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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Occultism)(번역문)
한채연 2007-07-29 11:38:00


출처:http://cowhiterose.net
http://cafe.naver.com/funnyvegan/4551

채식주의와 오컬티즘 (1)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

글 ; C.W. Leadbeater 번역; 이 주홍

채식주의와 오컬티즘의 관계에 대한 얘기는 우선 우리의 용어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채식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 물론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하여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란 육식을 금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 중에는 동물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얻은 생산물, 예를 들어 우유, 버터 그리고 치즈 등을 허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정한 채소의 종류-과일이나 견과류-에 제한하거나 요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감자, 순무, 당근처럼 땅 밑에서 자라는 것은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런 분류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채식주의자를 동물들-물론 조류와 어류를 포함한다-의 살육을 통하여 얻어진 모든 식품을 금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면 되는 것이다.

오컬티즘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오컬티즘이란 단어는 라틴어로 '숨겨진'이라는 뜻을 가진 'occultus'에서 비롯되었는데 자연의 숨겨진 법칙을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자연의 모든 위대한 법칙들이 보이는 세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행하여지고 있기 때문에 오컬티즘은 자연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넓은 관점의 수용을 포함한다.

그리고 오컬티스트란 그가 닿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모든 자연의 법칙들을 연구하고, 또 그 결과를 통하여 자아를 찾고, 진보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를 말한다.

오컬티즘은 채식주의를 어떤 시각으로 볼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상당히 호의적으로 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분류-일반적이고 물질적인 것 그리고 오컬트적이거나 숨겨진 것-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그리고 그것을 검토하려 애쓸 사람의 눈에 명백한 이유들은 아주 많은데 그것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오컬트를 연구하는 자들에게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오컬티스트들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법칙들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다른 이유들도 알고 있다.

이 일반적인 이유도 다시 크게 둘-물질적이고 이기적인 것,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것-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우리 인간 자신에게만 연관된 그리고 순수하게 물질적인 측면에서의 이유들을 들어보자.

그동안에는 다른 것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너무나도 중요한-는 접어두고, 오직 우리 자신에게 일어날 결과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이런 것은 채식주의에 대하여 빈번히 일컬어지는, 그것이 아름다운 이론이지만 그 실천이 불가능하다는, 사람이 죽은 고기를 씹어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가정 때문에 생긴 반론들이 있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반론들은 비합리적이고, 진실에 대한 왜곡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자신이 그 잘못의 예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난 육식품-고기, 생선 또는 닭고기-의 공해 없이 지난 38년을 살아왔고, 그 세월동안 삶을 겨우 연명한 것이 아니라 눈에 띄게 건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경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난 나와 비슷한 수 천명의 사람들과 태어나서부터 쭉 고기를 먹지 않아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자신에 대하여 행복해 하는 젊은이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그 어떤 일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질병들로부터 자유로웠다.

분명히 채식이 좋은 이유에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이 많이 있고 난 그것을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대중들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지학을 공부하는 자들의 경우에는 후에 언급하게 될 도덕적인 이유가 훨씬 더 강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

채식주의와 오컬티즘-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

다른 모든 것들에서 그렇듯이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가능한 것들 중 가장 좋은 것을 원하는데 그 중 난 음식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또 그 삶에 있어 결코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매일 매일의 먹거리를 우리의 호흡과 조화시켜야 하고 나아가 우리가 아는 가장 가치 있는 것과 조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판단할 만큼 아직 잘 알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음악이나 미술, 문학에서의 경우와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린 어렸을 적부터 우리의 음악적 취향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이려면 항상 가장 좋은 음악만 선택해서 들어야 하고, 처음에 그것을 충분히 이해, 판단하지 못할 땐 마침내 그 음악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우리의 영혼이 깨닫고, 처음에는 가슴에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미술작품을 알아볼 수 있으려면 눈길을 끄는 경찰뉴스 인쇄물이나 '코믹픽처'라 잘못 불리고 있는 추악하고 혐오스런 것들로 눈을 채워서는 안되며, Turner작품 속의 미스테리가 인내심 어린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할 때까지 또, Velasquez의 장중하고 웅장함이 우리의 이해력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꾸준히 바라보아야 한다.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인기신문이나 값싼 소설들, 녹아버린 삶의 쇳덩이 위에 버려진 천박한 쓰레기 덩어리-중편소설들이나, 잡지들, 무지함을 일깨워주지도 나약함을 강하게 해주지도 미숙함을 발전시켜주지도 못하는 활자 조각들-만으로 이루어진 정신적 양식을 취하는 자들에게 빼앗겨 버린 것은 매우 슬픈 경험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서 그들을 모든 분야에 있어 개간되지 않은 취향에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 분야의 취향을 단련하도록 도와주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마음의 양식만큼이나 우리 몸의 그것도 가장 좋은 것을 찾으려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눈먼 본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좀더 높은 관점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해낼 수 있도록 배움으로써 찾아내야 한다.

물론 세상엔 가장 좋은 것을 원치 않으면서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고 싶어하거나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등한 저질의 인간으로 만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틀림없는 것은 가장 좋은 것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만이라도 한다면 즐겁게 기꺼이 그것을 취하여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엔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지만 잔인한 늑대의 삶을 살아오면서 도살된 동물의 시체가 필요한 식단이라고 배워온 남자, 여자들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이렇듯 소름끼치는 것이 결코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것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자신이 자연의 품속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몸이 마스터의 사원들이 그렇듯 순수하고 정결해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욕지기 나는 관습을 버려야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해 힘쓰는-자기 자신과 더불어 모든 인류를 위해 모든 것에 있어 가장 고귀하고 순수함을 찾기 위해 힘쓰는-자들과 함께 그 중심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왜 채식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좋다고 하는가?

더 많은 영양분

첫째, 채소는 같은 양의 죽은 고기보다 더 많은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랍고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기로 몸을 더럽히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믿도록 길러졌으며 이런 착각은 일반적인 사람을 거기에서 일깨우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채소에 영양분이 더 많다는 것은 습관의 문제도 감정의 문제도 편견의 문제도 아닌 단순히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는 조금의 문제도 없으며 있었던 적도 없다. 음식엔 필요한 네 가지 성분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몸을 만들고 치유하는데 필수적이다.

(가)단백질 또는 질소함유물 (나)탄수화물 (다)지방 (라)염분

이러한 분류는 요즘 행하여지는 조사들이 그것을 바꾸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에도 일반적으로 생리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이 모든 성분들이 죽은 고기보다 채소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예를 들면, 우유, 크림, 치즈, 견과류, 완두류와 두류는 아주 큰 비율의 단백질 또는 질소함유물을 포함하고 있다. 밀, 귀리, 쌀 그리고 다른 곡류들, 과일들 또 대부분의 야채들(완두류와 두류 그리고 편두류를 재외한)은 주로 탄수화물-바로 녹말과 당분이다-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은 단백질이 많은 식품 대부분에 포함되어있으며 버터 또는 기름의 형태로 추출해낼 수도 있다. 염분은 거의 모든 식품에서 많게 또는 적게 발견할 수 있다. 염분은 신체조직 유지에 가장 중요한 성분이며 염분부족은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

가끔 이러한 성분들을 고기가 채소보다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표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사실의 문제이고 그러한 시각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고기 속의 유일한 에너지의 원천은 그 속에 함유된 단백질과 지방이다. 그리고 그 속의 지방이 다른 것과 별 차이가 없음이 확실하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단백질이다.

우선 단백질의 근원은 단 한가지임을 명심해야한다. 그것은 식물 말고는 그 어느것에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견과류, 완두류, 두류 그리고 편두류는 단백질에 있어서 그 어느 고기보다 풍부하다. 그리고 그 단백질은 매우 순수하고, 그 때문에 구성되는 과정에서 저장된 에너지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큰 장점도 가지고 있다.

동물의 몸 속에서는 채소로부터 흡수한 이 단백질이 그 속에 저장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계속해서 분해가 된다. 결론적으로 한 동물이 이미 소비한 것은 다른 것이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몇몇 표들은 단백질의 함유량을 질소의 총량으로부터 계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고기 속에는 요소, 요산, 크레아틴과 같은 조직변환 생성물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질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단백질로 계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모두 나쁜 것들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러한 조직변환은 모든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독소들의 형성과 함께 필요적으로 나타나고, 또 그 독소들은 매우 유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죽은 고기를 먹는다면 이 조직변환 생성물을 먹는 것이다.

왜냐면 그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채소에서 소비할 것은 이미 소비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물이 이미 반은 써버렸으므로 본래 얻을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의 양분을 얻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좋지 못한 성분들, 나아가 너무나도 해로운 활성독소들까지 말이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욕지기나는 육식식단을 처방하고,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의사들은 이 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Milner Fothergill 박사는 "전투적 기질의 나폴레옹으로 인한 참극은 비프티(환자를 위해 만든 소고기죽 같은 것-역자-)의 가치에 잘못된 신뢰를 둔 나머지 무덤으로 들어간 수 없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좌우간 식품과학이 정확히 이해될 때 환자를 강하게 만드는 결과는 채소를 섭취함으로써 더욱 쉽게 얻어질 수 있다. 또한 그 결과는 무서운 공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시스템의 부산물도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내가 말한 것에 충분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의사들과 의학계에 잘 알려진 사람들의 의견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영국 외과의사회 회원 Henry Thompson은 "고기가 어떤 형태로든 삶에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천박한 실수다. 사람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은 채소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채식주의자는 그들의 음식으로부터 몸의 성장 유지, 열과 힘을 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문제를 뒤로 하고 그런 식단을 가지고 사는 몇몇 사람들이 훨씬 강하고 건강하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난 넓게 퍼진 육식식단이 사치이고 낭비일 뿐 아니라 그 소비자에게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원인이 되는지 알고 있다. "라고 말했다. 잘 알려진 의학계 인사의 말이다.

그럼 영국 학사들의 말을 들어보자. 의학박사 Benjamin Ward Richardson 경은 "주의 깊게 선택한 채소들은 영양가치에 있어 동물성 식품보다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난 채식과 과일 중심의 식단이 일반화되는 것을 보고 싶고, 또 그리 되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유명한 의사 William S. Playfair는 "육식은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고, St. Pancras의 이학사 F. J. Sykes는 "생물학만큼이나 화학도 채식주의에 적대적이지 않다. 조직의 재생을 위하여 요구되는 질소 함유물의 공급에 육식이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잘 선택된 채식 식단이 화학적인 관점에서나 인간의 영양공급을 위해서나 완벽하다."라고 말했다.

영국 외과의사회 회원 Francis Vacher 박사는 "난 육식이 사람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좋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런던의 큰 병원들 중 한 병원의 외과장 Alexander Haig 박사는 "채식식품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쉽게 가능하다는 것은 이 때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더라도 생리학자들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의 연구들은 그것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것이 모든 면에서 확실히 바람직하며 마음과 몸에서 더 우월한 힘을 생산하게 함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1902년 7월의 뉴스와 The American Practitioner 에서 M. F. Coomes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인간 신체의 완벽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단으로 온혈동물의 고기는 필요하지 않다.". 그 외에 그가 한 다른 주장들은 다음 말머리 밑에 인용하기로 한다.

필라델피아의 Jefferson 의과대학장은 "일용식품으로서 곡물이 인간경제에 있어 우월한 위치에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가장 좋은 상태에서 유지하는데 필요한 성분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다. 곡물식품의 가치가 더욱더 잘 알려진다면 인류를 위해 너무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곡물만으로 유지하고 번창하여온 나라들도 있으며 고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식품, 화학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유명한 사람들의 글들로부터 몇몇 명백한 주장들을 보았다. 사람이 무시무시한 육식식단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채소 속에는 같은 양의 죽은 고기에서보다도 더 많은 영양분이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더욱더 많은 인용을 할 수도 있지만 위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그것들은 남은 것들의 평균적 샘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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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 (2) -더 적은 질병-

2. 더 적은 질병

둘째, 많은 심각한 질병들이 죽은 시체를 씹어먹는 그 더러운 습관에서 온다. 여기서 다시 수많은 인용을 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와 같이 그 중 몇 가지에 만족하기로 한다. 적십자사의 Josiah Oldfield 박사는 "고기는 자연적인 식품이 아니다. 따라서 기능적 장애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그것은 암, 폐결핵, 열병, 장내 기생충, 그 밖의 광범위한 무서운 질병(인간에게 쉽게 전염되는)에 감염되었다. 태어나는 사람들 100명중 99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질병들의 가장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육식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Edward Saunders 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류에게 건강과 효율을 위하여 고기와 맥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훌륭할 것이며, 인류의 발전과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됨으로써 안으로는 통풍, Bright병(단백뇨와 고혈압증상의 신장질환-역자-), 그 밖의 간, 신장 질환들이 줄어들 것이며 바깥으로는 극악무도한 행동이나 아내학대, 살인이 줄어들 것이다. 난 우리의 식사경향이 채식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알맞다는 것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육식이 인간문명에 반함이 밝혀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믿는다."

의학박사 Robert Christison 경은 "탄저병과 같은 염증성 질환에 감염된 동물의 고기와 분비물은 그것을 섭취한 사람이 아주 심한 고통을 받을-이런 질병은 소화기관내에 염증을 일으키거나 외부에 하나 또는 수 개의 염증을 일으킨다.-정도로 아주 독성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파리대학의 A. Kingsford 박사는 "동물의 고기는 곧 고통스럽고 더러운 질병을 낳는다. 연주창(결핵균으로 목의 임파선이 붓는 병-역자-)은 그 자체만으로 고통과 죽음의 더 없는 원인이 되며, 그 발생원인이 육식습관에 있음은 가능성여부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연주창(scrofula)이라는 말이 암퇘지를 뜻하는 scrofa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말하자면 연주창에 걸린 사람은 돼지의 병에 걸린 것이나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Gamgee 교수는 영국의 Privy Council에 실린 그의 다섯 번째 논문에서 "현재 소비되고 있는 고기 전체 양의 5분의 1이 나쁜 병에 걸린 상태에서 도살된 동물에게서 나온다."라고 주장하였고, 영국외과의사회 회원 A. Winter Blyth는 "경제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육식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문제는 심각한 병에 걸린 고기가 마치 아주 좋은 상태의 고기처럼 포장된다는 것이다. 폐에 한층 진보된 질환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동물들의 고기를 보면 그것이 일반의 것과 다름에도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M. F. Coomes 박사는 앞에서 인용한 그 기사에서 "우리는 육식경제 위의 식품들로 인한 모든 악영향들-예를 들자면, 류마티즘, 통풍과 그 유사한 질병들, 종종 뇌졸중과 악독한 또 다른 질병들을 낳는 뇌출혈은 말할 것도 없고, 과도한 육식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또 때로는 과도한 육식을 못해서 나타나는 편두통과 그 외 여러 두통증상들-로부터 자유로운 고기의 대체식품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J. H. Kellogg 박사는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이 식품으로서 동물의 고기가 순수한 영양공급원이 아니라 독소들을 섞어 놓은 것이며, 그 성질에 있어서는 동물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인 대변과도 같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식물은 에너지를 저장한다. 증기기관을 돌리고, 기차를 끌며, 증기선을 몰고, 문명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식물들-석탄과 나무-로부터 나온다. 동물들의 삶에서 신체적 정신적 활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에너지는 직간접적으로 모두 식물에서 나온다.

식물은 만들고, 동물은 분해한다. 식물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동물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증기기관차를 통해서든 동물을 통해서든 에너지 사용의 결과로 다양한 폐기물과 독소들이 만들어진다.

살아있는 동물의 조직은, 그들의 몸 속과 겉을 쉴새없이 흐르며 그들의 운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독소들을 그것들이 만들어지자마자 운반하는 피에 의하여 계속해서 깨끗이 씻겨짐으로써만 그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혈관 속 피는 신장, 폐, 피부, 장에서 제거된 독소들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 죽은 동물의 고기는 죽음의 순간에 만들어진 결과물인 이 독소들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형태는 동물이 죽은 뒤에도 얼마동안 지속된다.

저명한 프랑스 외과의는 근래에 '비프티(환자를 위해 만든 소고기죽 같은 것-역자-)는 정말로 독 덩어리이다.'라고 한바있다. 모든 곳의 영리한 의사들은 이 사실들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것을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또다시 우리의 증거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육식체계와 독소를 연결시키는 말들에 관한 인용은 채식주의 박사들이 아닌 식품문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연구한, 그렇지만 아직은 조금씩이나마 시체를 먹고 있는 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죽은 고기는 결코 완벽한 건강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것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물은 죽임을 당함과 동시에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이 그것이 구성된 역방향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모든 것들은 쓸모가 없으며, 그 중 대부분은 매우 위험하고, 독성을 가지고 있다.

고대 힌두 경전에서 우리는 인도에서조차 초기에 낮은 카스트에 있는 자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구절은 고대에는 오직 세 가지 질병만이 존재하였고, 그 중 하나가 노령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78가지의 새로운 질병이 생겨났다고 되어있다. 이것은 질병이 시체를 씹어먹는 것에서 온다는 생각이 천년 전에도 알려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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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3) -인간에 대한 자연스러움-

3. 인간에 대한 자연스러움

셋째, 인간은 선천적으로 육식성이 아니기에 그 끔찍한 식품은 인간에게 알맞지 않다. 이제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측 견해에 어떤 권위가 부여되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또 한번 몇 가지 인용을 해보겠다. Baron Cuvier는 "인간의 구조적 측면에서 판단하여 보건데 인간의 자연적인 식품은 과일, 뿌리 그리고 채소들이다."라 하였고, Ray 교수는 "확실히 인간은 육식성 동물로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국외과의사회 회원 Richard Owen 경은 "유인원들과 모든 영장류는 과일, 곡물 그리고 다른 다육식물들로부터 영양을 섭취한다. 그리고 이들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측면에서의 완벽한 유사성은 인간의 초식성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William Lawrence 교수는 "인간의 치아는 육식성 동물의 것들과는 조금의 유사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치아, 턱, 소화기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인간의 구조는 초식성 동물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Spencer Thompson 박사는 "어떤 생리학자도 인간이 채식을 하여야 한다는데 대해서 논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고, Sylvester Graham 박사는 "비교해부학적으로 증명해보건데 인간은 선천적으로 초식동물이며, 과일, 씨앗 그리고 전분을 포함하는 채소를 섭취하며 살아가도록 되어있다."고 하였다.

채식의 바람직함은 성서의 영감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말씀하시길 "보아라, 내 너에게 땅위에서 씨앗을 맺는 모든 풀과 씨앗을 가진 과일을 맺는 모든 나무를 주나니, 너에겐 그것이 고기가 되리라."하셨다. 죽음이 세상에 다가온 것은 인간이 타락하면서부터이다. 그와 함께 먹는 것에 대한 더욱 타락한 생각도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다시 에덴 동산에서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면 그 끔찍한 저질 식품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여지는 불필요한 도살을 당장 그만두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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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4) -더욱 강한 힘-

4. 더욱 강한 힘

넷째, 채식을 할 때 사람은 더욱 강하고, 활기차다. 사람들이 "고기 먹지 않으면 너 아주 약해 빠지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이건 진실이 아니다. 채식을 해서 더 약해진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안다.

근래 여러 육상대회에서 채식주의자들은 그들이 가장 강하고 지구력이 좋음을 증명했다.-그 예로 독일에서 있었던 사이클 대회에서 상위권은 모두 채식주의자였다. 이 같은 시험은 아주 많이 있었고, 그 시험에서는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할 때 순수한 식품을 섭취하는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보였다. 우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바보 같은 편견, 메스꺼운 식욕과는 반대로 정리됨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J. D. Craig 박사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충분히 설명된다.

"육체의 힘은 주로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자랑한다. 특히 그들이 주로 야생생활을 하는 자들일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특이한 점은 채식주의자와 같은 지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기는 이미 분해과정을 거친 것이고, 그 결과로 그것의 존재는 조직 내에서 짧게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물의 몸 속에서 고기에 축적된 힘은 다시 두 번째 자극을 받고, 그렇기 때문에 그 축적된 힘은 곧 소모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급한 요구가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잘만 먹으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곧 배고픔을 느끼고 약해져버린다. 그런 반면에 식물성 식품은 느리게 소화된다. 그것들은 처음 그대로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으며 독은 전혀 없다. 그것들의 분해과정은 고기보다 늦다. 따라서 그 속에 축적된 힘은 더 느리게 나오며 손실 또한 적다.

그리고 그것을 섭취한 사람은 음식섭취와 배고픔의 고통이 없이도 긴 시간을 일할 수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유럽인들은 좋은 가문과 지식인 계층 출신이다. 그들은 지구력문제에 대해 접근하였고,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독일과 영국에서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 사이에 지구력을 요하는 유명한 육상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모두 채식주의자들의 승리였다."

우리가 조사만 해본다면 이 같은 사실이 오래 전부터 알려져왔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역사에서조차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의 모든 종족 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강하고 지구력이 좋았다고 인정되는 종족은 스파르타인이었고, 그들의 식사가 간단한 채식이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스의 육상선수-올림픽과 이스미안 게임(코린트 지협에서 2년마다 벌어진 고대 그리스 4대경기 대회의 하나-역자-)의 참가를 위해 채식을 하면서 자신을 준비했던 사람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고전을 읽어보면 무화과, 콩, 치즈, 옥수수만으로 살면서도 그들만의 분야에서 나머지 세상 모든 이들을 뛰어넘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검투사-그들 자신의 생명과 명예가 그들의 힘에 달려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식사는 오직 보리빵과 오일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음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예들은 강해지기 위해서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오래되고 일반적인 잘못이 사실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임을 보여준다. Charles Darwin 은 그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내가 본 일꾼들 중 가장 특이한 자들은 칠레 광산의 노동자들이네. 그들은 많은 두류를 포함한 채식만을 하는 사람들이네."

같은 광부들에 대해서 Francis Head 경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Central chile의 구리광산 광부들에게 200파운드의 광물짐을 지고 수직으로 8야드를 하루 12번 나르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식사는 모두 채식-아침엔 무화과와 작은 빵조각, 점심엔 삶은 콩, 저녁엔 볶은 밀-이다."

F. T. Wood 씨는 그의 <Discoveries at Ephesus>에서 "Smyrna의 터키인 짐꾼들은 종종 400-600파운드의 짐을 등에 진다. 그리고 한날 그들의 책임자가 나에게 그들 중 한사람을 가리키며 그가 800파운드의 상품더미를 위층 창고로 날랐다고 하였다. 그들은 검소한 식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힘은 참 셌다."고 쓰고 있다.

같은 터기인들에 대해 William Fairbairn 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터키인은 다른 국적의 군인들이 배고파 할 환경에서도 싸울 수 있다. 그들은 술을 멀리하고 보통 채식을 하는 간단한 습관이 그들이 심한 고통과 부족한 식량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여준다."

나 역시도 인도 남부의 Tamil 일꾼들이 보여준 엄청난 힘을 본적이 있다. 난 그들이 놀라운 양의 짐을 나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증기선의 갑판 위에 서서 한 일꾼이 큰 상자를 등에 지고 천천히 하지만 침착하게 해변으로 놓여진 널빤지 위를 걸어 내려가 창고 안에 넣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내 옆에 서있던 선장이 놀라움을 나타냈다.

"어? 런던항에서는 저 짐을 나르는데 4명의 영국 일꾼이 필요했는데!" 난 그 뒤에 그들 중 또 다른 일꾼 하나를 보았는데 그는 그랜드 피아노를 등뒤에 지고 도움 없이 아주 먼 거리를 날랐다. 이들은 완전히 채식주의자였고, 가끔 맛을 내기 위해 타마린드(열대산 콩-역자-)를 섞어 먹었던 것 같다.

같은 문제에 대해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Alexander Haig 박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요산을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내 힘이 15년전 같이 되는 효과를 보았다. 15년 전에라도 내가 지금 아무 문제없이-피곤과 피로, 다음날 찾아오는 경직에서의 자유-미쳐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을 지는 미지수다. 난 요즘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다니며 비교적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이 유별난 의사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왜냐면 조직 내 요산의 존재에 의해 발생되는 질병에 관한 그의 연구를 통하여 육식이 이 치명적인 독소의 가장 큰 원인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식단의 변화가 그의 성격-전에는 항상 불안하고 화를 잘 냈었는데 이젠 무척 침착해졌고 안정되었다.-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음식의 변화에 기인함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 외에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동물의 왕국에서 찾을 수 있다. 육식동물들은 가장 강한 동물들이 아니며 동물세계의 모든 일들은 초식동물들-말, 노새, 소, 코끼리 그리고 낙타-에 의해서 행하여진다. 사람이 사자나 호랑이를 이용한다거나 그 잔인한 육식동물들의 힘이 식물에서 바로 에너지를 섭취하는 동물들의 힘과 동등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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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5) -동물적 욕망의 감소-

5. 동물적 욕망의 감소

다섯째, 죽음 시체를 먹는 것은 곧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지고, 동물적 욕망을 증대시킨다. 40년 동안 알코올중독에 대하여 연구하고 강의해온 H. P. Fowler 씨는 육식품의 섭취는 신경계를 자극하여 모든 것에 있어 무절제해지는 습관의 지름길이 되며 더 많은 고기를 섭취할수록 지독한 알코올중독의 위험은 더욱더 심각해진다고 말한다.

경험 있는 많은 의사들이 비슷한 실험을 거쳤고, 알코올중독의 치료에 있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 인간 기질의 저층부는 의심의 여지없이 육식을 하는 습관이 자극한다. 그 끔찍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식사를 완전히 한 끼 먹더라도 사람은 불만족을 느낀다. 왜냐면 분명하진 않지만 뭔가 모자란 불만감을 의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신경계의 긴장으로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 욕망은 저질식품들이 음식이라고 제공되어봐야 충족될 수 없는, 우리 몸 조직의 배고픔이다. 이 애매한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아니 그 쉼 없는 긴장을 달래어 더 이상 그것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종종 흥분, 자극물에 의지하게 된다.

때론 알코올 음료를 마시고, 때론 블랙커피로 그 느낌을 완화시키려 하며, 또 다른 때엔 독한 담배를 흥분되고 지쳐버린 신경을 달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바로 여기서 무절제함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경우 폭음이 빈약한 식사-진정 몸에 영양을 줄 수 없는 식사-후에 따르는 그 모호한 불만감을 알코올 자극물로 달래려 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음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빈곤, 불행, 질병 또 범죄는 종종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잘못된 식사에 있을 것이다. 우린 막연히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을 따라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식사의 결과로 종종 나타날 수 있음이 이제 권위적으로 모두 인정된 과민함이나 일시적인 극도의 정신이상을 얘기할 수도 있고, 소화불량과 비슷한 수 백가지 증상들을 언급하면서 그 소화불량이 언제나 잘못된 식사의 결과임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개인과 나아가 인류의 복지에 순수한 식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깊은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기에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구세군 협회장 Bramwell Booth 씨는 채식주의를 주제로 한 선언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왜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을 자제해야하는지 꼭 19가지 이유를 들면서 채식에 대하여 호의적인 시각으로 강하고 확고하게 얘기하였다.

그는 순수함과 순결함 그리고 너무나도 자주 엄청난 유혹의 원인이 되는 욕정과 식욕의 완벽한 통제를 위하여 채식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육식의 증가가 나태함, 졸림, 무기력, 소화불량, 변비 그리고 다른 여러 불행과 타락의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또 그는 치질, 습진, 기생충, 이질 그리고 심한 두통도 육식에 의해서 종종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지난 100년간 폐결핵과 암의 증가가 육식품 사용증가의 반응으로 나타났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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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6)-경제-

6. 경제

여섯째, 채식식단은 모든 면에서 고기보다 훨씬 싸다. 바로 전에 언급한 선언서에서 Mr. Booth 씨는 채식을 옹호하는 이유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밀, 오트밀, 옥수수 그리고 다른 곡물들과 편두, 완두, 콩, 땅콩 그리고 비슷한 식품들로 구성된 채식식단은 육식식단보다 10배 이상은 경제적이다. 고기는 그 무게의 반이 마치 그것이 고기인양 값을 지불하게되는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채식식단은 치즈, 버터 그리고 우유를 포함하더라도 고기와 채소가 혼합된 식단 가격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육식품을 구입하면서 빚지지 않고는 살기가 어려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과일과 채소 그리고 다른 경제적인 식품들로 육식품을 대신하면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측면의 문제는 또 있다. 일정한 넓이의 땅이 밀 재배를 위하여 쓰였을 때, 그것이 목초지로 쓰였을 때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또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그럼 이런 관점에서도 할 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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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7)- 살육의 죄악

지금까지 우리는 그것이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목적일지라도 인간이 육식을 그만두고 순수한 식품을 향해 돌아서야 하는 육체적 이기적 이유라 명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제 여기서 잠시 타인에 대한 의무와 관련된 도덕적 이타적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 번째로-나에겐 이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된다-이유없는 동물들의 살육이다. 시카고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무시무시하고 끊임없는 살육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대규모 도살장들이 어떻게 상위층에 식품을 공급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욕지기나는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그 동전 하나 하나까지 얼마나 피로 물들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앞에서 명백히 입증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면 이는 범죄이다.

생명의 파괴는 언제나 범죄이다. 때론 경미한 해악에 그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기 이것은 절대 불필요하고, 정당화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욕지기나는 음식에 대한 욕망에 완전히 타락해버린 자들의 비뚤어진 입맛을 맞추어 동물들의 고통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서운 일에 대하여 그 불결한 일을 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들을 부추기고 그들의 일에 이익을 주는 자들 역시 신 앞에 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깨끗하지 못한 음식에 관련된 자들은 그 형용할 수 없는 죄악과 그것이 얻어지는 과정 속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이다.

법에 있어서도 그것이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통하여 한 짓은 그 자신이 한 것이라는 원리는 보편적이다.

혹자는 "나 혼자 육식을 그만둔다고 해서 이 모든 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아님과 동시에 정직하지 못한 말이다. 우선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루에 1~2파운드의 고기를 소비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안가 동물 한 마리의 무게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건 양의 문제가 아닌 범죄에 대한 공범의 문제이다. 당신이 그 범죄의 산물을 먹는다면 당신은 그 범죄에 이익이 남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당신 역시 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저속한 욕망이 발현되면 사람들은 보통 그 관점에 있어 부정직하게 되고 분명한 사실들을 외면하려 한다. 이 무섭고도 불필요한 살육이 바로 흉악한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점은 이 불쌍한 동물들의 육지를 통해서든 바다를 통해서든 그 운반과정에 관련된 무서운 학대와 도살과정에서 있어서 종종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잔혹함이다. 이 더러운 범죄를 정당화하려 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동물들을 가능하면 빠르고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주의는 전혀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로 소름끼치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은 보고서들을 읽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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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 (8) 백정으로의 타락

리드비터 지음 /이주홍 한글 번역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타락과 죄악을 부르는 사악함이다. 만일 여러분 자신이 고기를 먹기 위해 칼이나 도끼를 들고 동물을 도살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그 일의 더러움을 알게 될 것이고, 곧 그 일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피가 질질 흐르는 스테이크를 씹어 드시는 우아한 숙녀께서 그의 아들들이 백정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싶어할까? 그렇지 않다면, 그럼 그들에겐 다른 여인들의 아들에게 그 일을 시킬 어떠한 권리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시킬 권리가 전혀 없다.

혹자는 우린 누구에게도 그 더러운 일을 생계수단으로 삼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핑계에 불과하다. 왜냐면 그 무서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잔인하게 만들어야 하고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타락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음식의 수요로 인하여 나타난 한 부류의 사람들-무지무지 나쁜 평판을 가지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을 알 것이다. 이런 더러운 일에 의해 잔인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다른 관계에 있어서도 그 야만성이 나타나게 된다.

그들의 성격은 잔혹해지고, 싸움에선 피를 부른다. 또 난 많은 살인사건에서 범죄자들이 백정의 상징물인 특이하게 꼬인 칼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음을 들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일이 있음과 그 일의 어느 일부분을 담당한다면-그저 도와주는 것 뿐이라 하여도-여러분은 또 다른 사람을 여러분 자신은 어떤 조건 하에서도 하려하지 않을 일에 종사시키게 되는 것임을(그것도 전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그저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 우린 우리 모두가 세계의 평화와 우정의 시대-더 이상 전쟁도 없고, 현재를 뒤덮고 있는 모든 것들과는 다른 상황 속에서 분쟁과 분노로부터 아주 멀어진 사람들의 시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여러분은 동물의 왕국 역시 이러한 시대의 도래를 위해 없어져야 할 것이 있다고-대규모 살육의 무서운 악몽이 사라져야 한다고-생각하지 않는가? 세계의 진정한 문명 국가라면 분명히 잘 알 것이다. 서구의 우리들은 아직 젊고, 젊음의 미숙함이 남아있기에 모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 속에서의 이러한 일들을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텐데 말이다.

여하튼 모든 문제를 뒤로 하고 미래는 채식인과 함께 한다. 우리는 미래-난 가까운 미래가 되기를 소망한다-에 지금을 구역질을 내며 공포심을 갖고 뒤돌아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경이로운 기계들, 창출된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후손들은 이 시대를 그저 문명의 일부로 봄과 동시에 사실상 야만성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시대로 볼 것이라고 난 확신한다.

그들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분명 우리가 우리들 속에서 순수한 동물들-우리가 먹여 살찌워놓고, 그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는-의 불필요한 대규모 살육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고, 우리들을 위해 이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부류를 창조했으며, 그들의 타락의 결과로 인한 이득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오직 물질적인 면과 관계된 이유들이었다. 이제 오컬트적인 면에서 이야기 해보자. 지금까지 난 여러분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지만-강력하고 확실하였기를 바란다-그 모든 것은 여러분 자신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유명한 의사나 박사의 증언을 읽어 볼 수도 있고, 또 경제적인 면에선 여러분 자신도 한번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찾아보면 얼마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채식식단 위에서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알게될 것이다. 즉 여태까지 이야기한 것은 모두 여러분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평범하고 물질적인 이유들은 접어두고, 더 높은 영역을 탐험한 사람들의 말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곳으로 여러분을 안내할까 한다. 이제 이 모든 것의 숨겨진 다른 면, 오컬트로 시선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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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9) 오컬트적인 이유들

오컬트란 표제 아래서 역시 우린 여러 가지 이유들을 두 분류-우리 자신 및 우리의 발전에 관련된 것과 진화의 위대한 도표 및 그것에 있어 우리의 의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린 전보다 훨씬 더 높은 영역에서이긴 하지만 또 다시 그것들을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으로 분류해보아야겠다.

난 이 글의 앞부분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문제에선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고, 그랬기를 바란다. 모든 증거들과 이유들은 채식주의 입장에 서는 것이었고,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의 논의에 있어 오컬트적인 부분을 얘기한다면 그런 상황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오컬티즘의 가장자리만을 맴돌면서 아직은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지시들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 때문에 그들은 그 가르침이 자신의 습관이나 욕망을 침해할 경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자들은 음식의 문제는 오컬트적인 관점에선 아무런 차이점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대와 현대를 통틀어 오컬트를 배우는 곳에서의 일치된 기준은 이 점에 있어 명확해왔다. 즉 모든 과정에 있어 순결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훨씬 높은 영역의 문제만큼이나 육체적인 면과 음식에서도 말이다.

여러 책과 강연에서 난 자연과 우리와 관련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상의 다른 면이 존재함을 이미 설명한 바 있고, 사람은 그 자신 안에 모든 높은 영역과 관련된 것을 지니고 있어 각각의 영역과 교신할 수 있는 매개체를 가진 것과 같아 그것을 통해 감응을 얻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한 경우도 있다.

우리 몸의 이 고귀한 부분이 그것과 너무도 가깝게 연결되어있는 육체로 들어오는 음식에 의하여 어떻게든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그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당연하다. 인간에게 있어 육체의 문제와 아스트랄 및 멘탈에 관한 문제는 매우-크게 보면 서로 대응하는 위치에 있을 정도로- 가깝다.

예를 들어 아스트랄에 관련해서 그 밀도에 대한 많은 유형과 등급이 있기 때문에 조잡하고 추한 것들로 이루어진 아스트랄 몸체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고상하고 정제된 아스트랄 몸체를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스트랄 몸체는 감정과 열정, 감각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추잡한 유형의 아스트랄 몸체를 가진 사람은 거의 추잡한 감정과 열정에 따르게 되는 반면에 훌륭한 아스트랄 몸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이루는 입자들이 좀더 고귀하고 맑은 감정과 열망에 대한 반응으로 거침없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때문에 추잡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로 자신의 육체를 이루는 사람은 그 육체의 대응하여 추잡하고 불쾌한 것들을 자신의 아스트랄 몸체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린 모두 죽은 고기에 대한 과도한 탐닉은 육체적인 면에서 뚱뚱하고 추잡한 겉모양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육체만이 불쾌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스트랄 및 멘탈의 몸체와 같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역시 좋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더럽고 불결한 육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추잡하고 깨끗하지 못한 아스트랄, 멘탈의 몸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련된 투시력을 가진 사람에겐 확실히 보인다.

이 고귀한 매개체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낮은 영역의 불순함이 높은 영역의 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번에 볼 수 있고, 자신의 물질적 매개체(육체)에 순수한 음식을 먹이는 사람과 욕지기나게 썩어 가는 고기를 집어넣는 사람의 차이를 확실히 볼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차이가 인간의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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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 (10)-자연에 대한 의무

다음으로 이 문제에 있어 훨씬 더 중요한 이타적인 면-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무-을 보자. 모든 종교는 인간이 신의 의지의 편에, 악에 맞선 선의 편에, 퇴보가 아닌 진보의 편에 설 것을 가르친다. 진보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은 생명 파괴의 악랄함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그 영역에서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지금의 육체에 와 있듯이, 동물들 역시 같은 이유에서 그들의 육신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낮은 단계의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보다 하등한 생명들도 신성하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생명은 신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문에 동물들은 진정으로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비뚤어진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빼앗을 그 어떤 종류의 권리-단지 타락하고 구역질나는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줄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스포츠'로 잘못 불리어지는 행위와 대량 학살을 통해 우리의 시야에서 야생동물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다 같은 신의 창조물인 형제들의 관계란 말인가?

이것이-인간의 살육본능 때문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인간에게서 멀어져 가는 상황- 앞으로 다가올 온 세상이 평온한 황금시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인가?

이 모든 것의 결과-높은 영역의 시야와 관계된 것들을 볼 수 없는 한 전혀 알아챌 수 없는 결과-는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너무도 무참히 살해한 모든 생명 하나하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지니고 있다. 공포와 고통, 분개 그리고 격렬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이 모든 끔찍한 부당함에 대한 느낌. 우리를 둘러싼 대기는 이러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난 최근에 심령력이 강한 사람들로부터 시카고의 무서운 오오라나 기운을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다. 베산트 여사도 몇 년 전에 영국에서 내게 똑같은 말-오래 전에 시카고 주변에 갔었는데 극도의 공포와 함께 침울한 죽음의 장막이 엄습함을 느꼈고, 그래서 주위 사람에게 "도대체 우리가 어디 있는 건가요,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 무서운 기운이 공기 중에 있는 거죠?"라고 물었다-을 했었다.

이렇듯 분명하게 어떤 결과를 느낀다는 것은 자기개발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비록 그곳의 거주자들이 베산트 여사처럼 직접적으로 지각하고 알아채지는 못한다 하여도, 무의식중에 그것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으며, 자신들은 몰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두려움과 공포, 부당함의 무서운 기운이 작용하고 있음은 확실히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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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11)-보이지 않는 무서운 결과들

시카고에선 너무도 흔한 긴장감과 심한 우울증은 마치 재앙의 구름처럼 온 도시를 뒤덮고 있는 그 무서운 결과가 가장 큰 원인이다. 매일같이 얼마나 수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수는 실로 엄청나다.

그 생명들 하나하나는 확실한 하나의 존재-영원하지 않은, 여러분이나 나의 것과 같은 개체로 다시 환생할, 하지만 아직은 아스트랄체에 생명을 두고서 적지 않은 시간을 그곳에서 머무를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모두 그들에게 가해진 모든 부당함과 고통에 대한 분노와 공포의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남아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살장들 주위엔 무시무시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투시력을 가진 사람에겐 엄청난 무리의 동물영혼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얼마나 격렬한지, 그것이 인류에게 어떻게 하나하나 되돌아올지 알고 있다.

그들은 대개 그들을 견뎌내기가 가장 어려운 자들-둔감한 어른들보다는 좀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들-에게 되돌아간다. 시카고는 아이들을 키우기엔 최악의 도시-모든 대기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비린내와 그것이 의미하는 모든 것들로 채워져 있는 곳-이다.

일전엔, 기독교인들이 만든 동물의 지옥에서 비롯된 최악의 결과는 시카고의 도살장들에서 발생하여 마치 죽음의 안개처럼 온 도시에 끼어 있는 구역질나는 악취가 아니라 수많은 어머니들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향한 죽음의 숨결임을 설명하는 기사를 읽었다.

도살장들은 아이들의 육체에 대한 전염병동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혐오스럽고 잔인한 일에 고용된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그 세대들의 사고경향이 살육을 향하게 된다.

너무 예민한 나머지 인간의 잔인한 욕망과 동물들의 빼앗을 수 없는 그들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 사이의 끊임없는 무서운 전쟁의 광경과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는 아이가 가끔씩 발견되기도 한다.

목사가 도살장에 마련해준 일자리에서 매일 창백하고 아픈 얼굴로 돌아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던 아이가 결국엔 그 자비로운 그리스도의 기독교 목사에게 가서 굶주려 죽는 한이 있어도 그 피범벅 속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도살장의 공포가 너무도 강해서 잠을 이룰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수많은 아이들이 생명을 앗아가는 일에 단련될 때까지 매일 같이 행하고 보아야할 것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 중 하나가 양이나 돼지의 목을 따는 대신 사람을 죽이게 되고, 곧바로 우리는 살육의 욕망을 그에게로 돌린다. 그리고는 정의를 행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들 전염병동의 이웃사회에서 많은 자선봉사활동을 해온 한 젊은 여성이 그곳의 아이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뭔가를 죽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놀이가 없다는 것과 동물들과의 관계에 있어 백정과 희생양 관계 외에는 아무런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매일 살인학습-이 소위 기독교인들이 도살장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역 살인사건의 숫자와 잔혹함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럼에도 여러분의 기독교 사회는 전염병과 범죄의 소굴 속에서 하나님의 자식들에겐 그 어떤 악행도 저질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듯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며 설교를 듣는다. 실로 죽은 육신을 뜯어먹는 습관은 우리들 속에 도덕적 무관심을 조장하였다.

여러분은 잘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미래의 시민들을 이렇듯 극도로 잔인한 환경 속에서 키우면서?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오컬트적인 면에서 보면 유감스럽게도 훨씬 더 심각하다.

왜냐면 오컬티스트들은 이 모든 것의 정신적 결과와 이 힘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작용하는지, 얼마나 잔인함과 사악함을 강렬하게 하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분이 창조한 악과 범죄의 중심, 그로부터 전염병들이 온 나라에 나아가 인간 문명이라 불리는 모든 곳에 침범할 때까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볼 수 있다.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는 여러 방면으로 전염병에 물들고 있다. 공기 중엔 이유 없는 공포감이 항상 존재한다. 여러분의 많은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공포-어둠 속의 공포 또는 잠시라도 혼자 있을 때-를 느낀다. 강한 힘들은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게 작용하고 있고,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온 대기가 살해당한 생명들의 적대감으로 차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진화의 단계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 없는 아이들에 대한 무서운 결과를 느끼지 않고는 여러분의 어린 형제들에게 이러한 대량 학살을 저지를 수 없다. 물론 더 나은 시대는 올 것이다.

우리의 문명에서 이 지독한 더러움, 우리의 동정심과 연민에 대한 치욕이 사라질 때. 그리고 그 시대가 오면 우리는 곧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점차 모두가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서 모든 본능적인 공포와 증오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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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와 오컬티즘-(12) 앞으로 다가올 더 나은 시대

Vegetarianism and Occultism by C.W. Leadbeater

어쩌면 우리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그것들로부터 해방될지도 모른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생각만 좀 한다면 말이다. 평균인 남성이 곧 야만인은 아니다. 오히려 방법만 안다면 친절해지고 싶어한다. 단지 그는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자신이 무서운 범죄에 가담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인 법, 그는 절대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혐오스러움에 가담하는 한 명 한 명은 그 더러운 일에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대하게 출렁이는 인간사회의 작은 일원들일 뿐인 우리들이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보다 더 높이 올라서고 더 개화된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만이 우리 모두가 전 인류의 높은 문명에 다다를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황금시대는 인간의 것만이 아닌 저 낮은 세계의 것이기도 한 시대, 인간이 어린 형제들에 대한 의무-공포와 증오가 아닌 사랑과 헌신, 우정과 정당한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파괴가 아닌 도움과 가르침을 줄 의무-를 깨닫게 되는 시대이다.

끝없는 의심과 증오가 아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식이기에 우리 모두가 형제임을 깨달음으로써 모든 자연의 힘들이 마지막 목표를 향하여 제대로 움직일 때 그 시대는 다가올 것이다.

이제 시도라도 해보자. 그 무서운 범죄의 공범에서 벗어나 보자. 성실하고 생각 있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자 진정한 소망인 평화와 사랑의 밝은 시대를 좀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 각자의 작은 영역 내에서부터 노력을 시작해보자. 우리는 적어도 세계가 눈부신 미래를 향하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작은 일이라도 할 의지를 가져야한다.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 먹는 음식만큼이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행하는 성서의 가르침처럼 그것이 모범이 되어 우리 안의 모든 것이 자비와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고, 잔인함과 공포의 시대를 마감하여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정의와 사랑의 위대한 왕국의 새벽이 다가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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