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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종교의 생명이해/류경희교수
한채연 2009-07-19 10:53:04

인도 종교의 ‘생명’ 이해

류 경 희*
한국외대 남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남아시아연구

인도 종교의 ‘생명’ 이해

차 례

Ⅰ. 머리말
Ⅱ. 힌두교의 생명이해
Ⅲ. 자이나교의 생명이해
Ⅳ. 맺는 말

<국문요약>

현대의 생태계 파괴문제는 인류의 복합적인 위기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한 시도로 세계종교가 생태학적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는 종교적 세계관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점과 태도를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생명’이해를 통해 인도종교의 생태학적 관점을 살려보려고 한다. 인도종교는 우주가 일정한 질서체계에 의해 작동되는 통일된 하나의 유기체이며 전 생명체가 상호의존성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가치체계와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인도종교의 이러한 생태학적 입장과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경쟁과 소비의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대적 삶의 방식에 대해 재고케 해준다.

Ⅰ. 머리말

현대 물질문명이 초래한 생태계 파괴문제는 인류의 복합적인 위기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근래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다양한 학문분과의 연구자들이 문제 해결의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관련 분야에서 연구를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

종교연구 분야의 경우에는 주로 종교와 자연과의 관계 특히 환경에 미치는 종교의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분과인 종교생태학 분야에서 이 문제가 연구되고 있다.

에콜로지 즉 생태학 개념이 종교연구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생태학적 전체성과 상호연관성을 지니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려는 학자와 실천가들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종교전통들이 생태학적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과 자연에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한 관점을 형성시키는데 있어 세계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인식을 토대로 한 것이다. 따라서 여러 종교의 세계관을 검토하는 작업을 통하여 환경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의 경우는 각 종교 교단 내의 자체적인 연구와 실천운동 등을 제외하면 이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비하여 학문적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1994년 한국종교학회가 생태계의 파괴와 환경의 위기를 모든 학문분과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종교연구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촉구하기 위한 조처로 '종교와 환경문제'를 주제로 학회를 열었고 이 학회에서 "생태학과 불교의 공생 윤리(김용정)"와 "기독교의 자연관"(이정배) 두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후에도 산발적으로 관련 연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보다 체계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연구가 요청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생태학적 경향을 나타내는 인도 종교사상의 생명이해를 고찰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1960, 70년대에 서구에서는 물질문명에 대한 대안 찾기의 하나로 인도 붐이 일기 시작했었다. 유사한 현상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최근에 자연과 더불어 살 것을 주장하는 생태주의 관련 책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고 대안적 삶을 실천적으로 추구하려는 움직임들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해왔던 경쟁과 정복 그리고 소비의 원리가 가져다준 폐해를 자각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화와 공존 그리고 검소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은 이러한 자각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인도 붐 현상은 이러한 대안모색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사상은 그 긴 역사를 통하여 모든 우주적 존재의 통일성을 인식하고 조화로운 공존를 중시하는 가치체계와 삶의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인도문화는 모든 생명의 유기적 연대성에 근거하는 생명존중 사상과 삶의 태도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앞으로 있을 보다 체계적인 연구에 앞서 인도종교의 친생태학적 성격을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생명이해를 중심으로 간략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Ⅱ. 힌두교의 생명이해

1. 일원론적 관점에서의 ‘생명’ 이해

힌두 사상은 전통적으로 우주를 통일적 관점에서 이해해 왔다. 인도의 전통적인 지식계층은 물론이고 인도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인도사상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일원론적(Monistic) 관점이다.

우주적 관점(Cosmic Perspective)으로도 부르는 이 관점은 우주의 근원과 우주 그리고 우주와 인간이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있고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우주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한다.

이 일원론(Monism) 사상에 따르면 우주가 하나의 근원적인 실재(Brahman) 또는 이것의 인격화인 신(Iswara)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우주의 다양한 존재들이 현상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개별성과 상이성을 지니지만 본질적으로는 근원적 실재와 동일한 본질(Atman)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실재라는 것이다.

즉 우주와 모든 존재의 본질을 현상이나 경험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제시되는 ‘Brahman’은 자라다 라는 동사어근 ‘brh’에서 나온 말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증가하는 힘 즉 ‘생명력’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이것에서 나와 성장하고 이 생명력 자체는 결코 소멸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Heimann 1964). 이러한 설명에 근거한다면 우주의 근원적 실재로 제시되는 브라흐만 또는 이것의 인격화인 신은 모든 생명의 모체이자 통합체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도들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 모두가 이 우주적 생명력의 일부이기 때문에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근본적으로 같은 본질을 지닌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존재와 현상의 개별 기능들이 역동적인 균형을 유지하면서 우주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점에서 일원론 사상은 인간에 중심을 둔 사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이 우주의 근원적 실재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가치와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강조가 인간이 우주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든가 우주에서 인간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우주의 근원적 실재가 자신을 우주로 드러내는 다양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 전체 우주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힌두 사상은 개별성을 본질로 인식하는 자기의식(ahamkara)을 우주와의 조화를 깨는 요인으로 제시해 왔고 경험적 주체인 개인보다는 모든 존재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자아를 인간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것에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해 왔다(류경희 1996). 이 점에서 우주에서 인간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서구의 인간중심 사상과는 차이를 보인다.
2. 힌두 사상의 생명 개념

앞에서 힌두 사상이 우주의 근원으로 제시하는 브라흐만은 모든 존재가 그것에서 비롯되어 성장하게 되는 ‘우주적 생명력’ 즉 모든 생명의 모체이자 생명의 총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힌두교가 무엇을 생명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집어볼 필요가 있다.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생명과 관련되는 말로는 쁘라나, 아뜨만(또는 아뜨마), 지바(또는 지바뜨마) 등이 있다. ‘쁘라나(prana)’의 사전적 의미는 호흡, 생명호흡, 생명력, 바람, 정신 등이고 아뜨만(atman)은 숨 또는 브라흐만과 동일한, 우주의 근원적 본질로서의 영혼이나 자아 그리고 개별영혼을 의미한다.

지바(jiva)는 살아 있는 존재, 생명, 생명원리, 생명호흡 또는 우주적 영혼과 구별되는 개별영혼을 의미하고 지바뜨마(jivatma)도 생명원리나 개별영혼을 의미한다(Williams 1990). 이들 용어의 의미가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생명과 관련되는 용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 가운데 쁘라나가 호흡과 생명의 의미로 보다 자주 사용되는데 이 말 역시 여러 맥락과 상황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우선 쁘라나는 가장 일반적으로는 ’생명-호흡‘을 의미하고 종종 바람인 바이유(Vayu)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리그베다의 뿌루샤 수끄따(Purusha Sukta)에 의하면 신들이 바친 최초의 희생제의에서 원초적 인간인 뿌루샤가 희생 제물로 받쳐졌는데 그의 몸 각 부위에서 세계가 만들어질 때 그의 호흡인 쁘라나(호흡)가 바람인 바이유가 되었다고 기술되고 있다.

여기서 바이유는 우주의 생명호흡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바이유가 실처럼 이 세계(존재)와 다른 세계(존재)를 묶어주고 모든 존재를 유지시킨다는 우빠니샤드(Brh., Up., 3/7/2)의 언급은 쁘라나가 모든 존재를 연계시키고 유지시키는 우주적 원리임을 보여준다(Tiwari 1986 : 1).

또한 쁘라나는 모든 감각기관이나 신체기관보다 우월하다고 묘사되기도 한다.(Brh. Up., 5/13/1, 4) 이는 신체 내의 모든 기관과 마음 그리고 죽음까지도 쁘라나에 의해 작동, 유지되므로 쁘라나가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 두 개의 감각기관이 상실되더라도 생존할 수 있지만 쁘라나가 멈추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쁘라나는 존재를 유지시키는 실체이자 생명 자체라고 할 수 있다(Brh. Up., 1/3/8). 또한 쁘라나는 몸의 상처를 새로운 살로 보호해주는 몸의 보호자로도 설명되는데 (Brh. Up., 5/13/4) 여기서의 쁘라나는 역동적인 치료력의 의미를 갖는다(Tiwari 1986 : 5).

또한 쁘라나는 브라흐만 또는 아뜨만으로도 지칭된다(Brh. Up., 4/1/3). 이는 쁘라나가 우주의 근원적 실재이자 생명의 원인으로 제시되므로써 모든 존재의 핵심적 본질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 힌두교의 중요한 경전인 바가바드기따(Bhagavadgita)도 모든 곳에 편재하고 생성소멸에서 자유롭고 영원불멸하며 감각적인 인지를 초월하는 순수의식(자아 또는 영혼)인 아뜨만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자 동일적 원리라고 설명하는데 기따에서 아뜨만은 하나의 생명과 의식의 원리로 제시되고 있다.

힌두 사상에 의하면 이 아뜨만은 생성소멸에서 자유롭고 영원하기 때문에 신체의 소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인도사상에서 죽음이란 단지 물질적 신체가 소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 사상은 윤회를 개별 아뜨만인 지바가 몸을 갈아 입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지바(또는 지바뜨마)는 처음에는 기질과 성향을 결정하는 인과신(karana sharira)을 입고 다음에 욕신(欲身, 미세신)(sukshama sharira)의 옷을 입고 끝으로 물리적 몸인 신체(sthula sharira)를 입는다(Das 1986 : 205).

이 세상에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몸인 신체를 통해서이다. 죽음이란 이 지바가 낡은 몸을 벗는 것이고 재생이란 지바가 새로운 몸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영혼이자 의식인 지바는 본래 움직이거나 행위하지 않기 때문에 미세신에 실려 다른 신체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현상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생과 사의 순환은 영혼인 아뜨마가 계속해서 신체란 옷을 갈아입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힌두 사상에서 생명을 의미하는 쁘라나는 생명에 핵심적인 호흡이자 모든 존재를 연계시키고 유지시키는 우주적 원리인가 하면 생명과 의식의 원리이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따라서 힌두사상이 말하고 있는 생명의 의미와 본질을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두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경험적 본질이다. 물질과 정신을 연결시켜주는 매개로 이 매개를 통해 생명행위가 유지된다. 따라서 쁘라나는 유기체의 본질이자 존재의 생명력이고 유지력이다. 둘째는 영적인 본질이다.

힌두 경전들은 쁘라나를 영혼 또는 순수의식으로 규정한다. 창조력이 물질일 수 없고 영원하지 못한 물질이 생명력의 기원일 수 없기 때문에 쁘라나는 의식적 실체이어야만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생명의 유지자이자 기원으로서의 쁘라나는 근원적 실재인 브라흐만이다(Tiwari 1986 : 9)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힌두 사상이 우주라는 유기체의 생명원리를 물질이 아닌 영혼 또는 의식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쁘라나는 생명이자 동시에 생명의 원인이고 생명을 넘어서는 생명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주의 유기적 질서에 대한 강조

우주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는 사상은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리그베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뿌루샤 수끄따(RV, 10: 90)에서 발견되는 원초적 인간(뿌루샤)의 몸 각 부분에서 전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신화적인 표현은 범신론적 사유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통일성에 대한 관념을 시사해 준다. 이는 우빠니샤드 사상에서 일원론 사상으로 발전하여 이후 힌두 종교와 사상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또한 인도 사상사의 전개에서 전 우주의 운행을 유기적인 하나의 질서체계로 파악하는 관점은 리그베다의 리따(Rita) 그리고 이후 종교문헌에서는 다르마(Dharma)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다. 리따는 우주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는 원리이자 법칙이다.

이 관념은 우주의 운행이 일정한 법칙에 의해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서는 창조주가 의도한 계획에 따라 우주를 이끌어 가는 목적적 질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상의 기능적 균형이다. 그리고 이 균형은 각각이 제 위치에서 자기 행위법칙에 따라 기능하는 집단적 균형이다(Heimann 1964 : 38).

우주의 구성요소들, 즉 물질계, 동물계, 인간계가 서로 상응하며 균형잡힌 과정을 밟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과 사회가 투쟁이 아니라 조화로운 양태로 행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리따를 범하는 것이 죄가 된다.

이처럼 전 우주를 유기적인 하나의 질서체계로 파악하는 힌두 관점은 후에는 다르마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함께 묶는다는 뜻의 다르마는 좁게는 개인이 지켜야할 본분으로서의 종교, 사회적 의무를 의미하고 넓게는 사회와 우주의 유기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마의 의무는 우주의 질서 또는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의 가치인 목샤(해탈)보다도 강조된다.

이 다르마가 사회적 측면에서 적용된 것이 바로 카스트제도이다. 베티 하이만(Heimann 1964 : 38)은 모든 힌두 사상에 살아 있는 유기체의 기능적 협동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그 본질에 있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향과 능력에 따른 노동분화와 축적되고 심화된 기능에 토대를 두는 건강한 생물학적-경제적 법칙이라고 평가한다.

특히 신화는 인도전통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윤리적 개념인 다르마를 설명하고 강조하는 기능을 훌륭히 해왔다. 다음 신화의 예는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라마야나에서 비슈누의 화신(化身)인 라마가 악마 라바나에 의해 (스리)랑카로 납치된 그의 부인 시따를 구하기 위해 인도 남단에 도달했다. 그곳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래서 라마는 바다에게 건널 수 있도록 갈라지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바다는 마른 땅 사이의 파인 곳을 채우는 것이 자신의 다르마라며 거절했다. 라마가 신의 화신임을 바다도 알지만 우주의 법칙을 범하는 것에는 불복한 것이다. 이는 신마저도 다르마보다 우위일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다르마는 인간 삶에 반영된 리따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세계의 질서는 자연질서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인도사상은 동일 질서의 지배를 받는 인간과 자연의 삶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이 관계를 깨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서구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강조되어온 것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인간사회와 자연 특히 생명체와의 상호의존적인 조화로운 관계가 추구해야할 가치로, 그러한 조화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되어 왔다.

그래서 힌두 신화는 자연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화와 종교예술에서 자연물을 신들과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쉬바는 황소, 비슈누는 독수리, 두르가는 호랑이, 사라스와띠는 백조 등과 연관되어지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식물도 인내, 헌신, 충성, 사랑 등의 도덕적인 자질을 지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신화적 설명이 시사하는 바는 자연 특히 생명체와의 조화로운 관계 없이는 인간의 최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신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Ⅲ. 자이나교의 생명이해

1. 자이나 사상의 생명 개념

인도종교 전반에 걸쳐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가 나타나지만 특히 자이나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철저한 금욕을 강조하는 종교인 자이나교는 독특한 세계관에 근거하여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비폭력(아힘사) 정신과 그것을 철저히 실천하는 윤리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이나교의 우주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이나교는 우주의 창조주나 제일 원인을 상정하지 않고 우주가 자기 작동원리에 의해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이나 사상은 우주의 모든 존재가 두 종류의 실체(dravya) 즉 지바(jiva)와 아지바(ajiva)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지바는 생명과 영혼 그리고 의식 등을 의미하고 지식과 행위와 경험의 주체가 된다. 순수한 본질로서의 지바는 완전한(무한한) 지식, 무한한 인지능력, 순수행동, 무한한 힘을 지니며 그 수가 매우 많다.

크게는 해방된(mukta) 지바와 속박된(baddha) 지바로 구분되고 또 속박된 지바는 다시 인간이나 동물 등 보다 높은 형태의 몸과 보다 많은 감각을 지닌 움직일 수 있는(trasa) 지바와 흙, 물, 불, 바람, 식물 등, 촉각만을 지닌 고정된(sthavara) 지바로 나뉜다.

또 지바는 형태가 없어서 감각기관으로는 인지할 수 없고 수축과 팽창하는 성질이 있어 그것이 차지하는 몸 크기까지 확장된다고 한다(Metha 1969 : 47-48). 따라서 크기에 차이가 나는데 예를 들어 개미의 지바가 작다면 코끼리의 지바는 크다. 지바가 이렇게 개체성을 지니기는 하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이에 비해 아지바는 물질이나 비생명 그리고 비의식 등을 의미하고 일종의 미세한 물질인 업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지바에 들러붙어 있다. 쉽게 말해 모든 존재의 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는 생명이자 영혼인 지바를,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통해 쌓은 업으로 해서 형성된 아지바가 둘러싸고 있다. 아지바에는 다섯 요소가 있는데 원자로 구성된 물질인 뿌드갈라(pudgala), 움직임의 원리인 다르마(dharma), 휴지의 원리인 아다르마(adharma), 공간인 아카사(akasa), 시간인 앗다사(addhasa, 또는 kala)이다.

우주의 동작원리에 의해 원자로 구성된 물질이 움직여 그들 간의 결합을 통해 사물을 형성하여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시간은 이것을 변화시킨다. 세계가 이렇게 자체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에 자이나교는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무신론체계이다.

물질 즉 뿌드갈라로 구성되는 몸에는 5종류가 있다. 오우다리까(audarika) 몸은 인간, 동물, 식물 등의 신체이고 바이끄리야(vaikriya, 변형적)몸은 천상이나 지옥의 존재들 그리고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간과 동물들이 지니는 몸으로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변형이 가능하다.

아하라까(aharaka, 투사가능한) 몸은 높은 수준의 수행자가 개발할 수 있는 몸으로 상당한 거리로 보내질 수 있다. 떼이자사(taijasa, 전기적) 몸은 소화력을 지닌 몸이고 마지막 까마나(kamana) 몸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존재와 행위의 토대가 되는 내부의 미세신이다.

이 가운데 신체만 감각기관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지바가 아지바에서 해방되면 지바는 어떤 몸도 지니지 않는 순수의식으로만 남는다고 한다.

이러한 우주론에 근거하면 모든 존재는 생명인 지바를 본질로 지니고 있고 각각의 업의 결과인 아지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존재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사물을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는 분류법은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명의 의미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나 의식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은 앞서의 힌두 사상과 마찬가지이다.

2. 아힘사(Ahimsa, 비폭력) 정신과 철저한 생명존중의 실천

자이나교도들도 힌두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윤회에서 해방되는 것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추구해 왔다. 자이나 사상에 따르면 지바에 들러붙어 있는 아지바가 지바의 무한지, 무한 능력, 무한인식을 방해하여 업을 쌓게 되고 그로 인해 윤회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려면(kaivalya) 지바를 아지바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구체적인 해탈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극심한 고행을 통해 이미 쌓은 업을 소멸시키는 것(nirjara)과 도덕적 행위, 감각기관의 활동을 제약하므로써 새로운 업의 유입을 막는 것(samvara)이 다.

이를 위해 필요한 다섯 계율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아힘사이다. 아힘사에 대한 가르침이 자이나교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자이나교의 독특성은 그 엄격하고 철저한 금지에 있다. 간디의 유명한 비폭력 정신과 그 실천은 이 아힘사 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힘사는 넓은 의미로는 모든 존재에 생명인 지바가 있으므로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에서 어떤 생명체에게도 상처나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것 즉 어떤 형태의 폭력도 엄격히 금하는 것이고 좁게는 일체의 생명체를 살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이나 사상에서 힘사(himsa) 즉 폭력은 타 생명체를 해치려는 의도로 행해지는 신체적, 언어적 그리고 심리적 행위 모두를 의미한다. 다른 생명체를 때리거나 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신체적 폭력이고 다른 이의 감정을 해치려는 의도로 거친 말을 하는 것이 언어적 폭력이다.

그리고 타인에게 나쁜 마음을 먹는 마음의 폭력은 실제로는 상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자기 영혼(지바)의 평정을 방해한 것이므로 폭력에 포함된다(Chakravati 1982 : 408).

또한 다른 존재에 해가 되는 폭력을 네 종류로 들고 있는데 첫째 건축, 요리, 목욕 등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작은 생명체에 대해 상해를 입히게 되는 우연한 폭력, 둘째 전투에서 적에게 입히는 상해와 같은 직업적 폭력, 셋째 맹수의 공격 등 자기방어를 위한 방어적 폭력 그리고 나쁜 의도로 이루어지는 의식적 폭력 등이 있다.

수도승은 이 모두를 엄격히 금해야 해서 길을 걸을 때 생명체를 밟게될 것을 우려하여 앞을 내다보고 걷고 앉거나 물건을 놓을 때 생길 수 있는 살생을 막기 위해 그 자리를 쓸어내는 비를 가지고 다니며 물 안에 있는 생명체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걸러 마시는 도구를 지니고 다닌다.

심지어는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한 상해행위도 불가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일반신도들이 이 모두를 지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폭력은 허용해서 의식적 폭력만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즉 폭력을 생존에 불가피한 경우로 국한시켜서 폭력을 최소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폭력 정신은 자이나교도의 삶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자이나 교도들은 철저한 채식주의자들이어서 단일 감각기관을 지닌 존재로 규정된 식물이나 곡물만을 섭취한다.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살생과 관련되는 백정, 농사, 어업 등의 일은 피하고 상업이나 은행업 그리고 법률이나 행정과 관련된 일들에 주로 종사한다. 생명체의 죽음과 관련되는 물건들도 일절 금해서 가죽 구두, 허리띠, 가방 등을 사용하지 않고 실크로 만든 사리도 일 만 마리 정도의 누에가 살상되어 만들어진 것이므로 금한다.

심지어는 해가 진 후에 불을 지피거나 요리를 하지 않는데 그것은 곤충들이 몰려들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이나교도 의사들은 동물에서 나오거나 또는 동물실험을 거친 어떤 약도 처방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자이나교도 법률가들은 물리적 처벌에 크게 반대한다. 국가보위를 위해 위급한 시기가 아닌 한은 군대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Tobias 1994 : 142).

자이나교도들이 지켜야할 계율로는 이 아힘사 이외에도 다른 네 가지가 더 있는데 이들은 모두 비폭력과 연관성을 지닌다. 첫째는 사뜨야(Satya)로 거짓진술과 거짓말을 금하는 것, 즉 진실만을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히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

그 진실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면 피해야 한다. 좋은 의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의 과장, 남의 흠잡기, 점잖하지 못한 말들은 진실이 아니며 부드러운 말, 자애롭고 균형이룬 태도, 평화로운 마음이 진실에 해당한다. 아힘사에 부합되느냐의 여부가 진실와 비진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아스떼야(Asteya)로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는 계율이다. 훔치는 것을 폭력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계율은 보다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서 모든 종류의 부정직을 피하도록 권고한다. 가치 있는 것을 싸게 사는 것, 누가 잃어버린 것을 가지는 것, 불법 상거래, 장물을 사는 것 등도 피해야 한다.

자이나교도들이 이들 계율의 실천을 통해 진실성과 정직성을 지니게 되면서 주위의 존경을 받아 왔다. 셋째는 브라흐마차르야(Brahmacarya)로 이 계율은 힌두교와 불교에서도 중시되나 자이나교가 훨씬 더 강조한다.

이는 모든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버리라는 계율로 수도승은 어떤 성적 접촉도 금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정을 매우 엄격한 의미로 인식하는 이유가 작용하는데 사정은 수많은 정자를 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신도의 경우는 결혼생활에만 충실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과도한 욕망도 금하고 있다.

넷째는 아빠리그라하(Aparigraha, 무소유, 무집착)이다. 집착은 삶에 얽매이게 만드는 주 요인이므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물질적 소유와 그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는 것이다.

욕망 때문에 악의 뿌리인 집착이 생기고 그로 인해 폭력이 초래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자이나교도들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을 생명이자 의식인 지바를 지닌 생명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폭력을 철저히 금해 왔다.

그러나 아힘사는 단순히 힘사를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지녀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이나교도들은 아힘사를 지키기 위해 주로 상업과 은행업 등에 종사하는데 여기에 정직성과 도덕성이 작용하여 그들이 금욕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음에도 성공한 사업가들이 많고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쌓은 부를 아힘사 실천의 일환으로 사회복지를 위해 사용한다. 일례로 병든 사람이나 동물, 새들을 위한 병원을 세워 운영하고 동물복지센터를 세우고 늙고 약한 동물들을 구해서 자연사할 때까지 돌본다. 자이나교도들은 농업, 벌목, 심지어는 광석채취 등 지구훼손과 관련된 것들을 허용하지 않는다(Tobias, 1994 : 141).

이와 같이 자이나교도들은 아힘사 계율에 따라 전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모든 존재와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택해 왔다. 따라서 자연을 방해하려하지도 않았고 어떤 불평등성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비를 최소화시키고 또 폭력을 생존에 불가피한 경우로 최소화시키는 등 자신들의 문제를 생태학과 정신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해왔다(Tobias, 1994 : 139). 그렇기 때문에 자이나교도들은 오늘날 자이나 계율이 잘 지켜질 수 있다면 현대 물질문명의 폐해를 줄이고 세계를 자기파괴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Ⅳ.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도종교는, 우주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여 전 생명체의 통일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고 우주가 유기적인 하나의 질서체계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고 봄으로써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 공동체의 유기적 질서를 유지시킬 수 있는 가치체계와 삶의 방식들을 발전시켜 왔다.

특히 자이나교도들의 생명존중 사상에 근거한 아힘사 교리의 철저한 실천은 그 지나쳐 보이는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문화를 모색하려는 우리에게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해 가장 금욕적인 관점과 태도를 지니고 있는 자이나교도들이 역설적이게도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고 그 부를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살리려는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까지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우리의 삶을 지배해왔던 경쟁과 정복 그리고 소비의 원리가 가져다준 폐해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조화와 공존 그리고 검소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다.

그러나 현재 인도의 이러한 전통적인 우주관과 삶의 방식은 서구적 세계관과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인도에서 힌두 근본주의가 대두되는 현상은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반응의 측면도 없지 않다.

이들은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서구적 우주관과 속의 영역의 확대인 세속주의는 모든 사물에서 신성을 인지하는 인도인들의 심성에는 수용되기 힘든 것이며 또한 서구 세속주의 개념은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내적인 균형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따라 자연을 재질서지우려는 것이므로 인도인들의 의식에 부합될 수 없는 것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현대 인도가 직면하고 있는 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서구적 시각이나 관행이 아니라 인도의 전통적인 시각과 관행으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류경희1998, 84-85). 힌두 근본주의세력이 정치적인 목적을 강하게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서양의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이념적 갈등의 측면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서구화와 자본주의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인도에서 생명과 삶에 대한 전통적인 사유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대안 모색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다음 과제로 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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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Understanding of 'Life' in Indian Religion

Ryu, Kyoung-hee

In these days, the ecological crisis resulting from environmental degradation is increasing. Recently, the world religions are being studied from the ecological perspective to analyze the causes of this environmental crisis and to find solutions. This article is also one of such efforts. In this article, we are studying about the ecocentric position of Hinduism and Jainism through examining the understanding of 'life' in those religions.
Indian religions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is an organic body and is operated by the one organic order system. Therefore they have emphasized on the unity of whole living beings and their interdependence. And they have developed the value-system and ways of life which respect the whole living beings in the world and can sustain the organic order system of living-community.
They are very much emphasizing the harmony and coexistence of whole living beings and recommending the simple life. This ecological position and attitude of Indian religions make us rethink about our modern way of life which are controlled by the principles of competition and consu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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