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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영적 측면(The Spritual Aspect of the Vegetarian Diet)/나마스테
한채연 2007-03-20 11:54:42

(다음은 나마스테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 채식의 영적 측면(The Spritual Aspect of the Vegetarian Diet) >-키르팔 싱(KIRPAL SINGH)

모두가 안락과 평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멀리 있으며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허사가 되며 얻지 못한다. 왜? 왜냐하면 우리가 그릇된 방향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세계 즉, 외적 그리고 내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 먼저 우리는 외적인 세계에서 평화를 얻기 위해서 외면적인 일들을 안정시켜야 하며 그런 뒤에야 우리는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올바른 직업
-올바른 행동
-올바른 식단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자신과 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나머지는 그저 낭비일 뿐이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마음”은 매우 잘 알려진 격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 모두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며 그런 뒤에야 그것들을 영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 없이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첫 번째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음식이다. 왜냐하면 음식은 신체와 마음 모두에게 필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유형의 음식을
바르게 벌어
바르게 얻는 것

이는 그러한 목적에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격언에 있듯이 자신의 이마에서 나는 땀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며 다른 사람의 수입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생계를 위해서 정직하고 가치 있는 직업에 -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 종사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가식, 위선, 악의 그리고 적의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카르마의 법칙은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는 반작용을 가져오며 따라서 끝없는 이어짐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므로 얼마나 가난 하든지 간에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정직한 직업으로는 부유해질 수가 없다. 부유함은 가난한 사람과 학대 받는 사람, 나무꾼과 물푸는 사람의 신음소리로 자라나며 우리 동지들의 피로써 번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족한 음식과 맛있는 음식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만드는 데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한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불행으로 얼룩져 있으며 따라서 결국에는 우리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들 모두는 보이지 않는 지옥불에 타고 있지만 이를 알지 못한다.”

음식이란 알다시피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이 음식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생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최대한 잘 이용해야 한다. 미각의 종이 된 사람은 어떤 가치있는 일도 할 수 없다.

올바른 미각의 조절로써 우리는 전체적인 육체와 정신 체계를 조절할 수 있다. 간소한 식단이 소위 말하는 현대 요리법의 진미보다 더욱 영양이 많고 유익하며 영적 발전에 도움을 준다. 간소한 식단은 항상 편안한 느낌을 주고 마음을 평안히 해주며 우리 힘으로 (비록 매우 제한적이더라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내가 오랜 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한 뒤 퇴직하려고 할 때, 내 상관은 나에게 연장 신청을 할지를 물었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말했다. “연장은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적은 연금으로도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할 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사트빅(SATVIK): 순수한 음식:우유, 버터, 치즈, 쌀, 렌즈콩, 콩류, 곡식, 야채, 과일 그리고 땅콩류.
-라즈식(RAJSIK): 힘을 내게 해주는 음식:후추, 양념, 조미료, 시고 쓴 것.
-탐식(TAMSIK): 힘을 빠지게 하는 음식:오래된 음식, 계란, 고기, 생선, 조류 그리고 술, 등등

위에서 언제나 사트빅 또는 순수한 음식을 가장 선호해야 한다. 이것은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것도 식욕이 포화되는 점보다 약간 적게 섭취해야만 한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멋을 때는 필요 이상으로 먹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래서 과다한 음식이 섭취되면 건강과 에너지를 주기 보다는 해롭게 된다. 음식이 적절하게 소화되지 않고 신체에 동화되지 않으면 복통과 장애 그리고 때로는 심지어 콜레라도 발병시켜 생명까지도 잃게 된다. “위에 너무 무리를 주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쉽사리 구역질을 느낄 것이다. 비록 좋은 것이라도 과다하면 때로는 해로울 수 있다. 음식에 있어서 중용을 지키는 것은 인간에게 활력을 주는데 도움이 된다.

푸라나(고대 인도 경전)에서는 음식-신이 우주를 지지하는 존재인 주 비쉬누에게 불만을 터뜨리며 자신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한 예화가 있다. 그러자 주 비쉬누는 유머스럽게 말했다: “그대를 너무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는 그대도 그들을 먹어야 할찌니, 이는 그것만이 유일한 처방이기 때문이라.”

신선한 공기는 우리 식단에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천천히 들이 마쉬고 잠깐 멈추었다가 우리 몸에 불순물을 없애도록 완전히 내쉬어야 한다. 이외에 우리는 깨끗한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 주스를 마셔서 장기를 씻어내 깨끗하게 해야한다. 또한 뜨거운 음료나 탄산음료, 알코올 음료 그리고 마약을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마음과 지성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음식으로는 곡식과 과일이 좋다.

또한 가정 주부는 사트빅 음식을 하는데 있어서 주를 향한 부드러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이(the Beloved)에 마음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음식을 만들게 되면 하늘에서 온 만나(Manna)가 되며 섭취하는 이에게 축복이 된다.

위대한 스승이신 하주르 바바 사완 싱 지 마하라즈(Hazur Baba Sawan Singh Ji Maharaj)는 한 인도 농부의 예를 들어 말하곤 했는데, 그 농부는 밭을 갈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영혼을 바치는 찬가를 불렀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이다.

1921년에 나는 시크교 36번 지구의 회계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순종적인 요리사를 얻었다. 그에게 내 식사를 할 떄에 신의 신성한 이름을 반복해서 말하고 누구도 주방에 들여서 잡다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만 한다면, 그의 아내가 과거에 무엇이었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리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삼일 간은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4일째 되던날, 명상시에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밤중에 나는 요리사를 불러 그가 요리 하는 도중에 누가 함께 주방에 있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부인했으나 결국은 누가 주방에 들어와서 대화를 했고 그래서 마음이 신을 향한 부드러운 기억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에게 경고했고 그 뒤로는 내 명령을 매우 잘 따랐다. 우리의 영적 발전과 음식을 준비하고 섭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순수함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이런 것이다.

쉬이크 사아디(Sheik Saadi)는 페르시아의 쉬라즈에서 난 위대한 신비 시인이었는데, 언제나 위를 네 부분으로 나누라고 설하였다. 두 부분은 간소한 음식을 적정량 섭취하기 위한 공간으로. 한 부분은 순수한 물을 위한 공간으로. 나머지는 신의 빛을 담기 위해 남겨둘 부분으로 하라.

이슬람의 예언자인 하즈랏 모하메드(Hazrat Mohammed)의 삶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발견한다. 어느날 한 의사가 와서 예언자의 무리인 “우맛(Umat)”의 사람 중 아프거나 병든 사람들 위해 봉사하겠다고 제의하였다. 의사는 약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지냈는데, 무리중 아무도 병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언자에게 가서 아무도 도움이 필요 없는 것 같으니 떠나도 좋겠냐고 물었다. 모하메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고 의사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리가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병에 걸릴 일이 전혀 없을 것이요. 왜냐하면 모두가 한 가지 만병통치약을 따랐기 때문이지요.”

'배가 고플 때, 일반적으로 먹고 싶어하는 것 보다 항상 조금 적게 섭취하라.’
‘순결한 삶과 정직한 직업을 가지라.’

바바 자이말 싱 지(Baba Jaimal Singh Ji)는 그 시대에 위대한 성자였는데, 몇 조각의 빵이나 차파티를 사서 옷가지에 싸넣은 뒤 나무 가지에 걸어두곤 했다. 그는 하루 종일을 명상에 헌신한 뒤 선정(Samadhi)에서 깨어날 때 그 조각 중 하나를 물에 적셔 먹고는 다시 명상을 하였다. 밀 전체로 만든 빵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음식이다. 우리는 겉겨를 벗겨내고 낱알을 갈아 흰 가루로 만듦으로서 생명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며, 따라서 인(P)과 기름을 파괴시켜 엉망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매우 자주 내 눈으로 하주르 바바 사완 싱(Hazur Baba Sawan Singh)의 음식을 확인했는데, 그것은 매우 간소하고 매우 적은 양의 몇 가지 재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든 성자들은 매우 검소한 식사를 한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샤마즈 타브레즈(Shamas Tabrez)와 스와미 쉬브 다얄 싱 지(Swami Shiv Dayal Singh Ji)도 마찬가지로 다음의 원칙대로 살았다:

"적게 먹고 행복하게 지내라.”

간소한 음식과 높은 생각이 높은 도덕 그리고 순결한 행위와 엮어질 때, 오늘날 시장에 넘치는 강장제는 필요 없게 된다. 호화로운 음식은 위장 흐름을 놀라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매우 위험하게 만드는 끔찍한 결과를 야기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길에서 발전이 없는 것 같다고 불평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식단과 삶이 그 원인임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예언자 모하메드는 우리가 알다시피 거의 보리빵으로 식사를 했다.

사트빅 음식은 머리와 가슴을 모든 불순물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는 매일 범죄와 타락이 증가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특정 경찰단이 이에 맞추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본다. “먹고, 마시고, 즐겁게 지내라”는 것이 그날의 사명이다.

모두가 복잡하게 하는 것과 재미 있는 곳에 가는 것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 등등과 빠듯한 수입을 넘어서는 모든 일들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떻게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가? 알라딘의 신비한 램프만이 돈을 마음껏 줄 것이다. 정직한 사람은 자기 육신과 영혼을 유지하는 것도 거의 힘들지만 극소수 만이 눈부신 세상의 유혹과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다수는 타락한 삶을 산다.

어떤 사람은 눈의 욕구로 고통 받으며, 다른 사람은 귀의 욕구로, 또 다른 사람은 다양한 접촉욕구로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내, 딸, 자녀들은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들을 따라간다. 세상은 빠르게 성장하는 퇴화의 손아귀에 있다.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로 알 수 있다.” 당신이 만일 당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친구들을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의 자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우리들 모두는 육신을 쓴 영혼이다. 영혼은 신과 같은 본질을 가지며 신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 바울이 모든 생에 걸쳐 가르친 것이다.

꾸란(Al-Quran-한국:코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 인간이여, 선을 행하라; 너희 부모, 친지, 고아, 부족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네 이웃과 네 친구들에게 선하게 대하라; 그런 삶이 알라를 기쁘게 할 것이다.”

“알라는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다;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은 신에게 사랑 받지 못한다.”

스승은 항상 다음과 같이 명한다:

1. 최상에서 최하의 단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생물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2. 가슴 속에서조차도 비폭력을 준수하라
3. 진실하라
4.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 말, 상징 또는 행동으로 해하지 말라
5. 모두에게 친절하라
6. 밝은 마음을 가지라
7. 인간 본질이 선함을 믿으라
8. 다른 이를 욕하지 말라
9. 중상과 호색적인 이야기 그리고 하찮은 일에 탐닉하지 말라
10. 남을 고소하는 것은 더욱 큰 무게로 우리에게 돌아오므로 이를 피하라.

만일 우리가 신을 깨닫고자 갈망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가슴은 신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망고 씨앗이 심어지면 땅에서 단맛을 흡수하지만, 고추 씨앗은 쓴맛을 흡수한다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것 그대로 된다. 세상 어떤 것도 좋거나 나쁘지 않다. 다만 우리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본 씨앗과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는 마음 상태에 맞는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고대 인도의 훌륭한 시를 요약해 놓은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순결과 깨끗한 삶을 외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좋은 행동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마치 나무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인간도 그의 행동으로 알 수가 있다. 이것은 커다란 가치를 갖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또한 인간이 현세와 후세에서 이름을 꽃피우고 칭송을 받도록 돕는다. 그는 모든 생물의 친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생물도, 심지어 벌이나 작은 개미까지도 다치거나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을 알게될 것이다.

드리트 라슈트라 왕자(Prince Dhrit Rashtra)는 강대국 바랏(Bharat)의 왕인 구루(Kuru)의 아들이었는데, 어느날 판다브 왕자(Pandav Prince)인 아르주나(Arjuna)의 활인 간디바(Gandiva)를 헐뜯었다. 아르주나는 화가 나서, 간디바에 화살을 얹어 놓았다. 주 크리슈나가 마침 가까이에서 아르주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르주나는 대답하기를:
“나는 카스트리야(Khastriya) 왕자로서 누구든 나의 위대한 활을 모욕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 크리슈나가 말하였다.
“오 아르주나여, 다르마(Dharma) 즉 올바름의 열매가 무엇인지 그대는 내게 말해줄 수 있는가. 고통인가 즐거움인가?”

아르주나는 대답하였다.
“다르마 즉 올바름은 오직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사랑과 화합에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를 먼저 생각한 뒤에 행동하거나 어떤 행위를 의도해야만 한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 수명이 길어질 것이다.

덕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결코 남을 향해 나쁜 생각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으며 평정을 잃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장수하게 된다. 삶의 과정은 호흡의 방법에 의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호흡은 리듬을 타게 된다-10번에서 12번을 1분에 한다. 그러나 발작적으로 분노하거나 흥분하게 될 때는 20에서 23번의 호흡을 한다. 그러므로 선한 행위나 덕이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악한 행위나 악덕은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에는 참된 진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이 비록 칭찬할 만한 행위를 하더라도 만일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당신의 말은 친구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당신은 가슴에는 욕정을, 눈에는 추파를 담고서 순결을 설교할 수 없다. 곧 고양이는 가방에서 나오게 된다.

대중은 당신을 맹목적으로 오랫동안 믿을 수 없으며 액면가 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안됐지만, 만일 내가 왜 단체들과 설교자들이 매우 자주 혹평을 받는지 의문을 갖는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 가르치는 바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올바른 마음과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내면과 외면 모두에 완벽한 사랑의 샘을 갖고 있다. 그는 공정하고 숨김 없이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게 대우한다. 진실이 그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는다. 청중은 넋을 잃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에게 귀기울인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이 그의 내면에 있는 사랑과 순결한 생각이라는 진정 작용에 흠취되고 모두가 만족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다수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권능의 탑으로 우뚝 선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주 테니슨(Lord Tennyson)은 위대한 시인으로서, 갈라하드(Sir Galahad) 경(원탁의 기사중 하나)에 대하여 언급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힘은 열 사람의 힘과 같다. 왜냐하면 나의 가슴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슴에서 넘치는 대로 말을 한다고 한다. 반면에, 만일 누군가 이기적이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만심을 갖고 자신이 앉아 있는 생명나무를 자기 도끼로 자르는 것이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 할 것이며 그에 대한 공포속에서 살 것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얼굴을 보기조차 겁내며 불길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어디를 간다면, 사람들은 그를 먼 거리에서 조차도 피하며 불행히도 저주 받은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반면에 올바른 사람은 자신의 결점에 주의하며 자아 성찰을 통해 하나하나 없애 나간다. 스와미 쉬브 다얄 싱 지(Swami Shiv Dayal Singh Ji)는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집어 내어 소멸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모든 다른 성자들도 같은 문맥으로 말해왔다.

1.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2. 네가 다른 이에게 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하라

전체 종교 철학이 바로 이 두가지 주원칙에 귀속된다. 만일 우리가 이 두가지 황금율을 지킨다면, 우리 삶은 확실히 변화할 것이다. 가슴에 동정심도 인간적 감정도 갖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라고 조차 부르기에 적합치 않으며 신을 알 수가 없다. 적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은 곧 그들의 마음이 누그러질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한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라. 모두에게 잘 대하면 스스로 평화롭게 되며 당신의 주위에 사랑스러운 은총이 당신에게서 퍼져나갈 것이다. 당신이 잘 해주었던 사람의 기도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남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당신을 혜택으로 채울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우선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며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에 선한 파장을 형성할 것이다.

단 한마디로 우리는 판치 쉴라(Panch Shilla) 또는 다섯 가지 근본적인 진실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을 토대로 우리는 영성이라는 훌륭한 저택을 지을 수 있다. 그것은:

1. 생각, 말 그리고 행위에 있어서 비폭력.
2. 진실함.
3. 순결함.
4. 지위, 부 또는 학식에 무관한 모두를 향한 사랑과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
5. 비이기적 봉사-육체적 그리고 재정적 또한 다른 이의 고통과 기쁨을 서로 나누려는 것

“살아 있는 스승은 입문자의 어려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한다.”
“스승의 제자는 죄를 멀리 한다.”

위의 것들을 따르는 사람은 여기에서의 그리고 후생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스승-성자를 통해 신의 살아있는 말씀을 접하게 됨으로써 마음과 감각 기능을 제어할 것이다.


<채식과 카르마의 법칙(THE KARMIC LAW OF THE VEGETABLE DIET)>

인간이라는 존재는 5 개의 타트와(Tattwas), 25 개의 프라크리티(Prakritis), 3 개의 구나(Gunas), 마야(Maya) 그리고 마음-이 모든 것들은 영혼을 감싸고 있다-의 구속에서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데 성공하기 전에는, 또한 위의 모든 오류에서 영혼을 해방시키고 마음과 지성의 차원에서 벗어나도록 하며 영혼의 내적 시각을 열기 전에는 신과 신의 창조의 존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오직 그 때만 영혼은 스스로를 알 수 있으며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뒤 자신의 창조자를 찾고 원래 있던 바다를 찾는 데 뿐만 아니라 다시 얻는 방법을 구하는 데도 알맞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자가 모든 구속을 없애는 데 성공하기 전에는 이 세상이 땅과 물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는 것만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에 사는 생물은 서로에 의지하여 산다. 자연은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을 제공하지 않았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먹고, 등등이다. 지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늑대와 자칼을 먹는다. 다시 늑대와 자칼은 양, 염소 등의 고기를 먹고 산다. 다시 이것들은 식물을 먹고 산다. 매는 작은 새를 먹는다. 새는 곤충을 먹으며 인간은 거의 모든 형태를 먹는데, 기후와 특정 조건이 허락하는 대로 한다.

모든 곡식과 나무는 생명을 담고 있다. 힌두 철학은 고대로부터 이 사실을 발견하였다. 보세 박사(Dr. Bose)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실험을 통해서 유럽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즉, 식물도 느끼고 숨을 쉬며 영혼을 갖는다는 것이다. 만일 한 줄기 빛이 어두운 방을 뚫고 들어간다면 현미경으로 수많은 세균이 방안에 떠다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방 전체가 세균으로 가득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쉴 때, 이 작은 생명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우리가 걸을 때, 셀 수 없는 수의 생물이 우리와 부딪혀 죽으며 무수한 생명이 짖밟힌다. 물을 마실 때에도 마찬가지 이다. 큰 컵 한잔에 있는 물에는 수백만의 작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면서 그들을 죽이는 것이다.

영혼은 우리 세계의 모든 공간에 문자 그대로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고 보인다. 만일 우리가 바늘을 땅에 찌른다면, 셀 수 없는 세균이 찔렸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생명은 어느 곳에서든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을 잡아 먹는 세상에서, 정의나 마음의 평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도 휴식과 안전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대 성인들이 이 세상의 생물들이 서로 죽인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세상에서는 마음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영혼이 자신을 묶고 있는 고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결코 환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세상의 쾌락을 행복의 방편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지옥으로 이끄는 것이며 나아가서 영혼을 카르마와 타락에 묶어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세상 물질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으며 행복이란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인간은 바다를 이루는 한 방울의 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그들이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한은, 최대한 적은 해를 끼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가장 적은 죄값을 갖는 생물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 모든 생명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형태를 이루는 물질과 그것이 갖고 있는 원소들의 숫자를 근거로 해서 나누었다.

원소라는 말은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90가지 정도의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물질의 주요 상태나 분배를 말한다. 그러한 구성 요소를 분류하는데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그 분류에 따르면, 첫 번째 계층에는 모든 다섯 가지 구성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는 생명이 있다. 즉, 인간이다. 다음 계층에는 네 가지 구성 요소만이 작용하며 하나는 잠들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네 발 짐승을 말한다. 짐승들은 식별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아카쉬 타트와(Akash Tattwa)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계층에는 세 가지 구성 요소인 물, 공기, 불만이 작용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새이다. 새는 땅(earth)과 아카쉬(Akash)을 갖고 있지 않다. 네 번째 계층은 두 가지 구성 요소인 공기, 불만이 작용하는 곤충이 존재한다. 마지막 계층인 다섯 번째는 한 가지 구성 요소 또는 원소만이 작용한다. 즉, 식물의 세계이다. 식물에게는 물만이 유일한 활동 요소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채소에서 90% 정도의 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다른 네 계층에 속하는 생물들이 살생을 당하면,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그러나 채소는 생명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현자들은 채소를 먹는 것이 가장 적은 죄값을 갖는다고 결론 내렸다. (가장 적은 카르마를 갖는다.)

비록 채소를 먹는 것이 약간의 카르마를 발생하지만, 매우 가볍기 때문에 영적 수행을 통해서 쉽게 갚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최소한의 저항을 받는 길을 택했으며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을 자제하였다.

음류를 수행하는 것은 우리가 태어난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연스러우며,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창조의 시초에서부터 존재하였다. 창조자는 하나이며, 그러므로 그에게 가는 길도 하나이고, 그 길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바꾸거나, 수정하거나, 더하거나, 향상시킬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근원이라는 바다에 음류에 의지하는 방법으로 도달해야 한다. 지위나, 신앙 또는 국적이나, 성과는 상관 없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힘을 깨우는 연습이다. 천천히 우리 영혼은 육신의 무덤에서 깨어나며 떠날 것이다.

육신에는 9개의 구멍이 있어서 영혼은 그곳을 통해서 이 세상과 교류하며 영혼은 구멍을 닫고 눈의 안쪽에 의식을 고정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높은 세계로 여행을 시작한다. 영혼이 투르야 패드(Turya Pad; 아스트랄)에 도달하면, 마음, 감각, 색욕, 성냄, 탐욕, 집착 그리고 자기 중심성을 제어할 능력을 갖는다.

우리가 물질계를 떠나 아스트랄 단계를 얻으면, 마음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스트랄과 그 안에 있는 천국과 지옥을 넘어서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뒤에 남겨지게 된다. 그러면 영혼은 그것들을 경시할 것이며, 브라암 로크(Brahm Lok) 또는 인과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무크티(Mukti) 즉, 구원의 세계가 있다.

브라암은 파르-브라암(Par-Brahm)의 종이다. 그러므로 브라암을 떠나면 영혼은 파르-브라암으로 가서, 그곳에서 모든 껍질을 벗게 된다. 파르-브라암에 이르게 되면, 영혼을 둘러 싸고 있는 마음과 물질의 모든 현상계, 아스트랄계, 인과계의 덥개가 제거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순수한 영이 된다. 이것이 자아-각성이다.

여기는 어떤 형태나, 덥개나, 모양이나, 젊음 또는 늙음도 없다. 오직 영혼이 그 순수한 빛을 발하면서 존재한다.-영혼은 존재, 지식, 그리고 환희의 일부로써 위대한 대양인 창조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그 물방울이 대양과 만나서 하나로 섞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르-브라암에서 우리는 산트 마트의 진정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질병의 유일한 처방은 신성한 소리를 수행하는 것과 함께 스승의 영적 도움과 지도를 받는 것 뿐이다. 스승은 육신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권능으로써 우리를 각 단계와 영적 여행의 모든 경계에서 도우며 지도한다. 우리가 물질계의 육신 안에 있을 때, 그는 우리를 육신의 상태에서 가르친다.

우리가 아스트랄계에 들어가면 그는 아스트랄 형체로 존재하며, 우리가 더 나아갈수록 그는 각각의 경계에 맞는 형태를 띠며 사츠 칸드(Sach Khand; 우리 진정한 고향)까지 존재한다.
(바바 사완 싱의 말씀 중)


<아하르 또는 식단(AHAR OR DIET)>

식단은 자연히 인생의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필요로 한다.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정해진 수명이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한 존재하도록 강요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르마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에 의존해야 한다. 인간은 이점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카르마의 법칙은 자연이 세상을 자신의 철권안에서 유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방법이며, 그렇게 해서 세상이 인간으로 가득하고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인간이 생각 없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분별 하지 않으며 식사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은 음식 없이 살 수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적 목표에 가장 적은 해가 되는 것을 식단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식단은 결코 약간의 주의로 피할 수 있는 불필요한 카르마의 빚을 발생시켜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갖고서 자연을 연구해보기로 한다.

인간은 주로 지상에서 음식을 얻는다. 즉, 땅, 공기 그리고 물이다. 또한 우리는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움직이는 생물은 서로서로 먹고 먹히며 산다. 또한 움직이지 않는 생물-즉 채소, 풀, 관목, 허브, 나무, 그리고 유사한 것들-도 먹고 산다.

그러나 인간은, 새와 동물들과 같이 다른 생물을 먹고 사는 생물들과 친구가 되며 사랑하고 애완 동물로 키운다. 고대인들은 인간, 새, 그리고 동물이 모두 같이 카르마의 고리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한 형제라는 생각으로 자신과 그 애완 동물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새 그리고 젖소들과 황소들을 위해서 땅을 경작하고, 과수를 재배하며, 음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안락함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결과 먼저 동물의 우유를 먹었으며 나중에는 동물의 살까지도 먹게 되었다.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행동 규율을 따르자면 우리는 신이 창조한 어떠한 동물의 생명도 괴롭혀서는 안된다. 인도에서는 그런 삶의 기준을 아힘사(Ahimsa) 또는 모든 살아 있는 생물에 대한 비폭력이라고 명시하였다. 이것으로 채식과 비채식을 비교하여 구분하게 되었다.

우리가 식단의 자연적인 측면과 부자연적인 측면에 대해 숙고한다면, 구나(Gunas) 또는 내재적 성향, 자연적 성향, 그리고 감각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잠재적 성향의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식단은 알곡, 곡류, 채소, 그리고 과일을 하나로 분류하여 사트빅(Satvic) 또는 사토구니(Satoguni) 식단이라고 한다. 이런 식단은 순수하며 마음의 평안과 평정을 가져다주며, 현자와 구도자에게 적당하다. 격리된 동굴이나 오두막에서 명상하는 성자나 은둔자들은 언제나 칸드(kand;감자), 고구마, 자미쿤드(zamikund) 또는 돼지감자(아티쵸크) 등과 같이 땅 밑에서 자라는 것을 선호하였다.

또한 물(mool)과 팔(phal)(물의 먹을 수 있는 뿌리 부분도 역시 무, 순무 그리고 비트와 마찬가지로 땅 밑에서 자란다)도 섭취했다. 팔(phal; 과일)은 그들에게 충분한 비타민과 원형질에 들어있는 유기적인 소금을 제공하여 집중과 명상의 삶에 적합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몇몇 음식 중에는 저절로 풍부하게 자라나는 것도 있었으며 어떤 것은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있었다. 알곡과 곡류는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사트빅 또는 순수한 식단이라고 불리는 물, 감자, 과일, 그리고 소젖 등등은 생명을 연장시키며 수많은 질병과 질환을 고친다. 그 유용성은 의학에서도 인정 받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약이 허브, 과일, 그리고 곡식을 재료로 하며 매우 효과가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일광욕, 해수욕, 진흙 목욕, 목욕, 마사지, 물리요법, 자연요법 그리고 색깔요법(chromotherapy)과 같은 자연 치료법은 훌륭한 결과를 낳고 있다. 사트빅 음식과 간소한 삶은 최상의 문화와 문명 건설에 도움을 준다. 우리는 음식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음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살기 위해 먹으며 먹기위해 살지 않는 것’은 우리 삶의 격언이다. 이것을 지킴으로서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더 높은 것들과 종교적 그리고 영적인 것들에 대한 수용성을 키우게 되어 자기를 아는 것과 신을 아는 것에 점차로 이르게 된다.

라즈식(Rajsic) 또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식단에는 채식 이외에, 우유, 크림, 버터 그리고 기(Ghee) 등과 같이 젖소가 아닌 다른 동물에게서 적당량만을 얻는 것이 포함된다. 고대 인도에서는 우유를 사용하는 것이 왕자들에 의해 엄격하게 금지 되었는데, 이는 왕자들이 거칠고, 사나우며 야만적인 사람들과 같이 인생의 원칙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제어할 여분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젖소에게서 젖을 짜는 것은 소가 자라고 특별히 보호를 받은 뒤에 새끼들에게 젖을 충분히 먹인 다음에도 젖이 남아 있을 때만 가능하였다. 이러한 특별 규정은 초기 문명의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행자들(리쉬)도 고대에는 제한된 양의 우유를 사용했으며 동물의 후손이 성장하는 데 충분한 양을 남겨두었다. 그들은 비교적 격리된 곳에 혼자 살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에 할애했다.

여분의 우유만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관습은 아직도 인도 몇몇 마을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마음대로 힘을 가지려는 욕망에서 스스로 주장하는 소위 자유라는 핑계하에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은 불행히도 “적자생존”의 법칙을 믿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물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현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오늘날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관심사는 소를 희생하면서 까지도 최대한의 우유를 짜내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소가 태어나자 마자 끓는 물에 집어 넣고서 소의 젖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우유까지도 짜내도록 기계를 동원하여 무역 경쟁과 이윤 창출에 보조를 맞추려고 한다. 이것이 몇몇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첨단 기술과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의 발아 개혁자들은 농업 발전과 재배 그리고 목축 발전과 같이 무해하며 오늘날 그토록 많이 오르내리는 수요의 과다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위와 같은 무역과 관행을 강요하고 있다.

탐식(Tamsic) 또는 마비시키는 식단은 고기, 술, 마늘 등으로 구성된다. 즉 사실은 자연적이든 그렇지 않든, 오래된 것이든 신선하든 상관 없이 다른 모든 식단을 말한다. 마음대로 조절하지 않고 먹는 사람들은 먹으려고 사는 것이지 살려고 먹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삶의 목적은 쾌락이며 그들의 표어는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이다.

그들은 소위 인생의 달콤한 쾌락이라 부르는 것에 깊이 빠져든다. 작으나마 집중의 힘으로 축복을 받으면 모든 에너지를(정신적, 물질적) 작은 자아라는 이기주의적 마음의 영광에 기울인다. 인간은 이런 것을 더 높은 문명의 결과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최고의 스승들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에 대한 지식을 구하는 사람과 마음과 물질이라는 껍질에서 영혼을 완전히 해방시키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을 엄격히 금지시킨다.

분별있는 사람이 잠깐 멈춰 숙고하면 인간의 진정한 위치가 어디인지 깨닫게 될까? 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모든 생물중 가장 고매한 존재라고 스스로 부르며 또 누군가 불러 주는 것을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가? 인간은 어디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인가? 무시무시하고 가파른 절벽의 끝에서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이 서있지 않은가?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자연의 응보라는 폭풍에 자신을 내맡겼다. 매시간 그는 육체와 도덕의 파멸이라는 수렁에 빠질 위험앞에 서있다.

인간은 자신의 식단을 정글에사는 야수에게 배웠으며 야생 동물과 같이 행동한다. 그는 소와 염소, 사슴과 양, 죄없는 새들과 물가의 고기들과 같이 무해한 생물을 잡아 먹는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과 부를 향한 끝없는 갈구를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피와 살도 섭취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스스로 발전이라 부르는 자기 증대의 과정을 마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스승들이 충고하고 처방한 채식 식단이라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 숙고했을 수도 있다. 채식도 잠재된 형태로 생명을 갖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무대에서 계속해서 진행되는 삶의 일부분을 맡아야 하고,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유지해야 하고 땅의 소산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채소, 과일 그리고 곡식에도 생명이 있다. 생명의 근본적인 요소는 성장과 부패이다. 이 진리는 태초부터 내려온 것이다. 비록 몇몇 과학자들이 그것을 재발견하고는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의견이 아니다.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자. 모든 만물에서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은 생명이 생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다른 단계에 있는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생명을 담고 있는 생물을 먹고 산다. 외면적으로는 카르마를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는 인간도 낮은 단계에 있는 생명-동물, 새, 그리고 등등-과 한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은 이 물질 세상을 움직이는 다른 하나의 바퀴를 갖고 있다. 즉, 진화의 법칙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한다고 한다. 생물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여행할 때, 낮은 단계와는 다른 가치를 갖게 된다. 표면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를 결정하기 위한 기반은 물질과 지성이다.

더욱 가치있는 물질이 주요 형태를 이루는 구성물일수록, 그 존재는 더큰 지성과 가치를 갖는다. 성자들은 인간의 식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법칙을 적용하였다. 인간이 깨든 그렇지 않든, 성자들은 이 법칙을 우리 앞에 던져 놓았으며 그에 따라 우리 식단을 바꾸고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는 카르마의 굴레라는 무거운 짐에서 가능한 벗어나도록 하였다.

각 종류의 식단은 인간에게 그 고유한 영향을 주며, 이는 최상의 목적 즉, 자신을 아는 것(self-knowledge)과 신을 아는 것(God-knowledge)을 얻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비록 인간이 자신이 한 행동의 이유를 모르더라도 이 법칙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일치한다. 다음에 보여줄 일상적 삶의 데이터를 비교해 본다면, 놀랍게도 사회 생활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법칙과 완전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육신는 다섯 개의 타트와(Tattwas; 창조와 구성의 요소-땅, 물, 불, 공기, 그리고 에테르)를 모두 사용하며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만물의 영장의 자리를 차지하며 창조자인 신 다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은 극악무도한 죄로써 극형 또는 사형을 받을 죄로 간주된다.

다음 단계의 가치를 갖는 것은 네발 짐승과 네 개의 타트와가 활동하며 다섯 번째인 에테르는 거의 없거나 무시할 정도의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동물을 부당하게 죽이는 것은 그 동물의 가격에 상응하는 형을 받는다. 다음 단계로 새가 있는데, 새는 물, 불, 공기라는 세 가지 요소만이 활동하며 일반적인 가치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 다음 단계에는 두 가지 요소 즉, 땅과 불만이 활동하고 다른 세 가지 요소는 활동하지 않거나 잠재적인 형태로 남아있는 파충류, 벌레, 그리고 곤충들이 있으며, 아무런 죄값도 치르지 않으므로 최소한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죽이거나 밟아 버린다. 가장 적은 가치를 갖는 것은 뿌리, 채소 그리고 과일이며 그들에게는 하나의 요소인 물만이 활동하며 지배하고 나머지 네 요소는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카르마적 입장으로 볼 때 채소와 과일 식단은 가장 적은 고통을 만들어 내는 식단이며 인간은 이를 섭취함으로써 가장 적은 카르마의 채무를 얻게 된다. 인간은 그러므로 이런 음식이 있는 한은 그것에 만족해야 하며 아예 아무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 것을 섭취해야 한다.

이제 성 요한의 에세네 복음서(Essene Gospel of St. John)의 말을 보기로 하자.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 대답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만 하겠나이까, 스승이시여,…. 스승님의 곁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사옵니다. 말씀해 주소서, 우리가 두번 다시 병들지 않기 위해서 피해야할 죄악이 무엇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길: “네 믿음 대로 되게 하라,” 그리고는 그들 사이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오래 전에 말하기를, ‘네 하늘의 아버지(Heavenly Father)와 대지의 어머니(Earthly Mother)를 존경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오래도록 이 땅에 살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 계명은 이것이니: ‘살생하지 말라,’ 모든 생명이 하느님께로서 왔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빼앗지 말지니라.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한 어머니로부터 세상 모든 생명이 비롯되느니라. 그러므로 살생하는 자는 그 형제를 죽이는 것이니라.

그러면 그로부터 대지의 어머니가 등을 돌리며 그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빼앗아 가리라. 천사들이 그를 피할 것이며, 사탄이 그의 몸에 거처를 만들 것이니라. 그의 육신에 있는 죽은 짐승의 고기가 그의 무덤이 될 지니라.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살생하는 자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누구든지 죽은 짐승의 고기(flesh)를 먹는 자는 죽은 육신을 먹는 것이니 그들의 죽음은 네 죽음이 될 것이요 이는 죄악의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이니라.

살생하지 말며, 네 죄없는 희생물의 살(flesh)도 먹지 말지니, 그렇지 아니하면 사탄의 노예가 될지니라. 이는 고통의 길이며, 죽음으로 이끄나니라. 하느님의 의지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그의 천사가 생명의 길에서 너를 섬기리라.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라: ‘보라, 내가 네게 풀, 열매 맺는 씨앗을 주었으니, 이것은 지상의 어디에든 있으며, 또한 모든 나무를 주었으니, 여기에 나무의 열매가 있나니라. 이것을 네 양식(meat)으로 하라.

또한 모든 지상의 짐승들에게와, 하늘의 날짐승들에게, 그리고 생명의 호흡이 있는 지상을 기어다니는 모든 것들에게, 모든 녹색 풀을 양식(meat)으로 주리라.’ 또한 움직이며 서로 먹여 살리는 모든 것들의 젖을 네 양식(meat)으로 하라. 그들도 녹색 풀을 먹고 사나니 그러므로 그 젖을 네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flesh)와 그 생명이 되는 피는 먹지 말지니라.”

그러자 다른 제자가 말했다. “모세는 가장 위대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써 우리 선조들에게 깨끗한 짐승의 고기는 먹게 하고 더러운 짐승의 고기는 먹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렇다면 왜 스승께서는 모든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라 하시나이까? 무엇이 하느님께로서 온 법이니까? 모세의 법입니까 아니면 스승님의 법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네 선조들에게 명하셨으니, ‘살생하지 말라.’ 하셨나니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살생했노라. 그리하여 모세가 사람만은 죽이지 않기를 바라고, 짐승은 죽이도록 허락했느니라. 그러나 네 선조들의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죽였노라. 그러나 나는 네게 말하노니 사람도, 짐승도, 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foods)도 죽이지 말라.

이는 네가 살아있는 음식을 먹으면 너에게 생명을 더할 것이나, 네가 네 음식을 죽이면, 죽은 음식이 너 역시도 죽게 하기 때문이니라.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나오나니,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은 죽음 뿐이니라. 그러므로 네 음식을 죽이는 모든 것들이 네 육신 또한 죽이리라. 또한 네 육신을 죽이는 모든 것들은 네 영혼 역시 죽이리라. 네 육신은 네가 먹는 음식으로 될지니, 네 영혼 또한 마찬가지로 네가 생각하는 것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느님의 식탁에서 온 것을 먹으라. 나무 열매, 곡식 그리고 땅의 풀, 짐승의 젖, 벌에서 얻는 꿀이니라. 이를 넘어선 것은 사탄이며 죄악의 길과 죽음의 질병으로 이끄느니라. 그러나 하느님의 풍부한 식탁에서 오는 음식은 너희 육신에 힘과 젊음을 줄 것이요 너희는 결코 병들지 아니하리라…”

출처: The Wheel of Life by KIRPAL SI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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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팔 싱은 성스런 빛과 소리의 명상법인 산트마트(santmat)의 스승이셨다 합니다. 산트마트는 내면의 성스런 빛과 소리에 집중하는 명상 수행법으로서, 고대로부터 스승에서 제자에게 전해져 내려온 명상법입니다. 키르팔 싱 스승의 글 중 채식에 대한 글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즉 우리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자신과 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나머지는 그저 낭비일 뿐이다."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마음”은 매우 잘 알려진 격언이듯이 우리는 몸과 마음 모두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며 그런 뒤에야 그것들을 영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첫 번째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음식이기에 "적절한 유형의 음식을, 바르게 벌어, 바르게 얻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십니다.

그리고 인도의 경전들은 예로부터 음식을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사트빅(SATVIK): 순수한 음식:우유, 버터, 치즈, 쌀, 렌즈콩, 콩류, 곡식, 야채, 과일 그리고 땅콩류.
-라즈식(RAJSIK): 힘을 내게 해주는 음식:후추, 양념, 조미료, 시고 쓴 것.
-탐식(TAMSIK): 힘을 빠지게 하는 음식:오래된 음식, 계란, 고기, 생선, 조류 그리고 술, 등등

세가지 입니다. 탐식은 말그대로 육식이며, 발음도 우리말로 '탐식'(貪食)으로 들리는군요.^^ 우리가 즐겨야 할 것은 순수한 음식 즉 사트빅에 해당하는데, 고대 인도에서는 우유와 버터를 통해 단백질을 얻어온 관례로 포함되어 있긴 합니다. 살해하지 않고 얻은 음식이기에 부처님도 득도 후 우유죽을 얻어 드셨지요. 라즈식은 힘내게 하는 여러 양념, 조미료 종류, 우리로 치면 오신채가 포함되는 종류입니다.

이슬람의 예언자인 하즈랏 모하메드(Hazrat Mohammed)는 바로 우리가 오늘날 실천해야 할 중요한 것들을 이미 다 가르쳐 주십니다. 즉 '배가 고플 때, 일반적으로 먹고 싶어하는 것 보다 항상 조금 적게 섭취하라.’ “적게 먹고 행복하게 지내라.”

한편 '성 요한의 에세네 복음서'(Essene Gospel of St. John)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욱 분명히 채식을 명하십니다.

"이는 네가 살아있는 음식을 먹으면 너에게 생명을 더할 것이나, 네가 네 음식을 죽이면, 죽은 음식이 너 역시도 죽게 하기 때문이니라.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나오나니,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은 죽음 뿐이니라. 그러므로 네 음식을 죽이는 모든 것들이 네 육신 또한 죽이리라. 또한 네 육신을 죽이는 모든 것들은 네 영혼 역시 죽이리라. 네 육신은 네가 먹는 음식으로 될지니, 네 영혼 또한 마찬가지로 네가 생각하는 것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느님의 식탁에서 온 것을 먹으라. 나무 열매, 곡식 그리고 땅의 풀, 짐승의 젖, 벌에서 얻는 꿀이니라. 이를 넘어선 것은 사탄이며 죄악의 길과 죽음의 질병으로 이끄느니라. 그러나 하느님의 풍부한 식탁에서 오는 음식은 너희 육신에 힘과 젊음을 줄 것이요 너희는 결코 병들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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