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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상실의 숲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양돈/양계장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동물들을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에 비유한 글을 읽었을 때는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어디 하등한 돼지나 닭에게 대느냐, 그런 생각이었다.

나부터가 30여년간 살해당한 동물의 사체(고기라고들 부른다)를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먹어온 '육식교'의 충실한 신도였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의 인격 전부를 싸잡아 부도덕하다고 매도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예로, 나는 비록 '고기'를 먹었지만 노숙자와 저소득층 어린이를 매달 후원해왔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 중에 다른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고기'제조에 관련된 업자들이 강력한 돈줄을 부여잡고 '고기를 먹는것은 자연스러운 것,'고기'를 먹는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세뇌를 치밀하게 해대기 때문에, 축산 대기업의 바람대로 매일 신나게 '고기'를 먹는 사람(얼마 전의 자신을 포함해서)은 어느 정도는 일종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왜? 속았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고기'를 먹는 행위를 무고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내가 먹음으로써 '고기' 생산의 지속에 공헌해서 무고한 동물들의 고통을 늘리는 데 기여했으니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인종 청소 작업'을 했던 독일군인들은 모두 멀쩡한 인간들이었다. 특별히 반사회적이라거나 폭력적이라거나 가학적인 인간도 아니었고 가정에 돌아가면 대부분 성실한 아버지, 남편이었다.

악의 화신일 것이라고 유태인과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아이히만은 더더욱 정직하고 성실한 인간이었다. 그는 매우 성실하게 '효율적으로 유태인을 대량학살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성실하게 일했다.

아렌트가 밝혔듯이 아이히만은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 법정에 세워졌을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수백만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낸 '청소 작업'의 총 지휘자가! 아이히만이 성실한 인간이었다고 해도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역시나 문제는 사고의 기본적인 전제에 있는 것 같다. 독일군인들이 유태인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전쟁 때문에 미쳐버린 상황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유태인=독일인과 같은 인간'이라는 등식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이 가능했던 전제와 오늘날 미각 만족을 위해 벌이는 동물 대량학살의 전제는 아주 비슷하다. '고기 파티'의 전제는 '동물=나처럼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등식의 폐기에 있다. 동물은 인간과 전혀 다르고, 고통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고통을 느낀다 해도 편하게 도살될 것이라는 생각(약간의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다. 육식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와 같지 않다'라는 생각은 나를 다른 존재의 고통과 불행에 무감각하도록 만든다. '나와 상관없는 일, 저것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님'이라고 생각할 때 별다른 죄책감 없이, 눈 하나 깜짝 않고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을 학살할 수 있듯이, 도살장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짐승들의 살점을 맛있게 뜯어먹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학살의 총지휘자인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악의 진부성, 악의 일상성'을 이야기했다. 악의 여러 가지 형태 가운데, '중요한 가치판단을 무기한 보류하거나 판단을 전혀 하지 않음'은 '진부한 악'이라고.

아이히만이 자기 대가리로 수백만 수천만의 유태인을 단기간에 학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자기 스스로 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았다면 과연 '효율성'을 앞세운 인종 청소 계획을 수립했을까? 저항하던가, 그럴 용기가 없다면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을까 하고 21세기의 인간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어린이 학대가 나쁘다는 데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잖은가.

유태인을 빨리 학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아무런 고민 없이 그날부로 계획 작성에 들어간 아이히만과 아무런 생각없이 '고기'를 씹어먹는 현대인은 너무나도 닮아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 학살 문제를 제외하면 상식적이고 예의바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면에서 유태인 학살자 아이히만과 불과 한 달 전의 나는 '진부한 악'을 공유해온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에,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인간 세상의 억압이 낳는 비극 중 상당수는 '도덕의 고려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고대에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고, 중세까지만 해도 여자는 '인간'이 아니었으며, 근대에 와서도 어린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것들은 어떻게 처분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가히 파괴적이다. 다행히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파괴적인 세계 전쟁을 경험한 인류는 대체로는 '인간'은 같은 범주에 넣어주고 죽이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개략적인 합의점에 이르른 것 같다.

'인간'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장애인이든 뇌사자든 일단은 봐준다, 동물과는 다르게. 하지만 '동물'은 얄짤없다. 특히 '식용동물'의 경우에는 더더욱 마구 죽이고 살을 파먹고 산 채로 껍질을 벗겨도 무방하다. 그러한 끔찍한 과정은 아무도 알고싶어하지 않는데다 좀체 알려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간 평등' 사상을 혐오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 동물을 포함시키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자비심의 대상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점차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면 동물도 거기에 좀 포함시키면 안되겠는가 싶다.

그리고 자비심의 대상이 될 '동물'에, 사람들 앞에서 애교를 부릴 줄 아는 개나 고양이만 넣지 말고 젖 짜는 기계에 묶어놨다가 채산성이 떨어지면 바로 햄버거로 만드는 소나, 본성에 역행하여 더럽게 키워지고 베이컨이나 소시지가 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돼지, KFC의 트위스터가 되기 위해 죽어가는 닭, 용감하고 충성심 강해 집도 지키는 오리, 거위 등등등 이른바 '식용 동물'들도 좀 포함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건강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해로운 음식을 먹어 몸이 망가진다거나 암이나 치매에 걸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웰빙'하고 싶어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짜 웰빙 하려면 음식 외에도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나 도시에서는 힘들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도 육신의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하므로,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인간과는 교류하지 않아야겠다. 하지만 이러한 온전한 웰빙의 추구는 현재의 도시 생활에서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가 아닐까 싶다. 모르겠다. 나도 한 20년 뒤에는 전원 생활을 추구하게 될런지..

채식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 나름대로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

육식은 악이며, 육식을 하는 인간은 적어도 그러한 측면에서는 악에 가담하고 있다.

따라서 육식을 하고 있는 사람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악인'이라고는 부를 수 없지만, 일정한 악행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그때 악행의 형태는 소극적이며 일상적인 '진부한 악'이다.

모피코트를 사입음으로써 모피업자들이 계속해서 모피 동물을 학살하도록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고기' 소비자는 그저 생산자들이 만들어놓은 물건을 소비했을뿐인 죄없고 무고한 소비자가 아니라 비극의 양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지닌 책임자다.

4월 말에서 5월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마치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던 '사울'이 데메섹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감화되어 맹렬한 기독교도인 '바울'이 된 것처럼, 육식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즐기고 사랑하던 내가 육식을 악이라고 확신하는 나로 변하게 되었다.

인생의 1/3을 갓 넘긴 내 생애의 전 기간동안 이보다 극적인 변화는 없었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 나에게 생긴 이러한 변화가 정말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상에서 자행되는 '악'에 더이상은 가담하지 않아도 되어 매우 기쁘며, 혹시라도 부지불식간에 다른 형태의 악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깨어있는 상태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니오가 모피어스에게서 받은 진실의 알약을 삼키고 끔찍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더욱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되듯이, 나도 채식을 통해 세상의 미추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진실을 응시할 수 있게 되기를 늘 꿈꾼다.

VERITAS LUXM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