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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물의 역습
한채연 2005-06-13 11:25:34








("동물의 역습"(원제: Animals Like Us)/마크 롤랜즈 지음(부분 발췌)중에서)

5. 음식으로 먹기 위한 동물사육
① 닭 ② 돼지 ③ 소 ④ 공장식 축산업과 공평한 자리 ⑤ 동물을 도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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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닭

자신을 닭이라고 가정해보자. 우선 당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이 결정된다.

당신은 '산란닭'이나 '고기닭'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운명은 평생 알만 낳든가, 결국 잡아먹히든가 둘 중 하나이다.

당신이 산란닭 수컷으로 태어난다면, 고기로 쓰기에는 살점의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따라서 일생 또한 짧게 끝날 것이다.

독가스 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나마 운이 좋다. 다른 수많은 병아리들과 함께 비닐포대 속에 구겨 넣어져 무게에 짓눌리고 질식해 죽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지 않으면 산 채로 으깨어질 수도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1억6천만이 넘는 당신의 형제들이 이러한 운명에 고통받고 영국에서도 2천만 가까이 이렇게 죽음에 처한다.

한편 당신이 산란닭 암컷이라면 고통은 태어나자마자 시작된다. 먼저 세상에 나온 지 하루에서 열흘 사이에 부리가 잘린다. 다시 말해 '단두대'처럼 생긴 기계를 이용해 시뻘겋게 달궈진 칼날로 당신의 부리를 자를 것이다.

그래도 1940년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때 태어났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부리를 '용접용 버너'로 태웠을 것이다. 부리를 자르는 것이 닭에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부리는 단순히 밖으로 툭 튀어나온 뿔과 같은 것 아닐까? 손톱 자르는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다.

부리 안쪽에는 아주 민감한 내벽, 즉 부드러운 조직이 있어 '말초신경'들이 퍼져 있다. 인간의 손톱 밑에 있는 피부막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부리 자르기를 손톱을 깎는 것에 비유한다면, 손톱을 자르기 위해 손가락 끝을 싹둑 잘라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리 자르기가 그 자체로 해가 될 뿐 아니라, 다소 '서툰' 기술로 잘못 자를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데 '문제'가 있다. 칼날이 너무 뜨거우면 잘린 입 끝에 극도로 고통스런 종기가 생길 수 있다.

칼날의 온도가 너무 낮거나 무디어 부리가 제대로 절단되지 않는 경우에는 입천장의 조직이 모두 찢어진다. 부리를 너무 많이 잘라내 거의 콧구멍까지 잘라지는 경우도 자주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겠는가? 병아리, 또는 닭의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일렬로 닭을 가두고 알을 받아내는 양계장은 열 마리에서 천 마리, 몇 백만 마리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다.

즉 처리해야 할 부리의 수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에는 '금전적 보상'이 많지 않다. 따라서 부리를 자르는 사람에게 '실수'가 생기는 것은 '거의' 당연하다 볼 수 있다. 이러한 실수에 많은 닭들이 피해를 본다.

부리를 잘라낸 다음에는 '발육식'로 보내진다. 잠깐 동안의 이 시기는 당신의 삶에서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실제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심지어 밖에 나가는 것이 허락될지도 모른다.

(몇몇 양계장 주인들은 이러한 경험을 하면 병아리들이 장차 닭장 속 삶의 가혹함을 더 잘 이겨내고, 더 튼튼해진다고 믿는다.)

이곳은 대개 커다란 우리처럼 되어 있다. 알을 낳기 시작하는 생후 약 20주가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

20주가 지나면 '다시' 한 번 부리를 자르고, 산란시설이 되어 있는 닭장으로 옮겨진다.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태어난 닭이라면 당신이 들어갈 닭장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30cm×50cm 크기가 될 痼隔? 유럽에 산다면 대략 46cm×51cm가 될 것이다. 이러한 우리를 혼자 사용한다면 그나마 '웅장한 대궐'이라 할 수 있다.

어디든 3~6마리의 동료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달걀 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동료와 함께 방을 쓰게 된다. 비좁은 공간 때문에 죽는 닭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달걀 생산의 증대로 얻는 '이익'이 훨씬 크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비좁음은 그나마 복에 겨운 것이다. 몸집이 커져 평균 체격의 닭이 되면,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편안하게 앉기 위해선 적어도 637제곱cm가 필요하다.

만약 한바퀴 몸을 돌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향락'을 즐기고 싶다면 1.681제곱cm가 필요하다. 30cm×50cm의 표준닭장을 다른 동료 넷과 함께 사용한다면 당신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약 300제곱cm이다.

구석구석 모두 통틀어 300제곱cm가 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면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 쉽게 감이 오는가? 참고로 말하자면 'A4 종이' 한 장이 500제곱cm 조금 넘는 크기이다.

만약 아주 운이 좋아서 딱 3마리의 동료와 닭장을 함께 쓴다 해도 375제곱cm의 공간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든 간에 당신이 날개를 펼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야 한다. (닭이 날개를 펼쳤을 때 길이는 약 75cm이다.)

꼭 끼는 울타리가 몸을 돌리거나 날개를 펼치는 행동만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집단의 상호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한다. 닭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군집생활을 하는 습성을 몸에 익혔다. 몇 마리가 모이든 소위 '쪼기 서열 pecking order'이라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형성하여 기본적으로 군집을 유지한다.

좀더 정상의 조건에서 서열이 낮은 닭은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닭이 활동하는 영역에 머물지 못한다. 그러나 30cm×50cm의 닭장에서 어떻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많은 닭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닭에게 쪼인다. 당신 역시 그러한 쪼이는 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닭장 안 4~7마리의 작은 서열구조에서 맨 밑에 있는 닭이 다른 닭에게 쪼여 죽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것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하! 이제 사람들이 닭의 부리를 '자르는' 이유를 알겠는가?

너무 많은 닭이 쪼여서 죽으면 '이윤'이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축산업이 고수해온 '문제해결' 방식이다. 동물이 불쾌하고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불쾌하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사육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이해 환경을 바꾸는가?

'절대' 바꾸지 않는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가축을 키워도 '이윤'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불쾌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에 의해 발생하는 '손실'이 이윤을 너무 갉아먹지 못하도록, 이상행동을 하는 동물을 '잡아 죽인다.'

철조망으로 된 닭장에 끊임없이 몸을 비벼댄다. 다른 닭들이 쪼아대는 공격을 몇 달 버티고 나면 털이 거의 다 빠진다. 당신의 피부, 특히 꽁지 주변을 시뻘겋게 피가 스미고 껍질이 벗겨진 상처가 군데군데 난다.

또한 당신은 운동부족으로 '골다공증'과 비슷한 증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런 증세가 아주 심하면 인간은 당신의 날개와 다리를 모두 부러뜨려 잘라 내버리고, '몸뚱아리만, 담을 수 있게 설계된 '갈빗대닭장' 속에 올려질 것이다(알만 밑으로 나온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정도 시기가 되면 같은 방을 쓰는 동료들은 서로 지나치게 신경이 곤두서 거의 '미친 상태'에 이르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이를 축산업에서는 깃털쪼기 feather pecking 또는 카니발리즘 cannibalism 이라 한다.)

한두 해 이렇게 지나가고 나면(닭장을 같이 쓰던 동료들 중 35%는 이미 죽고 없을 테지만 운 좋게도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면) 기력이 쇠약해져 이제 달걀을 잘 낳지 못한다.

당신에게 들어가는 먹이와 당신이 차지하는 공간에 드는 비용보다 당신이 낳는 달걀로 얻는 이익이 작아지면 양계장 주인은 이윤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때 주인은 '강제털갈이 force moulting'라는 방법을 통해 몇 달 동안 당신을 달래서 알을 더 낳도록 한다. 강제털갈이란 며칠 동안 물도 음식도 주지 않으면서 '어둠' 속에 가두는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당신이 알을 '더 낳을' 수 있도록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편저자:식물도 땅이 척박할수록 꽃을 피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한 두 번의 강제털갈이마저 끝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당신이 할 일은 없다. 식품가공업자에게 넘겨져 고형수프, 냉동파이, 애완동물사료의 재료가 된다. 그렇게 양계장 암탉의 일생은 끝난다.

만약 산란닭이 아니라 고기닭으로 태어났다면 그나마 당신의 삶은 조금 나을 것이다. 태어난 지 하루가 되면 만에서 몇 십만 마리에 이르는 병아리들과 함께 육계사로 보내진다.

거기서 먼저 당신?부리가 잘린다. (아마 '발톱'도 잘릴 것이다.) 육계사는 창문이 없는 큰 공간으로 되어 있다. 이 우리에서 땅을 발고 살 수 있다면 당신은 그나마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크기의 우리 안에서 더 많은 닭을 집어 넣기 위해 층을 나누어 놓은 양계장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당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당신을 포함해 같은 우리를 쓰는 동료들의 몸집이 아직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들 몸집이 커질수록 공간은 점점 비좁아진다. 약 7주 후, 도축될 정도의 크기로 성장했을 때 당신이 차지하는 공간은 약 15cm×15cm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에 배설물 더미가 점점 더 수북이 쌓이는 것은 물론이다. 여기서 나오는 역한 암모니아 냄새가 공기 중에 진동한다. 암모니아는 그 자체로서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로 인한 다리의 화상이나 가슴의 물집으로 고통 받는다. 어찌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존재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의(그리고 남의) 오줌에 화상을 입는다. 또한 점차 많은 수의 당신 동료들이 바닥에 쓰러져 나뒹굴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당신은 점점 비참해지고 이윽고 당연히 '악행'을 서슴없이 하기 시작한다.

5만 마리 이상의 무리에서 자연적인 집단위계질서를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신은, 알을 낳는 암탉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동료들과 싸우게 되고 이는 결국 자기 종족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행태(카니발리즘)로 빠르게 발전한다.

만약 여기서 말장난이 용서된다면, 닭이 서로 잡아먹는 행동은 곧 양계장 주인의 이윤을 잡아먹는 행동과 같다. 이런 상황을 양계장 주인은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그러한 행동을 야기한 환경을 개선할까? 당신을 좀 더 정상적인 상태에서 살도록 해줄까? 공간을 더 넓혀 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 방법은 이윤을 낮추기 때문이다. 대신에 부리를 다시 자르고 당신 주변의 조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 많은 '양계 지침서'에서 말하기를 이때 밝기를 2럭스 정도로 '희미'하게 하라고 말한다.

(촛불의 밝기가 약 10럭스이다.) 어둡게 하면 '공격성'이 감소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이제 몇 주 남지 않은 삶을 당신을 거의 '어둠'과 가까운 상태에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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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돼지

돼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육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돼지라면(상대적으로) 운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양돈에 공장형 생산방법이 점차 적용되면서 대부분 운이 나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예컨데, 거의 모든 돼지가 '전반적 환경통제'라는 가축방식으로 사육된다. 이 방식으로 키워지면 당신은 평생 햇빛을 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죽으러 가는 길에서야 비로소 '처음이자 마지막' 햇빛을 보게 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당신은 몇 대의 주사를 연달아 맞고, 송곳니가 잘린다.(거의 잇몸 가까이 잘라낸다.) 또 당신의 귀에 칼로 자국을 내 표식이 새겨지고,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꼬리가 잘린다. 그런 다음 젖을 뗀,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또 다시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거세될 것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을 위해 커다란 건물로 옮겨진다.다시 말해 도살을 위해 '살찌는' 일만 남은 것이다.

돼지우리는 산란계사처럼 일렬로 죽 늘어서 설계되어 있으나 칸칸이 나뉘어 있다. 몇 천 마리의 다른 돼지들과 함께 창문도 없이 길쭉한 건물에서 도축될 때까지 살게 된다. 만약 좀더 자연스런 환경에서 사육된다면 당신은 안정된 사회집단을 만들어 공도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숲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헤치는데 시간을 쏟을 것이다.

실제로 당신은 대개 낮 시간의 약 52%는 먹이를 찾는데 쓰면 23%는 주변을 탐색하는데 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동 중 어느 것도 당신이 처한 현재 환경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좀더 자연스런 환경이라면 당신은 공동의 보금자리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장소를 정해 두고 화장실로 사용할 것이다.

이 또한 전반적 환경통제 사육방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배설물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방법은 우리바닥을 철망이나 파이프로 만들어 땅에서 떼어 놓는 것이다.

이는 망의 틈새가 좀더 좁은 것 빼고는 소를 키우는 축사와 동일하다. 물론 이는 극도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몸의 '기형'까지 초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거의 도살된다!)

원래부터 지능이 있는 피조물인 당신에게 최대의 적은 아마도 끊임없는 지루함일 것이다. 당신은 먹고 자고 서고 누울 수 있다. 이것이 '끝'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당신은 아마도 어떠한 잠자리 도구도 갖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보금자리를 만들 때 쓰는 짚이나 나뭇잎 같은 것들은 청소하는 일을 더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공장형 양계장에서 사육되는 닭들처럼 이러한 환경에 의해 당신은 십중팔구 스트레스로 고통 받을 것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돼지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은 경색, 피부손상, 숨가쁨, 종종 급사 등으로 나타난다. 역시 공장형 양계장에서 사육되는 닭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어떤 '악행'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당신과 당신 동료들은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물어뜯을 것이다. 이는 처절한 싸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농장 주인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싸움은 격렬한 행위이기 때문에 겨우 '불려놓은' 당신의 몸무게를 감소시키며,

둘째는 꼬리를 물어뜯거나 싸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동료를 '잡아먹는' 행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우리 동료들이 당신의 꼬리부터 뜯어 먹기 시작하여 궁둥이 속으로 파먹어 들어가 결국 죽게 될지도 모른다(문자 그대로 이는 양돈장 주인의 '이윤'을 파먹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스트레서, 과밀한 공간, 지루함이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잠자리에 쓸 지푸라기 같은 기본적인 물건만 제공해도 꼬리를 물어뜯는 사건의 빈도는 '낮아진다.' 짚풀은 돼지에게 부분적으로나마 기분전환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에게 청소하는 일을 더 '번거롭게' 할 뿐이다.(양돈장 주인은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돼지가 활동을 할수록 움직이지 않을 때보다 살찌는 속도가 '느려진다.'(따라서 더 많은 먹이가 든다.) 그래서 꼬리를 물어뜯는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간단한 방법을 선택한다.

꼬리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또한 '전반적 환경통제'를 하여 조명을 어둡게 한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문제해결방식을 공장형 양계장에서도 보았다.

불쾌하고 부자연스런 상태에 동물을 두면 불쾌하고 부자연스런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환경을 개선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그런 방법은 이윤이 '줄어들기'때문에-동물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환경을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어 해결하려 한다.

만약 당신이 수퇘지라면,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 왔다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무게인 100kg에 달하게 되는 약 20주 후 도살장에 끌려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한편, 만약 당신이 번식용 암퇘지라면 완전히 새로운 고통이 찾아올 것을 예상해야 한다. 새끼를 배고 나면(아마도 인공수정을 통해서) 바로 당신은 수태돈사로 옮겨진다.

다른 암컷들과 작은 우리를 함께 쓰는 농장도 있다. 그러나 더 집약적인(또 점점 더 일반화 되고 있는) 방식으로 돼지를 사육하는 양돈장에서는 좁은 칸막이(보통 61×183cm 크기) 속에 가두거나 목에 밧줄을 묶어둘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칸막이 속에 가둔 다음 밧줄까지 묶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당신은 서 있거나 누울 수 있다.그것이 '끝'이다.

물론 당신은 이러한 '감금상태'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처음에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의 머리를 밧줄에 찧어대고 비비고 뒹굴며 당신의 불만을 표현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칸막이 옆면에 몸을 세차게 박아댈지도 모른다.

이러한 메아리 없는 투쟁을 세 시간 가까이 계속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당신이 처한 상황의 '무기력'함이 몸이 배기 시작한다.

코를 우리 칸막이 틈사이로 내밀려 가끔씩 나지각한 신음소리를 내거나 낑낑저리면서 오랜 기간 조용히 누워 있을 것이다.

좀 더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씩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고 탐험하는 매우 활동적인 동물있었을 텐데 말이다.

활동하고 싶어하는 자연적인 욕구는 이제 우리의 칸막이 기둥을 하릴없이 갉아대는 일로만 달랠 수 있다.

여기에서 당신은 약 석달을 머물 것이다. 그 석 달 동안 당신은 '어둠' 속에 갇혀 이틀 또는 사흘에 '한 번'꼴로 주어지는 먹이로 배고픔을 달래야 한다.

(이는 순전히 '이윤'을 고려한 행동이다. 당신은 고기를 얻기 위해 팔리는 돼지가 아니다. 어쨌든 지금은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대신 '문제없이' 새끼를 낳을 수 있을 정도만 먹인다.)

새끼들을 분만하기 약 일주일 전쯤 '분만돈사'로 옮겨져 다시 좁은 칸막이에 갇힌다. 여기서 또다시 눕거나 서기만 할 수 있을 뿐 걸어다니기는커녕 몸을 돌리지도 못한다. 칸막이의 기능은 먹고 마시는 일과 새끼들에게 젖꼭지를 내놓을 수 있을 정도만 허락된다.

현재의 칸막이가 당신의 움직임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한다고 양돈장 주인이 생각하는 경우에는, 칸막이를 바짝 몸에 붙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철제구조물('철제 단두대 iron maiden'이란 별칭을 가진 장치)을 사용한다.

당신은 자신의 몸에 최대한 꽉 조이는 칸막이에 갇혀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몸을 움직여 새끼들을 뭉개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처음에 당신이 새끼를 깔고 누울 위험은, 당신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좁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장형 가축산업의 최우선 규칙은 이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환경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수정을 위해 수퇘지의 커다란 우리에 넣어질 때만 당신은 이런 감옥에서 풀려나 잠시나마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휴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인공수정을 사용하는 횟수가 더욱 늘어나면서 번식용 암퇘지만의 이러한 순간적인 쾌락조처 경험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당신의 삶을 말하면 이렇다. 한 시기의 '고립'과 심한 '통제'는 또 '다른' 시기의 고립과 더 심한 통제로 이어진다.

지금 당신은 적어도 일년에 '두 번' 새끼를 밸 것이다. 왜냐하면 믿거나 말거나, 새끼들에게 젖먹이는 임무조차 '기계 암퇘지'에게 빼앗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시기보다 훨씬 일찍 당신에게서(지금은 우리 속에 함께 있는) 새끼들을 뺏어 가, 깨끗한 환경의 기계암퇘지 앞에 갖다 줄 것이다.

이제 '또다시' 캄캄한 감금의 시기가 되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 된다. 이러한 기계 덕분에, 앞으로 당신은 일년에 평균 2.6회의 분만을 하게 된다.

이것이 '씨돼지'로서 당신이 '살아야' 할 삶의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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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소

가축농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공포의 만신전에서 '송아지고기용 송아지'를 생산하는 사육방법이 가장 꼭대기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송아지고기 요리란 '젖을 떼기 전의 송아지'를 잡은 고기로 만든 요리를 만든다.(영어에서 송아지고기라는 뜻의 veal은 원래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calf의 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젖먹이 송아지의 고기는 일반 소고기보다 빛깔이 연하고 더 부드러운데, 플을 뜯어먹기 시작하면 이러한 고기의 특성이 사라진다.

이렇게 젖도 떼지 않은 송아지들은 아주 작기 때문에 송아지고기는 비싸다. 하지만 1950년에 이르러 젖먹이 때가 지난, 좀더 큰-물론 이 사실이 중요하겠지만-송아지들에게서 젖먹이 송아지들과 같은 육직의 고기를 생산하는 방법이 발명되었다.(이로써 가격도 좀 내려갔다.)

이 방법은 간단히 말해서, 송아지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적어도 시장에 내다팔 적정 무게에 도달하기 전까지만 죽기 않을 정도로, 심한 '빈혈'을 유발하는 것이다.

송아지고기로 쓰일 송아지가 되려면 먼저 튼튼하고 건강하게 태어나야 한다. 송아지고기를 만들기 위한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야 하기 때문에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송아지들만 가려내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소에게서 떼어내, 대략 56cm×137cm(미국표준) 크기의 사방이(바닥도) 나무로 된 우리로 옮겨진다.

이 우리는 완전히 외부와는 격리된 건물 안에서 층층이 줄지어 늘어선 수천 개의 나무상자 중 하나일 것이다. 아주 어리다 하더라도 이 나무상자는 몸을 돌리기에도 작으며,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서고 눕는 일조차 아주 어렵다. 서너 달 동안 이 우리, 아니 상자에 갇혀 있으며, 더 움직이지 못하게 목에 밧줄도 묶을 것이다.(그 이유를 곧 알게 된다.)

이 기간에 당신은 씹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전혀 먹지 못하고 '대체우유'만 계속 빤다. 대체우유란 분말 우유제품에 녹말, 지방, 설탕, 첨가제, 풍부한 '항생제'를 섞어 만든 것이다.

이 기간이 전 과정에서 가장 핵심 단계이다. 대체우유에는 철분 성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철분이 전혀 없으면 죽기 때문에 철분을 완전히 빼지는 못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최소한의 양만 넣는다.

이는 매우 치명적이어서 극심한 형태의 '빈혈'을 겪게 된다. 이러한 빈혈로 당신 몸의 적혈구가 부족해지고 살점 빛깔은 '연해진다.' 고기의 색이 '연할수록' '최상급' 송아지고기로 좋은 가격을 시장에서 받는다.

건초나 짚풀은 당신의 식단에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철분을 함유하여 당신 살점을 검붉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당신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당신은 아무런 잠자리 도구도 제공받지 못한다.(당신이 짚풀을 먹고 싶어 하는 열망을 참다못해 모두 먹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에 당신은 널빤지로 만든 딱딱한 바닥에 아무것도 없이 맨살을 부닥치며 평생을 살 것이다. 철분을 필사적으로 섭취하려는 욕구에서 이제는 칸막이 벽이라도 뜯어 씹어려 할 것이다. 다양한 소화불량, 위궤양, 만성설사로 고통을 받는 것을 두말할 나위 없다.

헌데, 왜 하필 작은 상자에 넣을까? 왜 목줄을 맬까?

섬유질, 즉 철분의 한 공급원이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털과 배설물에 철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자기 몸의 털을 고르는 행동조차 못하도록 철처히 금지된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다른(송아지고기로 쓰이지 않을) 송아지들처럼 자신의 대소변을 당연히 멀리하려 하겠지만 이런 환경은 정상과 아주 멀다.

철분을 섭취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당신은 자신의 배설물을 핥아서라도 만족시키려 한다. 따라서 배설물에 다가가는 것조차 금지된다. 그래서 작은 상자가 필요하고, 목줄을 매어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돼지들처럼, 이러한 억압이 당신에게 남기는 신체적 문제는 심리적 문제에 의해 복잡해진다. 풀리지 않는 지루함만이 당신의 유일한 동반자이다. 매일 대체우유를 먹는데 걸리는 시간인 20분 정도를 빼고 나면 아마도 이를 갈고, 꼬리를 흔들고, 혀를 핥고, 그 밖의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양계장의 닭들이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쪼는 것처럼, 양돈장의 돼지들이 꼬리를 물어뜯는 것처럼, 이러한 행동들은 지루함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의해 일어나는 증상이라 알려져 있다.

송아지고기를 얻기 위해 키우는 송아지 이야기는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소들의 삶이 평온하고 한가로울 것이라 생각해선 안된다.

예컨데 만약 당신이 젖소라면 지금도 대부분 당신의 삶의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야 할 것이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실내에서 보내야 할 비중이 높아진다. 젖소들도 조만간 앉고 서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넓이의 우리에 개별적으로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물론 당신은 우선-대게 인공수정을 통해-임신을 해야 한다. 당신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인간에게 빼앗긴다. 이는 새끼가 겁먹는 것 못지 않게 당신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떼어 낸 새끼 송아지는 젖소로 사육되든지 사육장에서 고기소로 사육되든지 송아지고기용 송아지로 팔릴 것이다.

첫 번째 새끼를 떼어 놓고 난 후 열 달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때로는 세 번까지도 당신에게 젖을 짜낼 것이다.

분만한지 석 달 정도가 지나면 다시 임신을 하게 되고 젖짜기는 분만하기 약 6주 전까지 계속된다. 그런 다음 다시 새끼를 떼어내고 또 이러한 젖짜기와 임신이 교차하여 반복된다.

당신은 아마도 약 5년 동안 이러한 가혹한 임신과 젖짜기의 순환을 계속 반복한다. 이 기간이 끝나고 난 다음에 당신은 '진이 다 빠져버리고' 따라서 '도살'된다.

만약 당신이 고기를 억디 위한 소로 태어났다면 송아지고기용 송아지와는(그리고 닭이나 돼지들과도) 다르게 광활한 야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식 쇠고기 생산방법의 확산과 함께, 당신 삶의 대부분을 광활한 야외공간이다 초원목장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소들을 빽빽하게 집어넣고 키우는 '사육장'에서 보내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그런 사육장으로 엄청나게 먼 거리를 배를 타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4제곱킬로미터에 900마리까지 집어넣을지 모른다.

여기서 예닐곱 달 동안 옥수수나 다른 곡식을 먹여 살찌운 후에 당신 역시 도살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당신이 사는 동안 뿔이 잘리고, 뜨거운 낙인이 찍히고, 마취 없이 거세당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거세를 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당신의 네 다리를 모아서 줄로 단단히 묶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음낭을 칼로 째 연 다음 고환을 확 잡아 뽑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그냥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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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공장식 축산업과 공평한 자리

내가 앞에서 묘사한 가축사육 방법들은(소, 닭, 돼지) 모두 '일반적'으로 실행되는 '평범한 방법'들이다.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부러 특별히 잔인하거나 유별난 방법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이는 현 세상에서 '무심코' 행해지는 일들이다. 우리 식탁에 놓인 '대부분'의 고기들이 생산되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인간의 음식으로 쓰이기 위해 이런 '집약된' 공장형 생산방식으로 사육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동물들이 이렇게 사육된다. 앞서 설명한 조건에서 사육된 후 도살되는 고기닭은 미국에서만 매주 1억 마리가 넘는다.

영국에서도 이와 같은 운명으로 매년 7억 천 9백만 마리가 도살된다. 미국에서는 앞에서 묘사한 것처럼 가스나 질식 혹은 '산 채'로 생매장 당해 죽는 '산란닭'의 '수평아리'들이 매년 최소한 1억 6천만 마리에 이른다.

아무 슈퍼마켓이나 가서 달걀 판매대에 진열된 달걀을 살펴보라. 자연방목으로 얻는 달걀과 공장형 양계장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가? 자연방목으로 사육되는 닭과 공장형 양계장에서 생산하는 닭의 상대적 비율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돼지들도-영국에서만 천 3백만 마리가 도살된다-앞에서 묘사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새끼를 낳은 암퇘지들은 거의 모두 앞에 설명한 방법으로 처리된다. 모든 송아지고기용 송아지들도 당연히 앞서 설명한 방식, 또는 여기서 약간 변형된 방식으로 생산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먹는 고기의 생산에 있어 공장형 가축농업, 즉 집약형 생산방식이 '일반적'인 기준이다.

왜 그럴까? 비용이 '적게'들고 따라서 수익성이 '더 크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공장형 가축농업은 음식생산도 자동화된 생산설비를 할 수 있다는 '동기와 인식'을 가져다주었다. 물건을 손으로 일일이 만드는 공장보다 자동화된 조립설비를 갖춘 공장의 수익이 높듯이 소규모, 즉 집약된 방식이 아닌 가축농업에 비해 공장형 축산업의 수익이 '훨씬' 높다.

이러한 까닭으로 느슨하게 운영되는 소규모 농장(예컨데, 전통적인 가축농업)이 궁이제 몰리는 반면 공장형 가축농장이 수적으로 증대하는 추세가 과거 몇 십년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고기를 먹는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고기가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생산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먹어야 할 것이다. 이제 솔직하게 당신은, 공평한 자리에서 이러한 가축방식을 포함하는 세상을 진정으로 선택할 것인가?

혹독한 방식으로 동물이 사육되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공평한 자리에서 당신은 인간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물론, 인간이 먹지 않는 동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현재 논의하는 문제와는 동떨어졌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한다.)

공평한 자리에서 바라볼 때 '기계적인' 음식생산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불합리한 선택인지 판단하는 일은 그러한 선택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 같은지 인식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우선, 당신이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동물로 판명되었다고 가정해보자.

혹독한 음식생산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잃을 것 같은가? 앞으로 할 이야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동물로 판명되고 또한, 인간에 의해 '가혹한' 사육방식으로 길러진다면, 육체적, 정신적 '박탈'과 끊임없는 '고문'으로 점철된, 처절하게 불행하고 비참하고 황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솔직히 살 가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어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이다. '죽어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 어떤 사람에게든 어떤 동물에게든 있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상황일 것이다.

자, 이제 이러한 상황을 당신이 인가으로 판명되었을 경우 잃게 될 것과 비교해보자. 무엇을 '잃을' 것 같은가? '기껏해봤자' 식탁 위의 어떤 '즐거움'이 아닌가?

느슨한 방식으로 생산한다면 식료품 값의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급격히 값이 오르지는 않겠지만(자연 방목으로 얻은 달걀은 공장형 양계장에서 생산된 달걀보다 대략 30% 비싸다.) 상당히 오르기는 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이러한 부자적인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당신은 고기나 그 밖의 달걀이나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먹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무슨 '대단한' 문제인가? 고기 먹기를 포기하라는 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도, '건강'을 포기하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대개의 환경에서 인간은 고기를 먹지 않고도 산다. 아주 잘 산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건강한' 수백만 명의 채식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분명하다. (편저자:우리의 스님을 비롯하여)

물론 고기가 영양상 중요한 공급원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종류의 아미노산을 공급한다는 일차적인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라면 꼭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아미노산은 비동물성 단백질을 적절히 배합하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합을 하는 요령은 현재 우리 사회에 육식을 선호하는 풍조가 유행하여 널리 퍼지지 못했으나, 절대도 난해하거나 얻기 힘든 지식이 아니다.

실제도 식단에 적잘한 양의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을 적적히 배분하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보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만약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가 잃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도 건강도 '아니다.' 식탁 위의 어떤 즐거움일 '뿐'이다.

고기는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이다. 어떤 채식주의자는 고기 맛을 싫어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나는(저자) 아직도 소 엉덩이살로 만든 스테이크 맛이 그립다. 돼지갈비를 통째로 구우면서 나는 딱딱거리는 고기 익는 소리에 군침을 다시던 그 '분별없던' 나날들이 그립다.

그러나 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맛은 거의 대부분 고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실 변변찮은 푸성귀로서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채식주의자와 맛있는 음식은 거리가 멀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공평한 자리에 서서, 공장형 가축농업을 포함하는 세상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려면 당신이 잠재적으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무엇인지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

만약 당신이 공장형 가축농업을 거부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이 잃을 가장 '최악'은 식탁 위의 '어떤' 단순한 즐거움일 뿐이고 잠재적으로 당신이 얻을 최상의 것은 '살 가치'가 있는 어떤 생명이다.

반면 당신이 공장형 가축농업을 인정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이 얻을 최상의 것은 식탁 위의 어떤 즐거움이고 당신이 잃을 '최악'의 것은 '살 가치가 있는' 생명이다. 식탁 위의 즐거움은 가치 있는 생명과 비교될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결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걸 따져 본다 하더라도, 살짝 익힌 소 엉덩이살 스테이크가 얼마나 많이 있어야 당신의 생명이나 자유와 바꿀 수 있는가?
따라서 공평한 자리에서 음식을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공장형 축산'을 포함하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을 불합리하다.

사는 동안에 한 인간은 대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동물을 먹는다. 따라서 공평한 자리에서 바라볼 때 당신은 인간이 되기보다는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동물로 판명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이러한 사실에 의해서도 나의 주장은 더욱 뒷받침된다.

따라서 집약적 음식暈?방식을 포함하는 세상을 선택하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클 뿐 아니라, 당신이 손해 보는 처지가 될 확률 역시 훨씬 더 높다.

따라서 공평한 자리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분명하다. 공장형, 즉 집약적 음식생산 방식을 포함하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그러한 방법은 '비 도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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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동물을 도축하는 방법

가혹한 음식생산의 소름끼치는 '잔인함'을 상세히 나열해 보여주면 대개의 반응은 느슨한 대안적 가축방법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자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좋다. 공장형 가축농업,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동물을 잔인하게 대해선 안 된다. 공장형 가축농업은 분명히 '잔인한' 방법이다. 하지만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잘' 대우를 한다면, 충분한 공간을 주고 자연스러운 습성대로 살 수 있다면, 또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을 개선한다면, 인간이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은 괜찮지 않겠는가?

이러한 주장에 따르자면 우리는 동물을 비참한 환경에서 살도록 강요하는 문제와 동물을 죽이는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송아지에게 전 생애를 '나무 상자 속'에서 살도록 강요하는 잔인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그러나 억압하지 않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육을 한다면 송아지나 그 밖의 동물들을 죽이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을까?

이러한 주장에 접근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동물이 죽는다는 사실'과 관련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동물이 죽는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동물이 죽는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살장에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빠르고 고통없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전류나 포획용 전기총으로 순간적으로 기절시키고 의식을 잃으면 목을 딴다고 '생각'한다. 빠르고 깨끗하고 고통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다르다.' 만약 당신이 소라면 다음과 같은 과정에서 당신을 가공하는 사람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약간 다른 점이 있겠지만 닭이나 돼지의 경우에도 이와 별다른 차이는 없을 것이다. 냄새나는 진흙탕 우리에서, 피냄새로 가득 찬 공기탱크로 옮겨진다. 아니 그보다는 나무 바닥으로 된 우리에 강제로 '쑤셔 넣는다.'고 말하는 게 맞다.

꼭대기에서 한 일꾼이 당신의 머리에 전기충격기를 대어 당신을 기절시킨다. 밑으로 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잡아 쇠족쇄에 뒷다리를 끼운다. 그러면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면서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칼로 당신의 목을 짼다. 당신은 천천히 피를 흘리며 죽는다.

별로 기분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인정한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센 전기충격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가정'은 물론 우스운 것이다.

가벼운 전기충격리라도 사람은 느끼지 않는가? 이는 전기충격요법을 시술할 때 대대 전신마취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의 죽음이 고통이 '없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것은 깔끔하고 빠른 죽음도 '아니다.'

앞서의 묘사는 분명히 가장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를 이야기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제 막 도살을 앞둔 소라면 위의 시나리오는 당신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경우이다. 예컨대, 컨베이어에 제대로 발목이 고정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다시 의식을 '차릴 것'이다.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당신이 완전히 의식을 잃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고통'은 대부분 도살장의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 '빠른 속도'에 의해 생긴다.

'경제적 이윤경쟁'은 도살장에서 시간당 도축하는 수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도살장의 일꾼들조차 이러한 상황에 '고통' 받는다. 미국에선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고' '병을 얻는' 비율이 높다.

이러한 조건에서 가끔씩 전기충격이 제대로 가해지지 않거나 컨베이어에 뒷다리에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 것은 '전혀' 놀랄 일도 아니다.

사실 당신이 전기충격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전기충격을 주는 것은 서구에서 '인도적인 도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유태인이나 모슬램들의 예식에서는 동물이 완전히 의식이 깬 상태에서 도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도살방법은 예외로 인정한다. 정통신앙에 기초한 유태인과 모슬램의 식사법은 '건강하게 움직이지 않는' 동물을 죽여 얻은 '죽은 살점'을 먹는 것을 금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원래 바람직한 것이었다. 병에 걸리거나 상한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많은 종교적 예식의 '원래의' 목적을 '잃었듯이' 이 계율 또한 빠르게 '의미 없는' 종교적 '독선'으로 '전락했다.'

이 계율은 오늘날에도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동물을 죽이기 전 몇 초라도 의식을 잃게 하는 것조차 '금한다.'

이러한 도살은 목을 칼로 쑤시거나 목동맥을 자르는 방법으로 행해지며 이 두가지 방법이 모두 사용된다.

만약에 당신이 '인도적인 도축'의 예외로 인정받는 이러한 예식 방법으로 도살되는 소라면, 특히 미국에서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1906년 제정된 '순수식품과 의약품법'에 따르면, 위생상의 이유로 이전 도살한 동물의 피가 다음 도살하는 동물에게 묻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당신을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적인 도축이 아닌 예식적 방법으로 도살하려면 이는 당신을 완전히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로 컨베이어에 매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은 450kg~900kg까지 나가는 소이고, 당신의 뒷다리 종아리뼈는 거의 부러질 것이 분명하고 족쇄 주변의 피부는 찢어져 뼈와 분리될 것이다.

발목관절이 파열되고 뼈가 부서진 채 거꾸로 매달려서 당신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며 '고통'과 '공포' 속에 빠져들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신의 목이나 목동맥을 자르는 일이 더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예식적 도살방법은 한번의 칼부림으로 동물을 죽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들은 당신의 목을 붙잡거나 콧구멍에 꺾쇠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미국동물학대방지협회(ASPCA)는 의식이 깨어 있는 동물을 발목을 고정하여 거꾸로 매달지 않고도 미국의 위생법에 맞게 도살하는 기계를 개발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형 소 예식도살업자들의 80%가 이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송아지를 도살하는 경우에는 이 기계를 사용하는 비율이 채 10%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예식도살업자들에 의해 죽는 큰 소들이 슈퍼마켓에서 파는 고기들 중 높은 비율-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양-을 차지한다.

'kosher' 즉, '유태인 율법에 맞는 제품'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면, 고기는 이렇게 산 채로 죽인 동물에서 얻어야 할 뿐 아니라 정맥, 림프절, 커다란 신경뭉치들과 같은 세포조직들도 제거해선 안 된다.

소의 엉덩이와 뒷다리 부위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찾기는 힘들다. 결과적으로 산 채로 도살하는 동물의 머리와 어깻죽지 부분만이 일반적으로 '유태인 율법에 맞는' 고기로 팔린다.

나머지 부분은 예식적 방법으로 도살된 동물이라는 어떠한 표식도 없이 일반 슈퍼마켓 선반 위에서 팔린다. 미국인이 먹는 상당한 많은 양의 쇠고기가 '이런 식'으로 도살된 것이다.

고기로 쓰이는 동물의 삶은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도 고기를 사육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에게 한가로운 삶을 줄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돼지는 숲 둘레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땅을 헤질을 것이고, 송아지들은 들판에서 즐겁게 뛰놀 것이며, 닭들은 행복하게 여기저기 쪼아대며 모래목욕을 할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풍경을 그려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동물을 키울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들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그들을 죽이는 방법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고통스럽고 무서울 뿐이다.

정신이 이상한 공포소설가가 가장 소름끼치는 잔인성을 묘사한들 이보다 더 잔혹할 수 있겠는가?

공평한 자리로 돌아가 보라. 동물들의 삶이 한가롭다고 할지라도 이런 방식으로 동물들을 죽이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여기서 대답하기 위해서 당신은 자신의 선택으로 무엇을 '얻을 것' 같은지, '잃을 것' 같은지 비교해 보아야 한다. 동물들이 이렇게 죽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두 가지 적절한 가능성이 있다. 당신이 인간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무엇인가 '얻을' 것이다. 인간에게 잡아 먹히는 동물로 판명될 경우에는 무엇인가 '잃을' 것이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무엇을 잃는가?

'기껏해야' 식탁 위의 어떤 즐거움을 잃을 것이다. 현재의 공장처럼 돌아가는 컨베이어 방식이 현실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정해보라.

아니면 다른, 이보다는 덜 잔인한 방식으로 동물을 죽인다고 가정해보라. 이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고깃값이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본래자리(편저자:역지사지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에서 바라보면, 당신은 고기를 사 먹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사람의 경우에는 컨베이어방식의 도축이 이루어지지 않느 세상을 선택하는 것은,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신은 '맛으로' 느끼는 어떤 즐거움을 '잃을' 것이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최악'의 경우이다. 당신은 생명을 잃거나 건강을 잃지 않는다. '단지' 식탁 위의 어떤 즐거움을 잃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현재 방식과 관습에 의해 동물을 죽이는 세계를 선택했을 때 당신이 인간에게 먹히는 동물로 판명된다면, 무엇을 잃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이런 세계를 선택한다면,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소름끼치는' 죽음이 당신에게 닥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방식과 관습이 사용되지 않는 세계를 선택한다면 그러한 운명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이 되어 겪을 미각적 즐거움의 상실보다 이 고통이 '훨 씬' 더 클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얼마나 많은 '미각적 즐거움'이 있어야 이런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가? 신이 와서 당신에게 말한다.

"나는 네가 원하는 식탁의 즐거움이 무엇이든 그것을 주겠노라. 다만 당신 인간들이 소, 돼지, 양, 닭을 지금 죽이는 방법으로 당신도 죽는 것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당신은 동의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식탁 위의 즐거움,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죽는 것만큼 가치 있지는 '않다.'

만약 이것이 옿다면, 공평한 자리에서 동물을 죽이는 현재의 방법과 관습을 포함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이러한 방법과 관습을 주장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우리가 먹는 동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그들을 '죽이는' 방식 또한 그에 못지않게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이들 중 하나를 주장하더라도 잘못이다. 더군다나 동물들을 이렇게 살리고 죽이는 방법에 '찬성'하는 '이유'는 , 거의 대부분 이렇게 살고 죽게 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돈'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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