사하고 그 자연이 준 기운을 받은 보답으로 세상을 더 맑게 밝히기 위해 묵묵히 맡은 분야에서 하느님의 음성, 부처님의 음성, 옥황상제의 음성...

즉, 우리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자선을 베푸는 등...세상에 작은 등불이나마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채식을 하는 것은 어쩌면...바로 우리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소리, 불성, 내 안의 우주 근원의식이 원해온, 인간이 생긴이래 끊임없이 우리 내면의 양심이 그저 자연스럽게 원한 그런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채식을 하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자신이 어떻게 끔찍하게 동물 친구들을 먹었는지,치를 떨게되고, 그리고 또 그렇게 아주 오래 전부터 원하던 일을 한 것처럼,편안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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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울벗님의 답글입니다.)

[질문] GYUVER01/ 채식 주의자들이 제일 위선자 들이죠..

자기들 딴에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고 위안하면서 풀만 먹는건데...
식물도 감정있고 생명체라는건 다를바 없습니다.
여러 연구에 의해 식물도 감정 반응과 상대를 구분할줄 안다더군요...
식물과 동물의 차이는 속도 밖에 없지 않을까요??
(채식주의자들은 식물이 생명체가 아닌걸로 본다고 봐야 하죠...
그들의 가장큰 모토가 생명 존중이니깐요..)

[답변] 한울벗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채식주의자들이 위선자라고 하는 이야길 저도 예전에 많이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또 듣고 보니 예전에 제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네요.

전 채식주의 뿐만 아니라 무슨 '주의'하는 것엔 전 정말 싫어했죠. 아 아무거나 골고루 잘먹고, 사람이 좀 폭넓은 아량을 갖고 둥글게 살아야지 뭔놈의 주의는 주의냐고..

언젠가 영어공부를 하다가 그 내용중에 미국의 채식주의자가 나오던데 미국엔 참 희한한 사람들도 다 있구나 생각도 하고 그랬죠. 근데 지금 이렇게 채식주의자가 되어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니 우습기도하고 산다는 것이 참 재밌기도 하고 그렇네요.

고기 빠진 식탁은 너무 초라하게 여겼고, 식당에 된장찌개라도 시킬때는 고기 적게 넣는 식당엔 다시는 찾지 않았고, 명절 때 고기 몇 근 사들고 오는 사람이 최고 귀빈으로 보였으며 회식때면 고기를 맘껏 먹게 하는 사장을 가장 존경스럽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채식의 세계에 접근해보면서 채식해야하는 이유는 너무도 많았고, 육식을 해야할 이유는 단 한가지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채식은 정말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할 식생활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지요.

아무리 육식을 좋아하고 채식을 별볼일없이 생각하는 사람도 그 내용을 알고나면 채식운동가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고 제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되었거든요.

요즘 언론에서 앞다투어 채식관련 방송이나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데 가장 최선의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러한 추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아울러 날이갈수록 채식운동은 더욱 확산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깁니다. 많은 성현들이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는데 채식을 함으로써 육신의 감정을 쉽게 벗어날 수 있고, 종내엔 자신을 알게되어 우주의 최고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테니까 말이죠.

채식이든 육식이든 우리의 식생활이 잘못된 것이라면 잘못된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인류의 삶과 건강과 행복을 위해 가장 나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큰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하는 사람은 그 이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진실을 충분히 살펴보고 그의 주장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를 보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애를 써야 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채식주의자들이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생명의 풀을 뜯어먹는가 하는 문제는 저도 많은 아픔을 느끼던 부분이었지요.

하지만 어느날 명상을 하면서 식물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은 전혀 다른 것을 알게되었지요. 한마디로 식물은 뭇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힘을 갖고 있으며 동물은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한 생명의 몸을 갖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죽어 백토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면, 그 육신의 재료는 흙이라해도 어긋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육신을 물질면에서 바라볼 때, 바로 이 땅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고, 어머니땅은 자식을 위해 젖을 내어주는 심정으로 초목을 번성케하여 온갖 곡식과 잎과 열매를 내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초목엔 하늘의 지고한 신령이 깃들기도 하는데, 인간의 의식보다 매우 높은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사랑과 베품의 성정을 갖고 식물에 깃들어 생명을 키워가고 있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식물의 의식이 여타 동물들보다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그런말 한 것이라면 맞는 말이되지만 이성적인 측면에서라면 전혀 반대가 됩니다.

이 땅은 온갖 동물들이 뛰고 날고 헤엄치며 제각기 삶의 체험을 통해 영혼을 성숙시켜가고 있는데, 동물이 동물을 죽이고 잡아먹는 것은 다른 영혼의 도구를 빼앗아 버리는 결과가 되어 생명에 큰 해를 끼치는 결과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초목은 지구, 곧 땅이 내어주는 사랑의 물질이자 생명의 원료입니다. 식물이 갖고 있다는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측량할 길 없는 지고한 의식이며 그의 의식은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의식과는 전혀 다른, 사랑과 연민으로 뭉쳐진 의식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 그들이 갖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먹어줄 때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마치 아기가 엄마의 젖을 잘 먹을 때, 엄마가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그래서 동물은 잡아먹힐 때 죽임을 당한다고 하는 말을 쓰지만 식물은 따거나 채취하여 쓰임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동물에 있어서 영혼의 자리를 잃는 죽음은 존재하지만, 식물에 있어서는 영혼의 자리를 잃는 죽음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물을 영혼을 가진 생명으로 본다면 신의 차원과 다름아니고, 신은 오직 "사랑"의 덩어리 일 뿐이니까요. 식물은 죽음이 없는 지고한 사랑의 나눔만이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 '지면의 씨맺는 곡식과 채소와 열매가 네 식물이 되리라"는 말은 하느님의 말이자 사랑의 외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곡식과 풀과 열매는 우리 몸에서 아무런 독소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우리 몸을 정말 맑고 깨끗하게 정화해줍니다.

만일 식물이 죽어가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원한을 품고 있다면 우리 몸은 채식하면 할수록 어떤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채식을 함으로 해서 생기는 질병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보고된 것이 없습니다.

비타민 B12같은 성분이 부족하여 신진대사에 장애를 일으킨다거나 단백질 부족으로 체력이 허약해진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연구가 거듭되면서 채식을 통한 단백질은 최고등급의 단백질이며 채식을 오래하면 합성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비타민까지 합성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발견할 따름입니다.

물론 비타민 B12같은 성분도 통곡식의 채식을 하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섭취할 수 있지요.

하지만 육류는 전혀 다릅니다. 의료와 영양의 천국인 미국의 사망통계를 보면 교통사고나 노화나 어떤 다른 이유보다도 육식으로 인해서 생기는 심장병, 암 등의 비율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속속 보고 되고 있습니다.

육류는 우리 속에서 소화되는 전쟁을 치르면서 얼마간의 고기 속의 에너지를 내 놓는 대신, 피를 탁하게 하는 콜레스테롤, 지방, 요산과 암모니아등 온갖 산성물질을 내놓으며 신성한 몸을 병들게 합니다.

사실은 제가 83년도에 도살장에 매일 아침 출근하여 갖 잡은 돼지내장, 돼지머리, 족발, 선지, 소내장 등을 싣고 온 식당마다 팔러다닌 적이있습니다. 학비를 벌기위해서 일했는데, 매일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그 참혹한 광경은 언제나 소름끼치고 가슴저림을 느꼈습니다.

차에 실려와서 좁은 통로로 내쫓기는 돼지들은 한쪽 통로쪽에서 낫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백정들에 의해 목덜미와 뇌를 찍히면서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이내 쇠갈퀴에 거꾸로 걸려 선지를 받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목 혈관이 잘리면서 수돗물같은 피를 쏟으며 마지막 생명의 경련을 일으키다가 온 몸을 토막토막 난도질 당하여 피와 고기와 맛에 주린 인간들의 먹이로 짧은 삶을 마칩니다.

소들은 한 마리씩 주인에 의해 끌려와서는 모른척 기다리고 있던 큰 햄머를 든 백정이 이마를 힘껏 내리 쳐서 쓰러뜨리는데, 한 번에 안되면, 두 번, 두번에 안되면 세 번 죽어라고 내리치는데, 소의 그 울부짖으며 쓰러지는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큰 소가 쓰러지는 순간 큰 칼을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목동맥을 먼저 따더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바가지를 들고 기다렸다가 한바가지씩 받아들고 입을 시뻘겋게 하면서 꿀꺽 꿀꺽 마셔댑니다.

이내 난도질은 시작되고 쓸개와 간이 젤 먼저 잘려서 살사람이 기다리면 바로 팔리거나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을 보는데, 처참..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집을 졸지에 뺏긴 짐승원 원령은 고기와 함께 붙어있다가 그것을 먹은 사람이나 짐승과 몸에 중첩되어 오랫동안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최근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맛과 습관과 영양학의 세뇌에 의해 구르기 시작한 돌무덤을 멈추게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도살장 사람들은 동물을 도살하면서 아무런 가슴아픔이 없다고 할 지 모르지만 그들의 내면은 분명 동물들의 죄없는 죽음과 함께 아파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 우리의 입과 눈, 그 생김생김을 보아서도 그토록 잔인한 생명의 죽임을 좋아하거나 끔직함없이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지는 않잖습니까. 대신에 칼이나 창을 들고 설치면 우린 늘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과나 포도 열매를 따는 곳이나 벼나 보리 곡식을 거두는 곳이나 심지어 무뿌리나 시금치를 뿌리채 뽑는 곳에서도 그 누구든지 공격적인 자세로 두려움과 섬찟함을 가지면서 그 일을 하거나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육식을 자꾸 하게되면 육식하게 좋게 진화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사납고 공격적이고 날렵한 몸동작이 필수적인 그런 몸과 오직 먼저 먹고 보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그런 존재로 변모 되어가겠지요.

하지만 채식을 자꾸하게되면 채식하게 좋게 진화되는데, 그 결과는 부드러운 이. 부드러운 손길, 느긋한 동작, 함께 나누는 따사로운 마음을 가진 그런 존재로 자꾸만 변모되어 가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우리 몸은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살상과 죽임대신 푸른생명의 에너지를 받으며 사랑과 아름다움을 나누어가지는 그런 천사의 몸과 같이 변모되어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금 육식동물의 차원으로 퇴보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또한 식물속에는 그 지고한 의식도 함께 입력되어 있어서 육식을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성격형성을 보이게 됩니다. 채식을 하게되면 날이 갈수록 포용의 넓은 마음과 하늘의 뜻을 읽어가며 사사로운 욕망보다 보다 긍정적인 의식의 성장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가 자라게 되지만, 육식을 습관화하면 투쟁과 경쟁, 온갖 감정과 욕망의 의식이 자라게 되어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병들게 되고 맙니다.

식물은 사랑과 베품의 의식으로 엮어져 있지만 동물은 온갖 두려움과 고통의 마음으로 그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고, 오직 먹고 자라기만 할 때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하게 하는 것과,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게하는 것은 성격형성에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게 됩니다. 이것은 저 스스로도 강아지 를 키우면서 경험했고, 저자신도 느꼈으며 이제 12살 된 아이를 키우면서도 느끼는 바이지요.

요즘 아이들이 옛날과 달리 짜증을 잘 내거나 난폭한 경우가 많은 것은 좋지 않은 매체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몸 속에 동물의 감정이 자꾸만 배인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동물의 고기는 인간의 정신을 키우는데 쓰이기보다 인간의 몸을 키우는데 쓰이게 되니, 육류속에 내재된 동물적 감정이 자꾸 쌓이고 푸른생명의 사랑이 부족한 것이 교육부재를 탓하는 것보다 더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말하면 인간이 만일 육식을 계속한다면 동물의 감정을 저도 모르게 내면 깊숙이 쌓아가는 결과가 되어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결코 벗어날 수가 없으나 채식을 하게되면 의식을 진보를 이끌게되니 학교와 사회, 가정교육이 조금만 가미되어도 정말 참다운 교육이 실현됩니다.

석가도 여러경전에서 사람이 육식을 하고서는 결코 보리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채식하는 것은 모든 성현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사랑의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 경우엔 채식을 하면서 조급하고 내성적이던 성격이 차분해지고, 늘 부정적이고 원망하던 성격이 차츰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그전에는 상상도하지 못했던 삶의 메시지를 알아가면서 정말 행복스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제가 대학다닐 때(대학을 24살에 입학) 건강이 무척 나빠서 도중에 학업을 포기하고 휴학했을 때가 있었죠. 그 때 우연히 자연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요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육식을 끊고 현미잡곡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좋아하는 고기를 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먹는 즐거움'을 삶의 큰행복으로 생각하는 제게 웃기는 얘기로 들렸는데, 그 때만해도 돈 생기면 '기사식당'이라는 데를 단골로 다니면서 김치보쌈을 젤 즐겨먹었고 학교 구내식당에선 돈까스를 가장 즐겨 먹었는데, 힘이 없다가도 삼겹살이나 불고기 등 육류만 먹으면 기운도 나고 기분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당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심한 두통과 난시, 축농증, 알레르기, 산만함 그런 것들을 없애는 것이었는데, 그때까지 여러 가지 약이나 치료를 받았었는데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상태인지라 효과만 있다면 눈 딱감고 한학기 동안 채식요법을 해볼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그 좋아하는 고기를 다 끊고 채식만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미심쩍고, 제가 본래 약한체질이라 고기를 안먹고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많았지요.

하지만 강원도 횡성과 경북 성주의 천연치료소와 요양원을 직접 가보고, 채식으로 건강을 되찾은 이들을 많이 만나보았고, 저 또 한 거기서 한동안 묵으면서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지요.

또 채식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들을 보니 한결같이 건강이나 성격면에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 보였지요.

그곳에서 한번은 백혈병으로 3개월 시한의 목숨만 남은 한 처녀가 입원했는데, 그 얼굴엔 핏기라곤 하나도 없고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서 정말 살아날까 싶었는데, 3개월이 지날 무렵, 정말이지 얼굴이 발갛게 잘익은 사과같은 얼굴로 돌아오는 걸 보았는데, 정말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저 자신도 채식을 하면서 한달도 채 못될 무렵 무심코 천장에 형광등을 바라보았는데,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닙니까. 전 그전까지 태양빛은 물론, 백열등이나 밝은 불빛이나 겨울에 쌓인 눈이 햇빛에 반사되기라도 하면 맨눈으론 도무지 쳐다볼 수 없었고, 평소에도 수시로 눈이 시린 증세가 있었는데 몇 년간 고생해온 그런 증세가 불과 한달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 때 처음 채식을 하게 되면서 몇가지 곤란을 겪었는데, 일주일이 멀다하고 생기는 무력감과 어지럼증이 가장 큰 문제 였습니다. 그간 육류에 의지해 오던 신체가 채식으로 전환하니까 쉽게 적응을 못했던 것 같았는데 그런 증세의 빈도가 날이갈수록 줄어들더니 6개월이 넘을 무렵 더 이상 느껴지지 않더군요.

또 한가지는 친척이나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될 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문제였죠. 지금은 채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긍정적인 편이어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그 땐 늘 별종 취급을 받고 입짧고 고집센놈으로 놀림받았습니다.

하여간 완전채식으로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평소 두통이 심해서 1시간 이상 책을 본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종일토록 공부해도 신기하게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피부 여기 저기 수시로 벌게지면서 지겹게도 가렵고 힘들게 만들던 알레르기 증세도 어느틈에 사라지고 없어졌던 것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마흔을 훌쩍넘었지만 하루종일 일을하고 나서도 밤이면 컴 앞에서 밤을 새기 일쑤인데도 청년시절 젊음을 그대로 가지며 매주 회원들과 산을 오르곤 합니다.

고기를 즐겨 먹을 땐 힘도 잘나고 먹은 것도 같고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을 자꾸만 조급하게 만들어 무엇을 배우거나 일을 할 때 잘 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거나 지치게 만든 큰 원인임을 알게되더군요. 채식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저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끈기가 인내, 차분함이 생긴 것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의료기술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 만성병환자들이 인구비율로 가장 많은 것은 미국 상원의 영양의료문제 특별위원회가 3년에 걸쳐 조사한 자료를 보더라도 육식으로 인한 해가 가장 크다하지요.

채식을 제대로 하면 변비, 비만, 당뇨나 고혈압 등의 성인병 뿐만 아니라 그 무서운 암의 걱정도 없고, 돈주고 살 수 없는 차분하고 긍정적 성격도 갖게 되며, 환경보호와, 식량부족 사태해결에도 정말 큰 도움이 되지요.

지난 식목일 우리나라 4천만 인구 중에서 얼마간의 사람들이 푸른숲을 가꾸기 위해 나무를 심었는데, 그날 30여건의 전국적인 산불이 나서 식목일을 허망하게 만들었지요.

그런데 한 사람이 육식위주의 식사에서 채식으로 전환을 하면 매년 1000평이 넘는 숲을 가꾸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결과입니까..

또한 채식을 하면 물부족문제, 대기오염문제, 들판의 사막화문제, 매시간 굶어죽는 수많은 인류들의 삶에 풍요를 나눌 수 있고, 죄없는 동물들의 대량학살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인간의 심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 육식을 하지말아야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고, 채식을 해야할 이유또한 너무나도 많습니다. 채식하는 것이 나와 우리 이웃, 사회와 인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데 채식하지 않아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육식하는 것이 동물의 고통과 울부짖음을 온 우주에 메아리치게 하며 환경파괴, 전쟁과 재앙, 경제와 의료문제,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뒤틀리게하는 가슴아픈 일이니 육식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무척이나 많습니다.

고기맛과 먹는 즐거움 때문에 육식을 한다고 하는데, 맛을 즐기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채식으로도 얼마든지 고기맛보다 더 좋은 맛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보다 더 많은 인류가 채식으로 전환한다면 채식산업이 보다 더 활성화될 것이고 올바른 채식을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 일변도의 채식재료 생산보다 생명과 환경에 도움되는 그러한 채식재료의 생산이 더욱 잘 될 것입니다.

채식하는 인구가 지금보다 1%가 더 늘 때마다 세계의 환경과 지구 의식은 크게 나아질 것이며 10%가 늘게되면 순식간에 세상을 주도하는 힘은 나눔의 힘, 생명의 힘이 주도하게 될 것이며 그토록 바라던 세계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채식주의는 아름다운 지구를 썩어가게 하는 존재들과 고귀한 인간의 영혼을병들게 하는 존재들을 더 이상 살아있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의 악역을 마치게 하여 행복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그 껍질이)죽으면서 싹을 틔우듯, 채식은 우리내면의 생명과 환희, 영혼의 행복을 위한 <껍데기의 죽음을>불러 진정한 생명의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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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는 불성이 있는데 식물은 먹어도 되는가?

(다음은 이영신님의 글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금하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비행을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자비없이는 부처를 이룰수가 없다고 부처님께서는 단언 하셨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성격자체가 자비로 이루어짐이지요.

바로 불성이 만물 모두에 존재하는데 그러한 불성의 본체가 자아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비행을 실천하여 보살도를 이루고 부처의 길을 가야함이지요.

육식을 하면 그 동물의 정신에서 깃들인 정(精)이 고기에 같이 존재하는데 그 동물이 죽을 때에 온전하게 죽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러한 동물의 정(精)이 사람의 몸에 같이 존재하여 살과 피와 정신을 지탱시키면서 자신또한 동물의 성격과 비슷하게 되지요.

그런 사람은 성불의 길과 요원하기에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 단호하게 그리고 누누히 당부하셨답니다.

사회생활을 하시다 보면 어쩔수 없이 육식을 해야하고 특히, 요즈음 같이 공해가 많은 현대인은 육식을 완전히 금하기에는 문제가 많지요.

이렇때에는 대상되는 동물의 정신의 단계가 낮은 동물을 섭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입니다.

예를들어 물고기라든지 새라든지 덜 고등화된 인간과 멀리하고 인간과 같이 생활하지 않는 정신단계가 낮은 동물들을 섭취하는 것지이요.

이런 의미로 개를 먹지 않는 이유로는 개는 가장 인간과 가까워 인간이 환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질문하신 식물의 경우는 나무의 열매, 자라나는 식물의 줄기나 뿌리를 섭취하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식물의 경우는 물성자체가 다시 자랄 수 있고 뿌리나 열매를 섭취하며 위에 언급드린 동물의 경우와 비교하여 훨씬 덜 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실제로 수행을 많이 하신 분들중 식물들과도 대화를 나누기도 하시는 분들의 판단이랍니다.

부득히 동물을 섭취해야 할 경우 광명진언을 외워 죽은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고 자신의 성불을 위한 자비를 붇독우며 평상시에도 음식을 섭취할 때에 성불을 위한 마음으로 섭취하는 행이 필요하지요.

그러다보면 음식의 착(着)이 덜해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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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지연님의 글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이 비채식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식물은 안 불쌍하냐'이다. 불쌍하고 안 불쌍하고를 떠나서, 물론 식물도 생명이므로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할 것이다. 채식이 식물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실천방법이라니. 채식을 하면서 식물을 더 많이 먹게 되는데. 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채식주의자들은 물론 채식주의자들 조차도 채식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까지 배려하는 방법이란 걸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은 앞서 언급한 질문을 받으면 동물사육방법이 더 잔인하다거나, 동물이 식물보다 지능이 높고 고통을 많이 느끼므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물을 깎아내림으로써 동물을 더 존중해 주는 식의 대답은 자칫하면 '지능이 높고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배려해 줘야 한다'는 모순에 이를 수가 있다. 아니, 위 대답은 이미 그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지능이 높을수록 더 존중해 줘야 한다면 우리는 돼지를 개와 고양이 같이 대해야 하고 기존의 귀염받는 모든 반려동물들은 가축 정도의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우리 사회의 저능아들을 소홀히 대하거나 억압해도 이 부당한 행위는 정당화된다.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생명으로써의 존엄을 더 높이 쳐줘야 한다면, 반대로 이것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면 어떠한 잔인한 행동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식물인간 또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그 존엄성을 박탈당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저능아와 식물인간은 '인간이니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라고 반박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간이기에 더 존엄하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착각이 진실이 되어버린 괘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다.

인간이기에 더 존엄하니 그러니 매년 100억 가량의 동물 대량살상이 정당화된다는 것인가? 여러분들이 인간은 존엄하다는 착각하에 저지른 수많은 동물학대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채식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사료용으로 키운 농작물에 대해서는 사람이 먹기 위해 키운 농작물보다 살충제 수치를 제한하는 법적 기준이 훨씬 너그럽다. 이 농작물들을 먹은 가축들이 사람 몸에 들어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살충제의 80%가량은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콩, 목화와 밀, 이 네 가지 농작물에 뿌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가축 사료에는 이것들 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안락사 시킨 반려동물 및 유기동물의 시체까지 들어가는데, 이렇게 끔찍하게 만들어진 가축 사료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유해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을 지 넉넉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환경의 질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1975년 사람의 몸에 쌓이는 DDT중 95%는 유제품과 육류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위 정보들은 가축 사료에 쓰일 싸고 많은 양의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식물을 가축과 마찬가지로 생명 이하의 대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시장으로 직접 나가는 곡물들은 훨씬 너그러운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에 사료용 곡물에 비해 살충제 오염도가 1%~2%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50배에서 100배라는 이 엄청난 오염도의 차이만 봐도 사료용 곡물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상 이들의 생산환경은 가축생산환경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1g의 고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16g에 달하는 식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비채식주의자들은 그 중량의 16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식물들을 쥐어뜯고 있다는 것이다.

가축업은 매우 비효율적인 산업이라서, 가축들이 섭취한 곡물의 단백질 90%, 탄수화물 99%, 섬유질 100%를 잃어버리며, 16배의 식량을 허비하고 10배의 물을 날려버리며 이 가축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시멘트 산업 정도의 전력과 화석연료를 태워버린다. 전 세계 식수의 70% 가량(지역마다는 대략 60~95%가량)이 가축업에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인의 고기 소비를 10%만 줄여도 아프리카 기아들이 다 살아날 정도라고 하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와 사막화, 기아 급증 등의 시급한 문제는 전부 다 육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전세계 질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심장질환, 관상동맥혈전, 동맥경화, 전립선암, 폐암, 유방암, 골다공증이 모두 과다한 고단백질과 화학약품, 항생제, 살충제, 인공호르몬, 각종 병균등이 범벅된 고기를 먹음으로써 유발되는 병들이다.

이 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선 해마다 450억불을 쓰고 있다. 왜 그 돈을 가축업자들의 직업 이전 보조금으로 사용하고 가축업을 말살할 자금으로 사용하질 않는 건지.....

정리하자면, 채식을 함으로써 생명 이하로서의 취급을 받으며 평생을 지옥 속에서 사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구할 수 있으며, 또한 지구 온난화와 사막화, 물 부족, 식량부족 등을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채식은 동물사랑과 식물사랑, 더 나아가서 전 인류와 이 지구를 사랑하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이며, 우리의 미래를 구해줄 강력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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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은 식물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다!

/김지연

채식주의자들이 비채식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식물은 안 불쌍하냐'이다. 불쌍하고 안 불쌍하고를 떠나서, 물론 식물도 생명이므로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할 것이다. 채식이 식물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실천방법이라니. 채식을 하면서 식물을 더 많이 먹게 되는데. 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채식주의자들은 물론 채식주의자들 조차도 채식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까지 배려하는 방법이란 걸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은 앞서 언급한 질문을 받으면 동물사육방법이 더 잔인하다거나, 동물이 식물보다 지능이 높고 고통을 많이 느끼므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물을 깎아내림으로써 동물을 더 존중해 주는 식의 대답은 자칫하면 '지능이 높고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배려해 줘야 한다'는 모순에 이를 수가 있다. 아니, 위 대답은 이미 그 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지능이 높을수록 더 존중해 줘야 한다면 우리는 돼지를 개와 고양이 같이 대해야 하고 기존의 귀염받는 모든 반려동물들은 가축 정도의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우리 사회의 저능아들을 소홀히 대하거나 억압해도 이 부당한 행위는 정당화된다.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생명으로써의 존엄을 더 높이 쳐줘야 한다면, 반대로 이것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면 어떠한 잔인한 행동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식물인간 또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그 존엄성을 박탈당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저능아와 식물인간은 '인간이니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라고 반박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간이기에 더 존엄하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착각이 진실이 되어버린 궤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다. 인간이기에 더 존엄하니 그러니 매년 100억 가량의 동물 대량살상이 정당화된다는 것인가? 여러분들이 인간은 존엄하다는 착각하에 저지른 수많은 동물학대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채식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해주겠다.

사료용으로 키운 농작물에 대해서는 사람이 먹기 위해 키운 농작물보다 살충제 수치를 제한하는 법적 기준이 훨씬 너그럽다. 이 농작물들을 먹은 가축들이 사람 몸에 들어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살충제의 80%가량은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옥수수와 콩, 목화와 밀, 이 네 가지 농작물에 뿌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가축 사료에는 이것들 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 안락사 시킨 반려동물 및 유기동물의 시체까지 들어가는데, 이렇게 끔찍하게 만들어진 가축 사료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유해한 물질들이 포함되어 있을 지 넉넉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환경의 질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1975년 사람의 몸에 쌓이는 DDT중 95%는 유제품과 육류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위 정보들은 가축 사료에 쓰일 싸고 많은 양의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식물을 가축과 마찬가지로 생명 이하의 대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시장으로 직접 나가는 곡물들은 훨씬 너그러운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라기 때문에 사료용 곡물에 비해 살충제 오염도가 1%~2%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50배에서 100배라는 이 엄청난 오염도의 차이만 봐도 사료용 곡물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상 이들의 생산환경은 가축생산환경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1g의 고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16g에 달하는 식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고기를 섭취함으로써 비채식주의자들은 그 중량의 16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식물들을 쥐어뜯고 있다는 것이다.

가축업은 매우 비효율적인 산업이라서, 가축들이 섭취한 곡물의 단백질 90%, 탄수화물 99%, 섬유질 100%를 잃어버리며, 16배의 식량을 허비하고 10배의 물을 날려버리며 이 가축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시멘트 산업 정도의 전력과 화석연료를 태워버린다.

전 세계 식수의 70% 가량(지역마다는 대략 60~95%가량)이 가축업에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인의 고기 소비를 10%만 줄여도 아프리카 기아들이 다 살아날 정도라고 하니,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와 사막화, 기아 급증 등의 시급한 문제는 전부 다 육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전세계 질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심장질환, 관상동맥혈전, 동맥경화, 전립선암, 폐암, 유방암, 골다공증이 모두 과다한 고단백질과 화학약품, 항생제, 살충제, 인공호르몬, 각종 병균등이 범벅된 고기를 먹음으로써 유발되는 병들이다. 이 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선 해마다 450억불을 쓰고 있다. 왜 그 돈을 가축업자들의 직업 이전 보조금으로 사용하고 가축업을 말살할 자금으로 사용하질 않는 건지.)

정리하자면, 채식을 함으로써 생명 이하로서의 취급을 받으며 평생을 지옥 속에서 사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구할 수 있으며, 또한 지구 온난화와 사막화, 물 부족, 식량부족 등을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채식은 동물사랑과 식물사랑, 더 나아가서 전 인류와 이 지구를 사랑하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이며, 우리의 미래를 구해줄 강력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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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미
( 2006-07-10 20:52:28 )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여행으로 비유한 부분과
식물에게 매일 빚을 지는 것으로 비유한 부분.... 속이 다 시원합니다. ^0^
정말 궁금했거든요.. 친구들이 식물도 생명인데 왜 먹냐고 하면 정말 답답했어요.
채식의 끝도없는 좋은점을 얘기하다가도 식물은 왜 먹어도 되는지에만 부딪히면 설명하지 못하고 얼버무렸고 제 얘기를 흥미있게 듣던 사람들은 이내 실망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라도 육식의 해악을 깨닫게 하고 싶은 저로서는 무척 괴로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질문에 답할 자신감이 많이 많이 생겼어요^^
진작 읽어볼껄.. ㅋ 좋은 말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심민지
( 2006-08-24 08:15:35 )
감동적인 글들이군요 제 블로 그에 출처 꼭 남기고 퍼갈게요 감사
로하스
( 2006-08-27 20:54:16 )
아...이 글에서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제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출처는 한채연으로 표시를, 링크를 걸고, 제 홈피로 퍼 가겠습니다. ^^
신은수
( 2006-10-04 16:37:05 )
채식이 육식과 다른점을 확연히 알게 되었네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허혜원
( 2007-06-08 15:19:20 )
어린아이의 잔혹한 동심은 이제 그만되어야 합니다.
모름으로써 행해도 거리낌이 없다는...

모두 알게하여 행할수 있도록 우리모두 적극적으로 채식을 알려야 합니다.

긴글이지만 지루함 없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목화
( 2007-10-13 22:12:13 )
몇일전만 해도 아무 생각없이 먹어댔는데 존 로빈슨 책을 읽고 까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채식을 하는게 결코 쉬운일은 아닌거 같지만 사명감을을가지구
한걸음씩 나아가야겠습니다. 앞으로 생길 우리 아기를 위해서라도....
아주 명쾌한 답변인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생각 감사합니다.
전우성
( 2007-12-15 10:54:08 )
제가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글 "식물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자유계시>글번호 963 (2007.08.08) 로 올린 것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채식연합
( 2009-01-16 12:50:50 )
(다음은 전우성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동물을 죽이는 것과 식물을 죽이는 것은 같은가?다른가?^

글쓴이 : 紫庵



菜食主義者들이 대개 경험하는 일로, 특히 基督敎人들이나 無神論者들이 공격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들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動物은 죽이면 안 된다며, 같은 生命을 가진 植物은 죽여도 되느냐?
2. 肉食을 하는 것이 罪라면, 얼마 전까지도 肉食밖에 선택의 여 지가 없었던 에스키모인들은 어찌해야 했느냐?
3. 自然界는 원래 弱肉强食하게 되어 있고 人類도 원래 고기를 먹게 되어 있지 않으냐?
4. 사람들이 모두 肉食을 안 하게 된다는 일은 불가능한 것 아니 냐?

제가 佛子로서 오랫동안 菜食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 주변인들로부터 위와 같은 공격적인 질문들을 수 없이 받아왔습니다. 그 동안은 명쾌한 反駁 論理를 갖고 있지 못해서 항상 답변이 궁했던 끝에, 鈍才이지만 佛祖님들의 가르침에서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1번 질문에 대해서는, 唯識學에 근거하여 『動物의 생명을 끊는 일은 業을 지어 果報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植物의 생명을 끊는 일은 業을 짓지 않으므로 果報가 따르지 않는다.』바꾸어 말하면 식물을 죽이는 일은 罪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植物은 먹어도 된다.

2번 질문에 대해서는, 『因果應報는 피할 길이 없다. 自業自得이다. 그런 곳에서 벗어나려면 善業을 지어 惡業을 지우는 수밖에 없다.』

3번 질문에 대해서는, 『弱肉强食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은 自作自受다. 人類가 원래 菜食動物이었다는 것은 考古人類學과 人體解剖學상 定設로 굳어있다.』

4번 질문에 대해서는, 『佛敎의 四弘誓願에 衆生無邊 誓願度라는 다짐이 있는 만큼 언젠가 모든 인간들이 육식을 안 하게 될 때까지 佛子들은 그 길을 추구할 것이다.』

위의 문제들이 부처님께서 밝히신 眞理와 직결되어 있고 또 부처님의 敎說 전체와 닿아 있으므로 저 같은 淺學非才 - 이 말마저 과분합니다만 - 가 대응하기가 언감생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마냥 빗겨간다는 것은 佛恩에 보답하는 길이 아니며 어설픈 求道者이지만 취할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장님 코끼리 더듬 듯이라도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름대로 論理를 세워 한 善知識의 點檢도 받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문제를 제기한 이에게 보낸 답변으로 썼습니다.


(퍼온 글: daum 카페> 불교호스피스연합>자유계시>글번호 11139 (2007.09.14)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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