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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이야기/'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中
한채연 2004-12-24 18:20:09



존 라빈스(베스킨 라빈스의 아들로 동물에게 가해지는 대규모 학대를 알게되어 엄청난 상속을 거부하고 채식,환경,동물보호 활동에 헌신.EarthSave.org 창설, 저서:미국인을 위한 새로운 식사
(번역제목:육식,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음식혁명 등)

아래 내용은 그의 저서 "육식..."에 나오는 내용으로 풀꽃세상
(www.fulssi.or.kr)에 게재된 것을 옮겨옵니다

신성한 소

신은 공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우리 인간이 몹시 염려된다
--토머스 제퍼슨

모든 사람은 인간성이 깨어날 때까지 시달림을 받는 법이다
--­블레이크

오늘날의 가축들에게 어떤 일들이 자행되는지를 알게 되면서, 나는 나날이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일말의 연민이나 존중심이나마 갖고 있다면. 어떻게 지각있는 존재에 가해지는 그토록 극단적인 학대가 속되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오늘날의 거대 축산기업들이 자기네가 사육하는 동물들에 대해 털끝만큼이나 윤리적인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이윤만을 추구하는데 있다. 게다가 우리사회는 현재 식용으로 기르는 동물들을 학대하지 못하게 어떤 법률도 사실상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이런 상태가 고쳐지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형태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살아감으로써 양심을 찾고 평화로워는 날이 오기를, 또 나는 동물 학대를 금하는 법률, 인류가 창조주에게 감사하며 동료 생물들을 존중하도록 만드는 법률이 한시 바삐 제정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나는 순진무구한 동물들에 가해지는 폭력에 극심한 분노를 느끼는 삶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많은 농부들이 기본적으로는 경제적 악순환에 빠져 다국적 축산기업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동물 학대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자는 것 주장이, 이 학대 도구에 불과한 사람들에 대한 적대나 혐오에서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진정한 정의는 벌을 위한 벌이 아니라, 고칠 방법을 제공하는데 있다. 진짜 문제는 자연에 대한 둔감함이기에, 우리의 목적은 이 불행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른 생명들을 사랑 잇는 존재로 느끼고, 그림으로써 다른 생명들과 올바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실 다른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더 깊은 의미에서는 자기 존중과 사랑이 결여돼 있다. 지금 우리에게 동물 학대를 금하는 법률이 필요한 것은 동물들만을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흥미롭게 전설에 따르면 그런 형태의 정의가 lf제로 행해진 적이 잇다. 이것은 한 종족이 인간의 법률이 아니라 창조 법칙에 조응하는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던 때의 이야기다. 덕분에 논란이나 다툼이 생길 경우, 자주 내실 있는 해결책이 찾아지곤 하던 시절 말이다.

여기에 그런 사례 하나가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시대는 다르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같은 것이다..

자주 동물들을 학대하는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소년에게 거듭 벌을 주었는데도, 그의 이런 가혹행동은 변함없이 계속 되었다.마침내 이웃들이 판관에게 도움을 호소하자 판관은 몰래 소년을 관찰하라는 영을 내렸다. 그러던 중 소년이 살아 있는 고양이를 생매장하는 부끄러움이 목격되었다.

자신의 행동이 발각되었는데도, 소년은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혀 보이 느껴지지 않는지 거침없이 반항의 말을 쏟아냈다. "자, 때릴 테면 때려 보라구요. 난 상관없어요. 난 맞는데는 이골이 났거든요.

하지만 절대로 날 비명 지르게 하진 못할걸요!" 소년은 사람들 앞에서 웃옷을 벗어 지난번에 아버지한테 맞아 생긴 등에 난 깊은 상처를 보여 주었다. 게다가 그를 관찰하러온 지도 교사에게 자기가 고문한 동물들의 숫자와 그 벌로 자신에게 가해진 고통의 양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판관이 다루기 쉬운 경우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년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소년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볼 줄 아는 예지자가 있었다. 예지자는 소년이 갇혀 잇는 마음의 감옥을 이해했다 소년의 동물 학대가, 실은 자기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에게 느끼는 죄의식을 속죄하려는 일환임을 이해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그걸 잊게 해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예지자는 소년을 벌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그런 식의 처벌은 이 모 든 행동의 최초 동기가 된 소년의 죄의식을 심화시킬 뿐이었다. 예지자는 과감한 처방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예지자는 소년의 음식에 지독한 설사약을 섞었다.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게 된 소년은 희귀한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과 함께. 꾹 참고 병을 이기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 후 며칠 동안 그에게는 간헐적으로 통증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그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과거의 자기 모습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그를 나약하게 만드는 또 다른 조제약들이 주어졌다.

그리고 정말로 엄청난 중병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진짜 의술사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는, 아름답고 정 많은 스무 짜리 소녀더러 그 애를 보살피기 했다. 그녀는 소년이 잠들 때까지 이마를 쓰다듬어주었으며, 그가 아기인양 씻기고 먹여주었다. 그러다 그의 원기가 조금 살아나자 소녀는 그에게 평화와 사랑의 길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마침내 소년의 몸은 회복되었다. 이제 자신의 간호사에게 깊은 애착과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 소년은 비록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그녀를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소년에게 자신의 임무 중 하나가 거위를 돌보는 일인데, 그 거위는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위해 그 일을 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런 부탁은 소년에게 자신이 저질렀던 동물 학대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슬피 울면서, 동물을 보면 잔인해지고 싶은 심술은 마음이 이는걸 지신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자기가 그녀의 거위를 못살게 굴거나 하면 어떡하느냐, 자기는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그런 일은 못 됐으면 죽을지도 모를 만큼 심하게 앓았어.

난 네가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신들께 기도했지. 신들이 기도를 들어 주셔서 네가 나은 거야. 그래서 네가 받은 고통도 없던 일이 돼버렸어. 그것들은 죽고. 넌 다시 태어났어. 이제 네가 나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니, 너는 짐승을 사랑하는 내 마음과 똑 같아진거야"라고 말했다.

소년은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진 못했다. 그녀가 소년에게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갖다주었을 때 그는 자신이 고양이를 맡을 자격이 없다며 물리쳤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새끼 고양이의 목과 귀를 긁어주는 법을 가르쳐주곤, 그가 이렇게 해주면 고양이가 얼마나 기분 좋아하며 가르랑거리는지를 보여주었다.

"고양이가 널 좋아해. 고양이는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도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그러니 고양이하고 단 둘이 있어봐."소년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 투덜거리지만, 그녀는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소년의 이마에 입맞춤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몇 시간 뒤 그녀가 돌아와보니, 소년은 잠들어 있었고 새끼 고양이도 그 옆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고 쌔근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자라 만방에서 가장 친절한 수의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부드럽고 순수해서, 극심한 공포에 떨거나 심하게 다친 동물들조차 본능적으로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알 정도로 자상한 수의사가.

내 생각엔 오늘날 식용이나 양계용 가축들을 학대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이 소년처럼 현명하고도 애정 어린 도움을 갈구하는 듯이 보인다. 그들이 자기 가축들에게 보이는 관심의 결여는 자신과 생명에 대한 소외감에서 기인한 것이지, 타고난 잔인성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을 나무라고 미워하는 것으로는 그들이 동물을 학대하는 뿌리 원인인 소외감과 고립감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생명에 대한 참된 존중심을 갖도록 도움으로써, 다름 생명들과의 연대성과 우주의 일부로서 자기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그들을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줄 법률이다.

물론 때로는 혹독한 치료가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자신의 동료 생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무관심의 정도가 심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과격한 방법만이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대에 그런 사례가 또 하나 있었다.

한 사람이 자기 소들을 학대했다고 고발당했다. 재판관이 소들을 검사해보니, 몸이 맞지 않는 멍에 때문에 어깻죽지에 깊은 상처가 나 있는 등 정말 심각했다. 판관은 어쩌면 이 사람이 너무 무지하거나 둔해서 소의 상처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주인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러나 남자는 자기 소가 야윈 건 너무 게을러서 먹지를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소들이 밭에서 하는 일은 애들도 할 수 있는 가벼운 일이며, 자기는 아쉬울 게 없는 소들이 부럽다고, 되레 항변했다. 그러자 판관은, "당신은 더 이상 소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소. 이제부터 당신은 당신이 '애들 장난' 이라고 말하는 그 일을 직접 해서 소들의 만족을 나눠가질 기회를 갖게 될 테니 말이오. 내일 당신은 멍에에 쟁기를 달고서, 밭을 달 갈 때까지 뜨거운 태양 아래를 왔다갔다 해보시오" 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판관은 소를 잘 돌보는 이웃에게 남자의 소들을 건네주고는, 남자에게 자기 소들을 다시 얻으려면 밭갈이를 다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소들을 다시 검사해서, 학대받은 흔적이 있을 경우에는 그가 소에게 무슨 짓을 했든 똑같은 일을 그도 겪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소들을 잘 돌본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소들을 계속 맡길 테니, 그러면 소떼가 불어나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이처럼 어떤 사람이 다른 생명체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보기를 번번이 거부할 때, 그에 필요한 공감을 얻게 할 유일한 치료책은 물리적으로 그 사람 자신을 그 입장에 갖다놓는 것뿐인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날의 식용 동물들이 겪는 고통 역시 순전히 책임있는 사람들의 눈에 씌워진 탐욕이라는 까지가 그들로 하여금 동료 생물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최선의 해결책은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교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눈에 낀 깍지까지 씻어내는 것일 게다.

여기 그 탐욕 문제에 꼭 들어맞는 고대인의 지혜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가 있다. 한 마을에 야생 나귀의 소유권을 가지고 다투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나귀를 처음 보았다며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부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가난과 자식 수와 밭의 척박함을 거듭 한탄하며, 자기가 훨씬 더 곤궁하므로 나귀는 마땅히 자기가 가져야 한다고 강변했다. 현명한 판관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사람이 당신보다 훨씬 부자이고 당신이 더 가난하다고 말했고. 그리고 이 사람이 자기가 더 가난하다고 하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나는 이 사람이 당신한테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게 못하게 해줄 생각이오. 자, 더 가난한 당신이 야생 나귀를 가져가시오. 그리고 당신네 둘은 서로 재산을 맞바꾸시오. 보다시피 당신은 이 판결로 큰 혜택을 입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 사람은 울음을 터뜨리며 어떻게 자기 재산을 강탈할 수가 있느냐고 항의했다. 이런 항의에 판관은 짐짓 놀란 척했다. "강탈해? 내가 당신 이웃이 가진 더 많은 재산을 당신한테 주었는데도? 분명히 당신은 가진 재산이 보잘것없다는 이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의 재산이 더 많다고 방금 당신 입으로 말하지 않았소? 자,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니 재산 교환으로 혜택을 입는 쪽은 당신이란 걸 인정해야 하오."

암소가 법정에서 증언하다

우리 시대의 법원 판결은 대부분 이처럼 시적이거나 심오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재판관들도 가끔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진실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1953년 6월 6일, 마이크 퍼킨스라는 캘리포니아 사람이 이웃 목장에서 송아지를 훔친 혐의로 고소되었다. 그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훔친 송아지에다 자기 목장 표시를 해두었다. 퍼킨스는 판사 앞에서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며, 모든 것이 자기를 시기하는 이웃이 꾸며낸 일이라고 말했다.

판사는 퍼킨스가 무죄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그의 범행을 뒷받침할 증거라고는 상대편 농부의 말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판사에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보안관을 퍼킨스의 목장에 보내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송아지의 나이에 해당하는 퍼킨스네 송아지 전부를 법정 옆뜰로 데려오게 했다. 그런 다음 고소한 이웃의 목장에도 보안관을 보내 잃어버린 송아지의 어미로 추정되는 암소를 데려오게 했다.

어미 소는 도착하자마자, 큰 소리로 울면서 자꾸만 새끼줄에 매인 송아지들 쪽으로 가려고 했다. 판사가 암소를 풀어주라고 명하자, 풀려난 암소는 법정에서 아주 확실한 증언을 했다. 곧장 송아지들 쪽으로 걸어간 암소가 그중 한 마리에게 다가가더니, 녀석의 엉덩이를 계속 핥아댄 것이다. 퍼킨스 농장의 마크인 'P'자가 찍힌 바로 그 부위였다. 마이크 퍼킨스가 그 후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는 어떤 존재일까?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소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놓고 내 머릿속에 형성되어 있던 이미지로는 이런 종류의 일을 소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내가 의식하던 것보다 더, 동물이란 지능이 약간 있는 자동판매기와 비슷하다는 통속적인 관념의 포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알게 된 많은 사실들은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거듭 확인시켜주었다.

진실은, 소에게도 특별한 종류의 지능과 감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두르는 법도, 소란을 피우는 일도 거의 없는 이 느긋하고 온후한 영혼의 소유자들을 벙어리로 치부해버리고는 그들의 독특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의 리듬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고서, 누구도 쉽게 어지럽힐 수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우리 인간이라면 짜증과 분노로 대했을 번거롭고 힘겨운 상황들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또 놀랐을 경우조차 - 대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로 인해서 - 천천히 공포심을 드러낼 정도로 과장되게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올더스 헉슬 리가 금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7가지 큰 죄에다, 죽을 죄 한 가지를 더 저질러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서두르는 죄다. 이 죄에 관한 한, 적어도 소는 성자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는 소가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직접 겪어 볼 기회가 많았던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들 대부분은 무식하게 태어나서 무식하게 자란다는, 소에 관한 통속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소를 잘 아는 박물학자, W.H. 허드슨은 소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 그 억세고 푸른 혀로 우리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그 큰 머리에 순하고 상냥한 소..... 인간 외의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더 사람의 누이 같다. 주노 신의 눈을 가진 장대하고 아름다운 짐승이여....”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은 시대에 대지와 더 가깝게 살던 사람들은 이 느긋하고 온순한 존재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2,000년 전에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썼다.

“오, 소여, 네 디저트는 얼마나 근사한가! 교활하지 않고,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며, 순박하고 열심히 일하는 존재여....”

지금의 황소는?

오랜 세월 동안 소는 우리의 쟁기를 끌고, 우리의 흙을 기름지게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우유를 주어왔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의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사육 당하는, 이 평화롭고 인내하는 동물이 받고 있는 대접은 닭이나 돼지의 경우와 거의 다를 바 없다. 여러분 중에 혹시 그들을 인도적으로 다루도록 규정한 법률이 있지 않는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물복지법’도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를 정한 규정들 중에 식용으로 기르는 짐승들의 경우는 특별히 배제하고 있다. 이 법은 동물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에 대해 몇 가지 규제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은 이 법이 보호하는 대상 안에 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철학은 나중에 잡아먹을 동물에 관한 한 마음껏 학대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결과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 하다.

혹시 여러분 중에 실제로 동물들을 다루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합리화하는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내가 조지 케네디라는 이름의 가축 경매꾼에게 그런 식으로 동물들을 다루는 게 심란하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이봐요. 당신이 소고기를 먹고 싶을 때, 그걸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겁니다. 이 일에 ‘동물에게 잘 대해 줘’라는 식의 태도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있는 거고, 여기서는 그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뒤에 나는 경매 물주인 헨리 F.페이스라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에게 경매는 소에 대한 학대라고 동물권리 단체들로부터 비난받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잠시 나를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난 그런 말에 개의치 않아요. 우리 일도 여느 사업과 다르지 않거든요. 동물 보호 단체들에서는 가축들을 학대한다고 우릴 비난하지만, 효율성을 높이려면 우린 감정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린 인도주의 단체가 아니라 사업갑니다. 당연히 우리 일은 상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거죠. 종이 클립이나 냉장고를 파는 것하고 조금도 다를 게 없어요”

법의 관점에서 보면 헨리 페이스가 옳다. 우리 식탁에 오를 운명인 동물들에게 어떤 행위가 자행되든 법적으로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아, 물론 1906년에 통과된 연방법에서는 소를 철도로 운송하는 방식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 법은 우리들 대부분이 무지했던 과거지사로 간주하고 싶어하는 동물학대를 억제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동물들이 트럭으로 운송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법안이 통과될 당시에는 트럭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육우업계에서 소의 보호 조항을 좀 더 현대적인 수송수단에까지 확장시키려는 법안 통과를 철저히 봉쇄하는 데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구멍을 포착한 오늘날의 육우업계는 거의 언제나 트럭으로 소를 실어 나른다. 이제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그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공포물이다.

그런 트럭들 중 하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러분은 우선 냄새에 압도당할 것이고, 좀 더 있다보면 환기 상태와 실내 온도 역시 엉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트럭 안은 여름이면 살을 태울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혹독하게 춥다.

그리고 여러분은 많든 적든 끊임없이 먹이를 공급받아야만 그 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되새김 동물들인 이들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무려 3일 밤낮을 거기에서 지내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두려움과 차멀미, 갈증, 굶주림, 탈진..... 그리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의 조합이 소들에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겨우 며칠 전에 젖을 떼고 거세의 고통을 겪었을 어린 송아지의 경우, 그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오늘날의 육우업자들은 운송과정에서 소 몇 마리가 죽어나가는 걸 사업의 정상적인 한 과정으로 간주한다. 예상된 손실이란 이야기다. 그들은 소들을 다른 식으로 다루는 것보다는 죽음과 부상으로 인한 손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더 이득이란 걸 안다. 그들은 도착지에 이르면 죽은 소 몇 마리를 보게 된다는 걸 충분히 예상하기에, 그 손실을 기름 값과 함께 그저 동물의 운송 경비로 계산한다.

죽음의 원인은 대부분 ‘운송열(shipping fever)'이라는, 참으로 적절한 이름으로 알려진 일종의 폐렴이다. 시장에 도착하는 소 100마리당 2마리 이상의 소가 이 병으로 죽는다. ’가축보존협회‘는 이 병을 오늘날 미국에 가장 큰 손실을 가져오는 동물 질병으로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축산업자들은 클로람페니콜이라는 위험한 항생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여 이 운송열을 치료한다고 한다. 그들로서는 항생제의 위험성보다는 운송열로 인한 죽음을 줄여 이윤을 높이는 게 더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품의약국에서는 축산업계에서 클로람페니콜을 사용하는 걸 매우 불안하게 여기고 있다. 솔직히 나도 같은 입장이다. <목록집 #2>는 “현대 의학의 9가지 희화화”라는 제목 아래 훌륭한 리스트 하나를 싣고 있는데, 거기에는 클로람페니콜이 탈리도마이드가 불러왔던 끔찍한 비극들과 나란히 올라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극소량의 클로람페티콜만으로도 무형성빈혈이라는 치명적인 혈액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클로람페니콜은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 가운데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극단의 경우에만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약품이다. 극미량만 있어도 골수에서의 적혈구 형성을 막아, 그 약에 취약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그 약에 취약한지는 알 길이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대인 식품안전 분과에서 일하는 수의사, 조지프 A. 세티퍼니는 32밀리그램밖에 안 되는 클로람페니콜이 사람들을 죽여 왔다고 말한다. 이는 잔류율 100만분의 8인 고기 약 0.1킬로그램을 먹었을 때 흡수되는 양이다. 하지만 운송열에 대한 처방으로 클로람페니콜을 투여한 소에서 나온 시판용 소고기에는 잔류율이 그보다 100배는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늘날의 소가 운반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운송열은 소가 운송 중에 죽는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원인들도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이 온순한 동물에게 안락한 죽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겨울의 추위는 소들을 얼어죽게 하고, 여름의 더위는 일사병이나 심한 탈수증으로 인한 죽음을 불러온다. 또 소를 지나치게 많이 실은 트럭이 커브를 돌 때면, 다른 소들에 깔려 질식해 죽는 경우도 자주 있다.

소들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현장에 있어보면, 여러분은 여행에서 살아남은 소들이 최선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몰골을 하고 있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운송열에 걸린 놈도 있거니와, 여기저기 부딪혀 다리를 절뚝거리는 놈도 있다. 게다가 하나 같이 온몸에 수많은 상처들을 입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절름발이’에 대한 업계의 정의는 이렇다.

“.... 차에서 들어내리거나 질질 끌어내려야 하는 동물.”

다시 말해서, 다리가 부서졌건 부러졌건 절뚝거리며 어떻게든 걸을 수 있는 동물은 ‘절름발이’ 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상처가 너무 지독해서 사람이 먹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이 나지 않는 한, 그 동물은 공식적으로는 ‘상처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돈지갑에 영향을 미칠 경우라야만 상처가 상처로 계산되는 것이다.

오, 나의 즐거운 집?

여행에서 살아남아 목적지에 도착한 소들이라고 해서 편안하게 쉬면서 다시 삶을 즐길 시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 동물들은 그들이 받은 거친 대접으로 말미암아 지치고 탈진하고 병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살충제가 가득한 여물통에 머리를 담금으로써 새 집에 온 환영 인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다음, 그들은 거세당하고, 뿔을 잘리고, 목장 마크를 찍히고, 각종 화학약품들을 투여 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얼른 보다도, 이상적인 귀가라고 하기엔 좀 뭣하다.

거세는 식용 송아지를 만들기 위해 수소의 불알을 떼어내는 것으로 소로서는 매우 참기 힘든 고통스런 절차다. 처음에 나는 소를 더 순하고 다루기 쉽게 만들려고 거세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이것도 거세하는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거세한 소가 거세하지 않은 소보다 체지방 비율이 높다는 데 있다. 업계에서는 지방 성분에 따라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데,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살 속에 박혀 있는 고기일 때 가장 값비싼 등급이 매겨진다. 이 정도면 육우업자들로서는 소에게 어떤 고통이라도 가할 충분하고도 완벽한 이유가 된다.

모름지기 돈을 벌려고 기르는 소인 만치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방이 많아야 하며, 또 그러려면 소를 거세해야 하는 것이다. 수소의 불알을 떼어내면, 소의 자연 호르몬 생성이 크게 줄어들지만, 오늘날의 육우업자들에게는 이것이 별 문젯거리가 못된다.

거세한 송아지에게 합성 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거세로 인한 자연 호르몬 결핍을 보충해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합성 호르몬이 이들 소의 고기에서 발암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공보지를 빼고 업계의 다른 출판물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양돈인에게도 거세는 지긋지긋한 일이다.” 라고 영국의 업계 전문지 <양돈>은 쓰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양돈인’ 에게도 그토록 힘겨운 일이라면, 돼지나 소 자신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게다가 거세시에 마취제를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거세란 게 그토록 ‘지긋지긋한’ 일이라면, 그런 법률이 없고 진통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얼마나 더 지독한 일이겠는가?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농부들은 거세란 게 어떤 건지를 알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목축업자, 허브 실버맨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거세하는 게 싫습니다. 그건 정말 끔찍해요. 음낭에다 고리를 끼운 송아지는 이때부터 벌렁 드러누워서 음낭이 완전히 무감각해질 때까지 한 시간 넘게 발길질을 해대고 꼬리를 흔들어대죠. 끔찍하게 고통스럽다는 이야기죠.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있으면 불알이 떨어집니다. 특별한 집게를 쓰면 좀 더 일찍 떼어낼 수도 있지만, 난 그건 도저히 못 쓰겠습디다. 송아지가 길길이 날뛰는 꼴을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소는 천성이 워낙 온순하고 태평한 짐승인지라 정말 심한 고통이 계속해서 가해져 그들을 뒤집어놓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성을 잘 내지 않는다. 그런데 황소타기나 투우 같은 이벤트를 펼치는 오늘날의 로데오 경기장에 가 보면,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이 “미쳐 날뛰는 짐승의 격한 분노”니 하는 따위의 표현으로 관중들을 오싹하게 만드는 속에서, 사납고 성 잘 내며 고집스런 소들을 볼 수 있다.

비록 여러분이 그 행사장의 야단법석한 분위기에 휩싸여 소들의 흥분이 어느 정도는 부추겨진 것임을 안다고 해도, 로데오 경기 관계자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 순해빠진 이 짐승들을 격한 분노와 흥분의 화신으로 만드는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소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옆구리 덫’이라는 것을 채운다. 소는 힘닿는 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소가 길길이 날뛰는 건 본래 거칠고 사나운 짐승이라서가 아니다. 덫이 소의 생식기와 창자 부위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덫 안에다 못이나 압정, 가시철사 따위의 날카로운 금속을 집어넣어, 소를 한층 더 격분케 하기도 한다. 게다가 소를 비탈면으로 내보내기 직전에 관계자들이 ‘뜨거운 총알’ 이라고 부르는 전기충격을 소의 직장에 가하기까지 하면, 이 온순한 동물은 미친 듯이 경기장으로 달려나가, 실제로는 자신의 고통과 공포의 표현일 뿐인 ‘흥미진진한’ 연기를 펼쳐보이게 되는 것이다.

목축업자들은 아주 과밀한 상태가 아니라면 소의 뿔을 잘라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이 평화스런 동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쑤셔넣어지지 않는 한 서로를 해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목축업자들은 뿔 자르기가 소에게 심히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자주 출혈을 가져오고 구더기가 들끓게 만들며 질병에 감염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들은 정기적으로 뿔 자르기를 당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소들 대다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초만원 상태인 사육장에서 생애의 후반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육장 상태가 가까운 미래에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업계 용어로는 ‘가축밀도’ 로 알려진 혼잡도가 오히려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니 말이다.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는 이 몸집 큰 동물들을 약 0.4평의 공간에 한 마리씩 집어넣어야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실감나게 느끼려면, 가로 세로 3.6미터 곱하기 4.5미터의 전형적인 침실이 약 5평이라는 걸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침실에 몸무게 0.5톤인 소가 13마리 들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마 그 상태가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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