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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바라본 채식과 자비정신
한채연 2014-03-31 11:46:23

(펌)불교에서 바라본 채식과 자비정신

불교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皆有佛性)는 절대적인 평등관과, 모든 생명이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바라기 마음에 기초한 비폭력 정신인 아힘사, 그리고 불성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심에 기초하여, 불살생(不殺生)을 첫번째 계율(戒律)로 삼고 있다. 때문에 살생과 관련한 채식부분이 얼마나 불교와 밀접하고도 중요한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채식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근거 가운데 가장 독특한 사상은, 아마도 생명의 윤회 및 그 과정에서 전개되는 인과응보의 법칙일 것이다. 티벳에서는 최악의 욕이 ‘인과를 모르는 자’라고 한다. 무지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비심은 인과를 꿰뚫어 보는 지혜에서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도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오늘 우리의 식탁위에 올려져 있는 한 점의 고기에서도 그 고기가 어떻게 해서 식탁위에 올랐고 어떻게 비참하게 죽어갔는지, 어떤 원한을 품고 죽어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과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꿰뚫어 본다면 부처님의 자비심이 우리의 식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몸소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불교의 경전에서는 육식에 대하여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채식 기반을 검토해 보도록 하자.

능엄경楞嚴經은 채식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아난아, 내가 비구들에게 오정육(五淨肉)을 먹도록 했는데 그들 고기는 모두 신통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 생명의 씨가 없다. 그들 바라문이 사는 곳은 땅에 습기가 많고 모래가 많아 초목이 자라지 못한다. 나는 자비의 신통으로 고기를 만들어 그들이 그 맛을 느끼도록 했다. 여래가 멸도(滅道)한 후 중생의 고기를 먹으며 부처의 제자를 자칭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이들 중생들은 모두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를 범하는 까닭에 인간으로 있을 때 양을 잡아먹고 양은 죽은 후 다시 인간이 된다. 이렇게 십류(十類)의 중생들이 끊이지 않고 윤회를 거듭하며 죽고 태어나는 가운데 서로 먹고 먹히는 악업이 영원히 몸을 묶어 이를 근절시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둬야 한다. 고기 먹는 자들이 설혹 삼매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대나찰(大羅刹)로서 그들은 사후 필히 생사고해에 빠져버린다. 그들은 부처의 제자가 아니다. 고기를 먹는 자들은 서로 살상하여 먹는다. 이 생(世)에서는 내가 너를 먹고 다음 생(世)에서는 네가 나를 먹는 악순환을 영원히 끊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삼계를 뛰어 넘을 수 있겠는가?”

범망경(梵網經)에서는,

“만일 부처의 제자라면 그 어떤 고기도 먹어서는 안 된다. 중생의 고기를 보면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들은 그 어떤 중생의 고기라도 입에 대어서는 안 된다. 고기를 먹으면 무량죄(無量罪)를 짓게 될 것이다.”

“불자가 자비한 마음으로 산 것을 살려주는 일을 할 것이니 일체의 남자는 다 나의 아버지요, 일체의 여자는 다 나의 어머니라!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다 나의 부모이거늘, 잡아서 먹는 것은 곧 나의 부모를 죽이는 것이며 나의 옛 몸을 죽이는 것이다. 일체의 흙과 물은 다 나의 먼저 몸이요, 일체의 바람, 불은 다 나의 본체이니 산 것을 풀어서 살려주라.

세세생생에 몸을 받아나서 항상 머무른 법으로 남을 가르쳐 산 것을 놓아주게 하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축생을 죽이려 하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구호하여 그 고난을 풀어주며 항상 교화하여 보살계를 강설해 중생을 구제해야 하느니라!”

<열반경 涅槃經>에서는,

“내가 열반한 후 무량백세(無量百歲)가 지나도 출가한 비구가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계율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음식에 대한 탐심이 대단히 많다. 사실 그들은 출가인이 아니다. 겉모습은 출가인의 모습이지만 사견으로 충만하여 있다. 그들은 ‘여래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도록 허락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가섭이 여쭙기를 “왜 전에 사람들에게 삼종정육(三種淨肉)이나 구종정육(九種淨肉)을 먹도록 허락하셨습니까?”

부처가 가섭에게 이르기를 “그것은 그들이 즉시 육식을 끊지 못할까 우려해서였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그런 종류의 고기를 먹도록 하여 그들이 서서히 고기 먹는 것을 끊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나의 진정한 뜻은 그들이 바로 고기 먹는 습관을 끊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가섭아 나는 지금부터 모든 내 제자들이 그 어떠한 중생의 고기라도 일절 입에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노라”

또 '육변채(肉邊菜,고기와 함께 요리된 주변의 채식)'에 대하여는,

가섭이 여쭙기를 “걸식(乞食)할 때에 고기가 섞인 음식을 얻으면,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고기를 가려내고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먹어야 한다.”

<능가경 楞伽經>에서는,

“이익을 위해 중생을 살해하는 자, 재물로써 고기를 사먹는 자나, 양자 모두 죄악의 업보를 받아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만약 시키거나 구하지 않는다면, 세 가지 깨끗한 고기(三淨肉)도 없을 것이니, 이 모두가 원인이 없지는 않으므로, 마땅히 먹지 말아야 한다.“

“미래에 어리석은 자들이 계율을 함부로 해석하여 정법을 파괴하고 심지어 여래의 교법(敎法)을 훼방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들은 ‘부처가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 부처 자신도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대혜여! 나는 다른 경전에서 계를 가리는 10개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중 3종의 상황에 해당되는 경우만 허락했을 뿐이다. 그 때 나는 그들이 바로 육식을 끊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할까 우려하였다. 그래서 임시법을 제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점차 육식을 끊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진정한 마음은 그들이 바로 육식을 끊고 발심하여 수행하기를 바랐다. 지금 나는 이 경에서 딱 잘라 아주 명백히 밝혀두겠다. 지금부터 자기 스스로 죽었든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든 중생의 고기에 관한 한 모두 입에 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명백히 말했는데도 여래를 비방하고 부처가 고기 먹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영원히 악업에 묶여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대들은 알리라.”

<대승입능가경 大乘入楞伽經>에서는,

“무릇 피와 고기는 모든 신선이 팽개치고 뭇 성현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육식하는 자는 모두 천상에서 멀리 물리친다. 입에서는 항상 악한 냄새와 기운이 나는데, 고기는 좋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모든 죄악만 낳을 뿐 아니라, 모든 공덕을 파괴시킨다.

그러기 때문에, 뭇 신선과 성현들이 육식하는 자를 멀리 물리치는 것이다.“ 즉 육식하는 자는 천상 신명 세계의 가피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모든 일이 시련과 장애로 점철되며,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반 세속인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마음을 닦아 불성(佛性)을 깨치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려는 수행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또 <화엄경 華嚴經>에 의하면,

“살생한 자는 반드시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천벌을 받는다.(이를 정보正報라고 함) 그리고 삼악도의 업보가 끝나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단명短命과 질병의 양종 업보를 더 받는다.(이를 여보餘報라고 함)” 물론 여기에서의 살생에 간접살생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요자와 공급자는 똑같은 공범인 셈이다.

또, “보리심(菩提心)을 잊거나 상실하고서 각종 착한 법(善法)을 닦는다(修行)는 것을 일컬어 마업(魔業 : 악마의 수행)이라고 한다.” 이는 화엄경에 나오는 잠언인데, 육식에 대한 정문일침(頂門一針)의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이외에 여러 선사들과 경전에서는 채식에 대해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당唐나라 때 유명한 한산寒山 대사의 선시禪詩에는, 이런 사연도 적혀 있다. 세간의 한 집안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혼례를 올리고 잔치를 베푸는데, 그 신부가 본디 신랑의 할머니였고, 연회석에 앉아 주육酒肉을 먹는 빈객들은 과거 그 집의 가축이었으며, 현재 솥 안에 요리된 고기들은 모두 그 가문의 친족들이 환생還生한 것이었다고 한다. 중생이 육도를 윤회하면서도 인과 법칙을 모르고, 서로 잡아먹으면서 그리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생의 어리석음(無明)에 대해, 한산 대사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 또 이렇게 비탄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육도의 윤회가 슬프기 짝이 없구나. 손자가 할머니를 신부로 맞이하고, 소와 양이 상석에 앉았는데, 여섯 친족이 솥 안에서 끓고 있네 그려. (육도윤회고六道輪廻苦, 손아취조모孫兒娶祖母, 우양석상좌牛羊席上座, 육친와내자六親鍋內煮.)”

그리고 자수 선사慈壽 禪師는 이런 게송偈頌을 읊기도 했다.

“세상에 살생이 많아서, 마침내 창칼의 겁탈이 일어나네. 목숨을 빚졌으면, 그대 몸을 죽이고, 재물을 빚졌으면 그대 집을 불사르네. 그대 처자가 흩어지는 것은, 일찍이 그의 둥지와 집을 파괴한 때문일세. 인과응보는 각기 서로 부합하는 법이니, 귀를 씻고 부처님 말씀이나 들어보소!”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살아 계실 때, 유리왕琉璃王이 대병大兵을 거느리고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몸소 유리왕을 찾아가 평화적인 해결을 강구하였으나, 끝내 거절당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석가족釋迦族 인민에게 자위적인 방어만 취하고, 공격은 하지 말도록 분부하였다.

유리왕은 군대가 성안에 침입하여 도처에서 인민을 살륙하므로,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위대한 신통력을 발휘하여, 석가족 5백인을 바루 하나에 담아 천궁天宮에 피난시켰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바루를 내려와 열어 보니, 사람은 간 데 없고 핏물만 흥건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목련존자가 그 연고를 여쭈어 보자,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아주 오래된 과거에 이곳에 큰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안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어느 큰 명절에 마을 사람들이 연못 안의 물고기를 몽땅 잡아다가 먹었다. 그 중 큰 물고기 한 마리도 잡혔는데, 한 어린애가 물고기는 먹지 않으면서도, 재미로 막대기를 들어 그 물고기 머리를 세 대 때렸다.

그 때의 큰 물고기가 지금의 유리왕이고, 작은 물고기들은 현재의 유리왕 군대인데, 마을 사람들은 지금 그들에게 피살된 석가족이다. 그때 물고기는 안 먹고 그 머리를 세 대 때리기만 했던 어린애가 바로 나(부처님)인데, 나는 물고기를 먹지 않아 피살은 면했지만, 물고기 머리를 세 대 때린 죄로 지금 머리가 사흘간 아픈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장경(地藏菩薩本願經)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과거 무수한 세월 이전에 청정연화목여래淸淨蓮華目如來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한 아라한阿羅漢이 매우 열심히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었다. 광목光目이라는 한 여자가 이 아라한을 정성껏 공양하자, 아라한은 그녀에게 무슨 부탁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그 여자는 이렇게 청했다. “우리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날에 내가 공덕을 쌓아서 어머님의 고통을 풀어드리고 싶은데, 현재 우리 어머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라한은 그녀를 동정하여, 이내 선정禪定에 들어가 그녀의 모친을 찾았는데,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음을 알았다. 아라한이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의 어머님은 생전에 무슨 중죄를 범했기에, 사후에 이렇게 큰 업보를 받는 것이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 어머님은 생전에 물고기를 가장 즐겨 먹었는데, 특히 그 알을 좋아해서 무수한 생명을 죽였습니다."

이에 아라한은 그녀에게 청정연화목여래의 명호名號를 정성스럽고 간절히 외우며, 그 불상佛像을 조각하여 모시면, 산 사람과 죽은 자 모두에게 크게 이롭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여자는 지옥의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모두 제도하여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자신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誓願을 굳게 발하였다. 바로 그 분이 그토록 유명한 지장보살地藏菩薩님이시다.

위 이야기들은 살생의 과보가 어떻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과응보가 이럴진대, 어찌 성불과 무량한 보리심을 추구하는 수행자가 육식을 하고도 삼계를 해탈하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채식의 역사적 환경적 기반]

-당시의 시대상으로 불교와 자이나교가 함께 발생하여 두 교가 대립하는 양상을 띠었는데, 자이나교는 특히 철저한 채식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자이나교에서는 입을 막는 천을 두르고 다녔는데, 이는 호흡을 하면서 혹 입에 들어와 죽을지도 모르는 작은 생물들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또 그들은 비가 오면 마차를 운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비가 오면 흙 밖으로 나오는 지렁이 등의 생물이 마차의 바퀴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똑같이 아힘사를 강조하던 불교도 이에 못지않게 채식을 강조하였을 거라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Sakya족)의 부족 명칭의 뜻은 곡물과 야채 농사는 짓는 종족이란 뜻이다. 따라서 석가족은 농사를 지으며 채식을 위주로 하는 종족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년에 돼지고기를 드시고 돌아가셨다는 내용은 번역상의 오류이다. 원 경전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돼지의 기쁨'(혹은, 돼지의 발)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것은 땅속에 자라는 고급 버섯 식물이었는데 후각이 발달된 돼지를 이용해 이 버섯을 찾는데, 돼지가 이 버섯을 발견하고 발로 땅을 파헤치면서 매우 기뻐해서 ‘돼지의 기쁨’ 혹은 ‘돼지의 발’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상한 이 버섯의 요리를 드시고 대열반에 드신 것인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돼지의 기쁨’혹은 ‘돼지의 발’이 ‘돼지고기’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불법이 세상에 퍼진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가 덕망 높은 스님을 대접함에 있어서도 고기를 꺼려하며, 심지어 불심이 깊은 일반신도들에게도 절에 갈 때만큼은 목욕재개를 하고 몇 일전부터 일체 고기를 먹지 않고 신구의를 청정히 함이 일반적인데 하물며 석존의 생애에 어떻게 재가제자가 부처를 대접함에 고기를 공양할 수 있었겠는가?

[데바닷다의 오법과 관련한 채식의 올바른 이해]

데바닷다가 석존에게 반기를 들고 새로운 계율을 정하였는데, 이른바 오법이다. 그 내용은 1. 평생 아란야(阿蘭若)에 머물 것, 2. 평생 걸식할 것, 3. 평생 누더기 옷을 입을 것, 4. 평생 나무 아래에서 머물 것, 5. 평생 생선과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삼정육도 허락지 않음)

위 오법의 근본 취지는 수행자가 비교적 빨리 열반을 증득케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이와 같은 고행법은 일반에게 유행되었었다.

하지만 석존께서 전적으로 오법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한쪽으로 치우친 고행 혹은 낙행(樂行)이란 모두가 원만하지 못하여 중도의 원칙에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법에 채식이 있다고 해서 채식이 고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 삼정육(三淨肉)을 허락한 것도 오직 병든 비구에게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바닷다의 오계를 배척한다는 명목하에 채식계율마저 배척한다는 건 데바닷다를 부정하기 하고자 함이 지나쳐 오히려 부처를 부정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이상에서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생과 관련하여 어떻게 채식을 강조하였는지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육식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환경적 요인들을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수행여정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IP Address : 121.131.174.162 
김민정
( 2015-01-30 23:03:09 )
오계를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