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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음식은 역시 명상이라는 채식
한채연 2007-04-15 11:02:03


출처 http://blog.naver.com/yasi7737/100002545329

최고의 음식은 역시 명상이라는 채식

먹고 살기 바쁜 세상이라고 하지만 요즘 같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면서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문턱을 느낄 때 즈음이면 웬지 모르게 우울해지거나 휑한 느낌을 느끼는 경우가 없으신가요. 제가 아는 분중에 한 분은 연세가 좀 드신 분인데 늘 인상을 찡그리고 다니시더군요.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은 몸이나 마음 속에 뭔가 불편한게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긴데, 마침 시간이날 때가 있어서 함 물어봤죠. '혹시 근심거리가 있습니까..?'하니깐 '글쎄요. 건강도 좋지 않지만 뭔지 알 수도 없이 한없이 우울해지고 세상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갖고 조그만 일에도 짜증만 납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분은 학교졸업 후 줄곧 40여년간 공직생활을 해 왔는데 이제 남은 건 속절없는 죽음의 잔을 마실 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분이 지금은 남들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정말 젊을 때도 맛볼 수 없던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때 명상과 행공을 단 한달만이라도 해보라고 했는데 아래 방법대로 명상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길을 완전히 되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 하루 정말 감사함으로 산다고 합니다.

저는 사람이 자라서 성인이 되었다면 누구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명상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땐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온갖 체험을 하면서 바깥세계를 확장시켜왔지만 진정한 행복과 평안은 비바람부는 외부세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지요.

내면의 세계는 완전한 평안과 행복의 세계인데, 우리는 외부세계의 고난을 통해서 그런 내면을 되돌아보고 찾아갈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근원적인 메시지를 못읽고 마냥 먹고 살고, 육체적 욕망만 충족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그냥 고난의 세상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에겐 누구나 신이 부여한 인간의 본성과 본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것을 잊고 감정과 경쟁에 휘말려 세상을 살아가기 바쁘고 그럽니다. 깊은 내면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분명히 영원전부터 외쳐온 생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나날이 의식을 확장시키고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젊을 때보다도 나이들어서 더 의식이 퇴보하며 심지어는 치매에 걸려 참된 삶의 길에서 영영 벗어나 버리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의식을 확장시키는 방법은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매일 갖는 것입니다. 명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명상이란 그저 가만히 앉아 눈이나 감고 사념이나 즐기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명상이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내 안의 천부적 지식과 능력을 깨우는 일이며, 신의 가르침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또 명상을 한다는 것은 소원을 빌거나 기도를 하든 등의 무엇을 기대하려는 노력도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모두 놓는 것이 명상이며, 명료하게 살아있으면서 죽어버린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명상이라할 수 있습니다.

명상의 세계는 알을 부화시키려는 어미 닭의 품과 같습니다. 명상을 할 때마다 우리는 신의 품에 안기며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마음을 침묵시키고 명상이 깊어지면 내면의 잡생각들과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미세한 정보를 구분할 있게되며 지혜는 비약적으로 확장되며 생각의 깊이나 넓이도 그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명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보다 더 확장된 의식의 단계로 이끌어가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이나 닥치는 사건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알고 또 이해하게 되니 사랑의 능력이나 대쳐하는 능력도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그것은 곧,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부분들을 변화시키고, 또 한편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들은 강화할 수 있는 능력도 있음을 알게되고 나아가서는 세상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 담긴 영양소를 충분히 취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명상을 하면 해가 떠 있어도 어둠 속에 들어갑니다. 명상을 깊이 할수록 태양이 지배하는 물질적 밝음의 세계대신 근원적인 우주 생명이 약동하는 깊은 어둠의 본질로 들어갑니다. 처음 명상을 하면 깜깜한 어둠밖에 없을 것이고 지루함이나 답답함, 그리고 온갖 잡생각만이 가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찾아드는 것은 당연하며 그 어둠을 사랑하고, 어둠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때, 거기 어둠은 사라지고 참다운 밝음이 있고, 지루하거나 답답함과 잡생각들을 그냥 하늘의 구름을 보듯 놓아버릴 때 바로 그 속에 내 안에 있는 평안의 주인공인 진정한 나와 만날 수 있습니다.

명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만의 특권입니다. 밀림의 왕인 사자도 명상을 모르며 손오공의 후손인 침팬지도 명상을 하지 않습니다. 명상은 네발로 걸어다니거나 머리가 하늘을 향해있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쉽게 되지 않습니다.

짐승은 모두 머리의 방향이 코와 입으로 향해있기 때문에 오직 먹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인간은 머리가 하늘을 향하기 때문에 조금만 열정을 낸다면 열린 하늘 저 깊은 중심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명상은 물질세계에서 절대세계로 돌아가려는 근원적 열망에서 시작됩니다. 그러한 열망이 있다면 척추가 부러졌어도 명상이 되며, 곰이라도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 없는 삶은 죽음의 삶이며 깨어나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우주는 고요한 밤의 세계이며 우리는 그 어둠과 하나됨으로써 그 어둠 너머 있는 완전한 광명을 알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명멸하는 세상 속에서는 삶과 죽음이 수없이 반복되지만 죽음을 모두 받아들인 완전한 이해와 사랑의 세계엔 절대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그 깊은 어둠의 우주와 하나되는 방법은 명상 외엔 잠이나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잠은 영혼의 활동을 쉬게 하며 몸을 다시 살리는 데 불과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으로 어둠과 하나 되는 것이 좋은가 하면 죽음으로 깨어난 영혼의 등급은 처음엔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수준이 높아질 수 있지만 더 이상 진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명상으로 깨어나는 것은 처음엔 낮지만 날이 갈수록 진보가 있습니다. 살아서 매일 명상을 통해 근원과의 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이야기하면 어렵고 아픈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가슴에서 느끼는 그 모든 아픔들은 그가 근원적 우주와 하나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근원의 파동과 하나되지 못한 결과로 그러한 가슴아픈 현실이 생기는 것임을 먼저 깨우쳐야 합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며, 아픔을 바라보고 느낄 때 그것은 곧 수행과 정진의 채찍일 것입니다. 안과 밖은 언제나 하나일 것이고, 밖은 언제나 안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다른 이를 돕기 좋아하고, 그 일에 보람과 우선적인 가치를 두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나를 일깨우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이 묻습니다. '수십년, 혹은 수백년전 수많은 이들이 죽어간 전쟁과 포화가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아픈 현실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말이나 되는가?'

시간의 중심은 과거 어느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과거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이고,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드러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이미 그 모든 체험의 덩어리입니다.

사고를 당하는 것은 그 사건을 이미 내가 갖고 있었고, 내 영혼의 필요에 의해 드러낸 것 뿐입니다. 좋은 것이 필요할 땐 좋은 일을 만들고, 나쁜 것이 필요할 땐 나쁜 상황을 만드는 것이죠. 뿌린 대로 자라며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도를 향한 여정이고, 그 여정에 모두 보따리를 하나씩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 보따리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체험이 모두 들어있고, 배가 고플 때마다, 영혼이 목마를 때마다 보따리를 하나씩 끌러 양식을 얻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가슴아파하는 것은 그것이 그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놀랄 일은 없으며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가슴아파할 일도 전혀 없습니다. 나의 삶에 어려운 일이 닥친다는 것은 내 무지에서 비롯되었고, 근원과 하나되어 있지 못함을 알아차려야 하며 진정으로 알아차릴 때 그 일은 근원부터 해결되어 갈 것입니다.

명상을 하는 것은 끝없이 드러내야할 사건들을 드러낼 필요가 없도록 합니다.. 마치 선생이 학생을 가르칠 때, 원리를 설명하고, 그 원리를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은 비슷한 문제를 수없이 풀어보면서 원리를 터득합니다.

지혜로운 학생은 가만히 원리를 생각하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여 같은 원리로 이루어졌다면 어떤 문제라도 다 풀어내고 응용하는 능력을 가집니다. 명상을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하며 더 이상 문제를 풀 필요가 없게 합니다..

명상은 어떻게 하는가?

명상은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세는 몸으로 나타내지만 자세를 이끄는 것은 의지가 합니다.. 어떤 의지로 자세를 잡느냐에 따라 명상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반드시 가부좌를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얼마든지 명상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세는 의식에서 먼저 시작되어야만 그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의 우리몸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의식에 의해 가장 알맞은 진보를 이루기 좋은 도구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겠지요. 주인과 객의 차이는 의식의 차이에 있고, 짐승과 인간의 차이 또한 의식의 차이에 있으니 우리의 의식을 먼저 제대로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먼저 이 세상의 일들, 내가 겪는 괴로움과 아픔들은 모두 내가 만들었다는 의식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 물질과 욕망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겠다는 의식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나는 모든 것의 중심이고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는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믿고, 더 이상 외부에서 구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비우는 의식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의식은 자연스럽게 외부적으로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눈을 감고 그 모든 현상에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세상을 내가 만들었다는 자각의 자세입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머리를 하늘로 향함은 물질과 욕망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각오의 자세입니다. 발바닥이 위로 올라오게 가부좌를 하는 것은 더 이상 구하러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비움의 자세입니다.

눈을 뜨고 보거나 눈을 감으면서 무엇인가 보고자 하면 결코 마음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보고자 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픈 현실과 환영일 뿐입니다. 보지 않으려 해도 무엇인가 보인다면 그 자세가 깊은 무의식까지 일치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백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듯이 매일 매일 의식을 똑바로 세워가면서 몸을 다스려가면 저절로 가장 좋은 자세가 나오기 마련이며 깊은 무의식까지 정신자세가 바로 잡히게 됩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고, 꾸부정하며 머리를 숙이거나 하면 그것은 물질과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다짐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헛된 물질적 욕망을 버리려는 마음가짐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자세가 확고하면 하늘의 힘, 우주 근원의 힘을 받지만, 자세가 숙여지면 그 힘을 못 받아서 잎사귀가 태양이 질 때 시드는 것처럼 엎어지거나 잠들고 맙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는 것은 짐승과 사람의 첫 번째 구별이고, 생각하고 다짐하여 그 꼿꼿함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음은 인간만의 품위입니다. 거리에서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똑바로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이들이 경의를 표하겠지만, 무릎 끓거나 가부좌를 했어도 허리를 꾸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동전을 던져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리는 결코 구부러지지 않게 해야합니다. 내면의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듯 가슴을 펴고, 입은 최고의 존재라는 품위유지를 위해서도 이쁘게 다물며 턱은 넉넉함과 자신감으로 약간 당겨야 합니다.

머리엔 하늘의 신이 좌정하여 나와 함께 앞서서 명상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으로 똑 바로 세워야 합니다. 신이 함께 하지 못하면, 즉 내면의 의지가 머리 위에 있지 않으면 하늘의 기운통로가 막혀서 명상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허리가 꾸부정해지고 머리가 숙여지면 물질을 구하는 습성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자세를 바로 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당당하고 똑 바른 자세를 하고 있으면 삿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며, 방석을 깔지 않아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함이 깊어지며 원기는 충전됩니다.

가부좌를 제대로 하기 힘들어 하는 것은 아직도 구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못함입니다. 남에게 구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게 되면 가부좌를 하기 힘들어 하거나 삐딱한 자세로 앉는 수가 많습니다. 가부좌의 자세는 풍요의 자세이고 온전함을 표하는 자세입니다.

우주를 소유하는 넉넉함을 가질수록 훌륭한 가부좌자세가 나옵니다. 그러한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으면, 육신의 모든 기력은 더 이상 소모되지 않으며 영혼의 정화를 위해 총동원됩니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으며 추위가 오거나 더위가 와도 이겨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탁한 물이 맑아지듯 육신의 탁함은 아래로 쌓여서 정화되고, 가슴 깊은 곳에 잠자던 내면의 자아는 머리로 올라가 주인의 자리를 회복하고 본성을 되찾게 됩니다.

자세를 바로 하며 얼굴을 온화하게 하고 있으면 우주의 축복이 막 쏟아집니다. 복은 복받을 통로를 향해서 흐르기 마련인데 찡그리고 불편한 얼굴, 긴장하며 인상쓰는 얼굴로 복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얼굴은 온화하게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하여 명상의 자세가 완전히 몸에 배이면, 그 경지는 깊어지고 천지기운의 흐름이 모두 열려서 그 어떤 자세라도 상관없이 깊은 명상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정도가 되게되면 그 때엔 꾸부정하게 있어도 명상이 잘 되며, 눕거나 물구나무를 서도 깊은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걸어가면서도 삼매에 들며, 일을 하면서도 삼매에 들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의식은 몸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세와 의식은 거의 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가짐을 먼저 바로잡고, 다짐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가지고, 그 모든 자세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자세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명상을 처음 하면 자세를 바로잡는 일만 해도 힘이 들어갈 것이나, 운전을 하든 피아노를 치든 처음 배울 땐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어깨도 아프고 팔목도 아픈 것과 같습니다.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기 전까지는 오래도록 앉아 있을수록 육신의 고통이 있습니다. 첨 한다면 오래하지 말고, 매일 꾸준히 30분 정도로 적응을 시켜 나가면 아주 좋습니다.

삼매란 세 가지가 어둠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어둠과 완전히 하나될 때 어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거기엔 완전한 밝음만 존재합니다..

그 첫째로 먼저 몸이 외부와 구별이 없어야 합니다.. 몸은 영혼의 중심이고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 중심에 우리의 영혼이 있습니다. 몸이 영적 에너지를 위해 완전히 쓰일 때, 영혼은 깨어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보이는 근원을 보며, 들리는 근원을 듣습니다.

몸이 있음이 느껴진다는 것은 비우지 못함입니다. 비워지지 못하면 우주의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며 내부의 자아가 나오지도 못합니다.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가로막히며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몸을 완전히 비우게 하려면 먼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명상은 근원적 힘이 채워지게 하지만 육체가 부실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명상의 진정한 능력은 몸을 밑바탕으로 성숙합니다.. 그러니 명상을 위해서는 몸을 건강하게 하고 비우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몸이 비워지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비워지며 이에 따라 생각은 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몸이 비워지지 않는다고 생각에 끄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잡생각이 많아서 명상을 못한다는 것은 잡생각에 자꾸 의식을 둔다는 말입니다. 숨을 내쉬며 긴장을 더 풀고 의식을 더 놓아야 합니다. 생각조차 하는 이가 없도록 해야합니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만트라를 외운다면 그것은 내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외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동작을 하고 있다면 그 동작이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나는 그 모두를 지켜보는 존재로 남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은 저 혼자 오고가니 그냥 놔두고 붙잡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명상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단번에 명상의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쉼없이 하면 반드시 정상에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명상을 시작하는 것은 산골짝 아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 캄캄하다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고, 지겹다고 그만둔다면 산 정상이 주는 것과 같은 광명과 시원함과 성취감은 결코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오르막을 오르는 삶이고, 명상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명상이 되는 것일 때 매일 매일 새롭게 깨어나며 정상을 향해 오르게 되어있습니다.

삶의 오르막을 오르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세상의 시련에 대해 물처럼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몸을 갖고 오르지만, 명상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몸을 두고, 몸속의 가장 맑은 기운만을 사용해서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상하기 수 시간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거나 식사량을 줄여야 하며 식단도 자극적이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매운 음식을 먹고 온 몸을 흥분시키는 것은 육체적 활동을 촉진할 뿐입니다. 주위 여건이 아무리 고요하고 아늑할지라도 몸에 불편한 증상이 느껴진다면, 그래서 몸 여기 저기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면, 명상의 경지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배를 채울수록 명상에 몰입하기 힘들어지며, 비울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명상의 깊은 경지에 들어갑니다. 비워갈 때 몸은 천지의 맑은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며, 신의 사랑으로 점점 밝아질 것입니다.

몸은 명상과는 아무런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몸과 정신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몸이 불편하다면 명상이 아니라 망상만 하다가 끝날 것입니다. 몸은 정신이 나타난 모습이고, 정신은 보이지 않는 몸입니다.

정신이 혼란스러울 때 몸의 균형이 깨어지고, 몸이 병들면 정신이 나약해집니다. 건강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명상은 몸과 정신의 경계를 없애줍니다. 안과 밖이 하나임을 알게 해줍니다. 눈을 감아도 우주가 보이며, 귀를 막아도 천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공복 시에, 속이 비었을 때 바른 자세로 앉고 생각도 놓고 마음도 놓아야 합니다.. 잡념이 드는 것은 생각을 맑게 하려는 내면의 정화작용일 뿐입니다. 잡념을 붙들지 말고, 그냥 가만히 놔두면 사라집니다.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듣는 마음을 놓으라는 하늘의 메시지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소리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든다면 마음과 생각을 붙들고 놓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소리는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빛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빛과 소리는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었고, 거기 바로 참자아가 있습니다.

명상은 근원에서 울려나오는 파동과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명상의 생활은 이와 같이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남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있으면서 없는 듯. 그러면서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물처럼 항상 겸손을 추구하며, 태양처럼 밝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명상이 생활이고 생활이 명상이 될 때, 매 순간이 삶이자 곧 명상과 같을 때, 몸과 정신은 하나가 된 것이며 그 의식은 우주의식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매일 명상하는 생활, 그것은 나의 진정한 소망을 알게 하고, 근원적 목적을 달성케 합니다.. 명상 없는 생활은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되기 쉽습니다. 평생을 돈을 벌어 갑부가 되었던들 내면의 참자아를 찾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평안과 만족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매일 저녁 TV보거나 늦게까지 일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고 살며 즐기는 것도 좋지만 기회는 있을 때 챙겨야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은 명상에 정말 좋은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마감짓는 저물녁의 사간에 명상한다면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게 하여 그 가는 길이 올바른지 파악하게 하고, 내일은 더 정도를 향해가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듯 명상을 한다면, 어릴 때 몸이 자라는 것처럼 내면의 자아가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의 근원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오래 전부터 원해왔던 진정한 소망을 이루며 영원한 사랑과 행복에 이를 것입니다.

명상은 인간만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명상은 신의 자녀라고 하는 인간이 먹어야할 최고의 영양소를 갖고 있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몸이 죽고, 운동을 먹지 않으면 근육이 죽지만 명상을 먹지 않으면 영혼이 깨어나지를 못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잠자기 전이나 아침에 잠깰 때나 잠시만의 시간이라도 아무런 생각없이 자기를 완전히 놓고 비워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정말 멋진일입니다. 마치 우리가 가끔씩 단식을 하므로써 장을 비워줄 때 우리몸이 새로 재생되고 젊어지는 것처럼 명상은 우리의 정신을 맑게 가꾸어줄 것입니다.

늘 명상과 더불어 삶의 행복을 누리시는 님들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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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선
( 2007-07-23 19:46:51 )
아..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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